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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Dec 04. 2021

먹는 사람들

천천히 배워나가는 프랑스의 식문화

다니엘과 함께한 지 이제 5년이 되어 간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데이터는 착실하게 쌓여 가고 있는데 아직 도 서로에 대해 놀랄 때가 많다. 얼마 전 마트에서 사 온 양송이를 생으로 척척 썰어 마요네즈를 발라 먹던 다니엘을 봤을 때처럼.. 나는 무심코 "너 대체 뭘 먹는 거니!"라고 소리쳤는데 내가 생 고구마를 썰어서 오독오독 씹어먹을 때 다니엘의 충격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아니... 그걸 익혀먹질않구... 왜 생으로 먹는 거지..?'라며 황망한 얼굴로 배회하던 다니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실 생 고구마는 한국에 살 때는 생전 먹지도 않던 음식인데 프랑스에 와서 입맛이 변하는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엄마가 고구마를 생으로 드시던 게 떠올라 먹어보았지만 반도 못 먹고 버렸다.

 한국산 팽이버섯이 리스테리아균 감염 문제 때문에 리콜 조치되는 기사는 심심찮게 나온다. 나는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아니 그걸 왜 생으로 먹어서 이 사달을 내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식생활은 늘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을.. 나의 경솔함을 늘 늦게도 깨닫는다. 어릴 적 먹던 숏다리, 행복하게 초장에 찍어 먹던 전복과 해삼 등을 감안해 보면 해산물을 싫어하는 다니엘 입장에서 보는 나의 식문화도 꽤나 무시무시한 것이리라.

 한때 만화가 야마자키 마리의 가족 만화에 푹 빠졌었다. '테르마이 로마이'로 유명한 작가님이지만 '맹렬! 이탈리아 가족'과 '이탈리아 가족 풍림화산'에 나오는 이탈리아 남편, 그리고 그의 가족들과 함께하는 일상-특히 고부갈등-이 정말 흥미로웠다. 거기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게 양 뇌 튀김 이야기였는데 혹시 다니엘도 이 요리에 대해 들어봤을까 싶은 마음에 이야기를 꺼내 봤더니 어릴 때 할머니 댁 만찬에 나온 적이-먹지는 않았다고 한다- 있다는 게 아닌가. 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식감과 크리미한 맛이 좋다고 하던데.. 겉모습이야 해산물도 만만치 않으니 어찌 눈 감고 넘어간다 해도 지금 내가 집은 게 양 뇌라는 걸 아는 이상 나는 절대 못 먹을 것 같다. 어려서부터 해산물은 멀리하고 생김새가 썩 좋지 않은 생물은 멀리하던 다니엘이라 한사코 양 뇌를 거부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렇게 못생긴(?) 식재를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아귀를 맛있게 먹는 건 신기하게 느껴져서 한번 아귀(Monkfish)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다니엘은 무구한 얼굴로 왜? 그게 뭐?라고 물었다. 아귀를 싫어하게 되는 건 싫으니 아무것도 보여주지 말라고 덧붙인 걸 보니 정말 보여주면 안 될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접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음식이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 참 재미있는 현상 아닌가. 어차피 사이좋게 내 뱃속으로 들어가 일용할 양분이 될 녀석들인데 말이다. 우리가 자주 먹는 사골뼈가 프랑스에서는 비인기 종목이듯이 프랑스 정육점에 들어가면 생전 모르고 살았던 녀석들이 많다. 마장동에나 가야 살 수 있을 것 같은 소의 콩팥, 양의 콩팥 그리고 여전히 털이 좀 붙어 있는(가끔은 발도 붙어있는) 가금류, 늘 있는 건 아니지만 운이 나쁘면 눈에 확 들어오는 자리에 진열되어 있는 껍질(가죽) 벗긴 토끼... 맨 처음에 본 토끼는 눈도 붙어있었던 것 같은데 끔찍한 기억을 내 스스로 덧칠한 것인지 정말로 눈알이 달려있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나는 내가 이렇게 잘 놀라는 사람인지 몰랐는데 초기에는 정육점에 들어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반사적으로 오마이갓을 외쳐서 다니엘을 창피하게 만들곤 했다. 사실 지금도 가끔 그러기 때문에 작년에 라클루자에서 겨울 휴가를 보냈을 때도 정육점에 먼저 들어간 다니엘이 '왼쪽 보지 마... 왼쪽 보지 마..'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그런가, 파리에서 본 것보다 더 실하고 털이 더 많이 붙은 가금류들이 대롱대롱 매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콩팥은 또 어떤가. 하필 그날따라 내 앞에 있던 아저씨가 콩팥을 주문한 탓에 투명한 진열대 뒤에서 콩팥을 자르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단면에 투명감이 있는 게 잘라놓은 토마토의 단면을 연상시켰다. 그 사실을 의식한 순간 정육점보다는 과학실에 들어온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콩팥을 처음 본 날은 꽤 오래전이라 아직 마스크를 쓰지 않고 생활하던 시절의 일이다. 표정관리를 한다고 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겁을 집어먹은 티가 많이 났는지 옆에 있던 아주머니와 정육점 아저씨가 날 보며 웃었다. 이후에도 나는 같은 정육점에서 피가 흥건한 통 안의 생간을 보고 작게 히익 소리를 낸 적이 있는데 그때도 양옆의 손님들이 신나게 웃었다. 오해는 마세요 선생님들.. 저도 순대의 간은 아주 좋아한단 말입니다.

다니엘 외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이 이야기를 했더니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콩팥 맛있지~'라고 하셨다. 예전에 꺄바이옹에 갔을 때 정말 맛있는 토끼 요리를 먹으면서-다니엘이 주문한 것을 조금 얻어먹었다- 토끼에 대한 공포는 조금 개선이 되었지만 프랑스에 사는 동안 내가 콩팥을 좋아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나고 자란 내 나라의 식문화에서도 썩 내키지 않는 먹거리는 있기 마련이지만, 요리법이든 맛이든 그것이 낯설다는 이유로 멀리하다 보면 혹시 내가 손해 보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이런 부분까지 손해나 이득으로 하기엔 좀 삭막한 감이 있지만 말이다. 혹시 프랑스에 사는 지금이 ㅇㅇㅇ를 먹어볼 절호의 기회는 아닐까?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까라고 생각할 때가 분명히 있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서야 가지를 즐겨먹기 시작한 게 손해라고 느껴지지 않듯이, 프랑스에서 만난 식재료와 나 사이에 인연이 있다면 그 인연이 좀 나중에 이어져도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끌림이 타이밍에 달려 있다면 음식과 사람 사이의 이끌림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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