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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Dec 19. 2021

너도 그런 생각 하는구나

한국인 아내의 부끄러운 착각

총 5주의 유급휴가로 직장인의 천국이라 불리는(학부모가 되면 또 다르다고는 한다. 학교가 쉬는 날이 너무 많아서다.) 프랑스지만 다니엘은 그 혜택을 온전히 받고 있지 못하다. 이유인즉슨 다니엘이 일하는 로펌에서 변호사는 개인 사업자 같은 입장인데 업계 자체가 워낙 일밖에 모르는 업계이다 보니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아 들어간 로펌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회사원처럼 한 번에 3주 이상의 휴가를 통 크게 지르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여름휴가라면 3주를 얻어내는 건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다고 한다. 어차피 클라이언트들도 길게 휴가를 쓰는 기간이라서다-. 특히 상사가 토마 같은 워커홀릭에 다니엘을 못 괴롭혀 안달이 난 상황이라면 말이다. 어제저녁을 먹던 나와 다니엘은 토마의 이름이 선명히 떠오른 휴대폰 앞에서 한숨을 푹 쉬었다. 가만, 토마는 휴가 중이라 하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의문은 싱겁게 풀렸다. 토마는 정말 무지막지한 워커홀릭이라 모처럼 휴가를 얻어 가족과 함께 있어도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굳이 다니엘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 의미 없는 일 얘기-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일 얘기가 아닌-를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뭐 이런 사람이 있담. 나는 그 옛날 방송국에서 일하던 시절의 상사를 떠올렸다. 집에 가봤자 좋은 일은 없으니 야근비를 받아 가며 무료하게 모니터 앞에 앉아 야구를 보는 게 이득이라던 그 아저씨를.


 아무튼, 토마는 토마처럼 살게 내버려 두고.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다니엘이 몸담은 업계에서 잠시 쉬어간다는 개념이 존재하는지가 말이다. 다니엘은 자기 분야에서 그런 일은 없다고 말했다. 설령 있다고 해도 어떤 개념으로 굳어질 만큼 의미 있는 수가 아니라고. 올해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이탈리아에 갔을 때, 나는 다니엘에게 말했다. "우리 꼭 이탈리아에서 한 달 살아봐야 해!"라고. 첫날 다니엘은 흥분해서 맞아!!라고 말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내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한 우린 그렇게 못할 거야. 안 그래?"


 나는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내가 살면서 프랑스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보다니 싶어서.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니엘에게 이탈리아 한 달 살기는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우리가 그 해 한국에 가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또 다니엘이 더 많은 휴가를 찾아서 금융권 사내 변호사-금융권 사람들은 7주, 8주까지도 (유급) 휴가를 받는 걸 봤다- 등의 직군으로 이직한다면 4주의 휴가를 이탈리아에서만 보낼 수 있다. 직업을 잃지 않고도 말이다. 하지만 '퇴사하지 않는 한 한 달 살기는 그저 꿈에 불과하다'가 오직 아시아권만의 현실이라고 오래 믿어온 탓에 다니엘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게 꽤 놀라웠다. 그렇지, 다니엘도 사람인데 말이다. 회사를 옮긴다는 게 그리 간단한 일도 아니고.


 내 안에서 프랑스라는 나라는 노동자 권리의 황제 정도 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일해본 것도 아니면서 멋대로 CDI(정규직 개념)와 CDD(계약직) 이외의 계약은 없지 않을까 생각하며 살았다. 올해 (이미 그만둔)일을 시작하기 전까진 말이다. 나는 7개월의 계약직이었는데, CDD는 업무 기한이 정해진 계약직이면서 유급 휴가가 보장되는 반면 내 계약인 앙떼림(intérim)은 유급 휴가가 보장되지 않고 쉬면 쉬는 만큼 월급이 깎인다. 병가는 또 다르다고 하더라만 아직 쉬어야 할 만큼 아팠던 일이 없어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 앙떼림(intérim)이라고 하더라도 이 고용 불안정성을 나중에 금전적으로 보상받는다는 것-나는 7개월을 일했지만 계약 기간을 마치고 나면 앙뎀니떼 프레꺄리떼(indemnité précarité)라는 명목으로 보너스를 받는다. 이 돈을 받는 것은 CDD 계약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계약에 따라 금액에 차등은 있을 것이다-이 한국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시기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즐겁게 일하긴 했지만 퇴직금은 애초에 기대조차 안 했으니까.


  아마 이번 직장에서 일한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앙떼림 계약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한두 번쯤 무신경한 소리를 내뱉었을지도 모르겠다. 매달 도착하는 급여 명세서는 실로 복잡한 용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한참이나 코를 박고 정독하지만 내가 받아야 할 돈과 원천징수로 나간 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항목은 머리에 들어오자마자 포말처럼 흩어진다. 아직도 알아가야 할 것이 많지만 프랑스에서 일하면서 한국에서 일하던 시기에 비추어 봤을 때 스트레스가 훨씬 덜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8월이면 많은 상점들이 1-2달씩 통 크게 문을 닫고, 주치의 선생님이 휴가를 가는 바람에 한 달은 말도 붙이지 못하는 상황이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나라에서 나의 통 큰 휴가도 별스럽지 않은 일 취급받는다는 게-불행히도 올해는 아니었지만- 아직도 좀 놀랍다. 한국에서 알게 된 사람이 '프랑스는 그 5주의 휴가로 노동자의 고삐를 거머쥐는 나라'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어차피 생계를 위해 돈 주는 사람에게 고삐를 넘겨준 채 살 거라면 휴가 주수는 많은 게 이득 아닌가 생각했다. 게다가, 물론 프랑스의 모든 노동자들이 다 파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매년 벌어지는 파업 행렬을 봤을 때 과연 프랑스의 노동자들이 그렇게 선선히 고삐를 넘겨주는 사람들인가 생각하면 그의 말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생계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 필수적인 행위다. 대부분의 경우는 말이다. 지금 회사의 사업 종료 기간이 딱 2개월-이후로는 프랑스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남은 지금, 다니엘의 그 말은 요즘 어떻게 살아야 더 행복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내게 어떤 파문을 남겼다. 내 입장에서 덜 일하고 더 쉬는 삶은 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셈이지만 다니엘에게는 아니었던 것이다.


 어제 저녁식사 이후 다니엘과 나는 손바닥만한 즉석복권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긁었다. 5유로를 땄지만 복권 자체의 가격이 5유로였던 고로 큰 의미가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당장 내가 우리를 노동의 굴레에서 구할 수는 없지만, 일단 맞벌이 가구의 한사람 몫을 단단히 하는 게 급선무 아닌가. 형편없는 복권 실적과는 반대로 복권을 향한 열망이 더욱 강렬해지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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