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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Jan 01. 2022

야이, 언제까지 해

어학 공부의 다음 정거장은 어디일까

프랑스어 시험 정보를 찾다 보면 글쓴이는 DALF C1 혹은 C2를 취득했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완벽히 알아듣지 못한다는 고민 글을 가끔 볼 수 있다. 10년 넘게 프랑스어를 공부한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는 게 참 많다고 한탄하는 모습도 말이다. DELF B2를 따기까지는 이런 글을 보아도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일 뿐이라 느꼈으므로 그저 한 귀로 흘릴 뿐이었다. 참 깊은 언어인가 보다, 생각한 적도 있다. 그저 남의 일처럼. 하지만 달프(C1~C2 레벨부터는 델프가 아닌 달프 DALF)라고 부른다. 준비를 하면서 나는 이 한탄이 머지않아 내 것이 될 수밖에 없음을 직감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 시험이 그저 사회생활의 '기본' 요건을 만들어주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었으니 말이다.


 일상회화와 델프 시험이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은 진작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앞으로 할 공부가 끝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시기와 실감하는 순간, 감정의 낙폭은 꽤나 컸다.
올해 초의 목표를 B2 시험 합격으로 잡은 것은 나름대로 짱구를 굴린 후에 나온 결론이었다. 일상 회화는 그래도 다니엘과 집에서 천천히 해나가도 될 것이고, 일상 회화만으로 일자리를 얻기는 어렵지만 시험은 실직 상태인 지금이 아니면 시간을 따로 내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시험 합격증이 취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인데, 나는 왜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에 이리 골을 내는 것인가.

 마치 갓 수능을 본 후에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수능이 당장의 가장 큰 목표였던 시기와 그렇게 잘나 보였던 수능은 한 단계에 불과했고 수능을 위해 갈고닦았던 기존의 지식은 다음 단계의 시련을 헤쳐나가는 데 유의미한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시기 사이의 섬뜩한 낙차가 찰나를 어지럽게 했다. 나는 이렇게 억울한데도 다음 시련을 받아들이는 동년배들의 얼굴은 어떤 동요를 엿보기 어려울 만큼 평온해 보였다. 그래도 나는 못내 억울했다. 드러누워버리고 싶었다. 아니, 대학만 가면 다 된다며! 괘씸한 노릇이었다.


 프랑스어 시험 DELF B2 레벨이면 (경우에 따라 다르겠으나) 적어도 프랑스 고용센터에서는 별로 문제 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그것도 센터 담당자 별로 다르다고 하지만-. 아마 내게 이 말을 해주신 분은 내게 이미 프랑스 근무 경험이 조금 있어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것이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시험을 합격하고 단기간 일자리를 얻으면서 당초의 목표는 어느 정도 이룬 셈이지만  이왕 시작한 김에 C1은 보고 접어야 하지 않겠냐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결과 나는 이번 일이 끝나면 C1 공부와 구직 활동을 병행하기로 했다.


 지난번 B2 시험에서 제일 점수가 낮았던 항목은 듣기 과목이었다. 모의고사에서는 오히려 듣기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좀 충격이었다. 도통 귀가 트이지 않는다는 갑갑함에 출퇴근 길에 프랑스어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는데, 9월 즈음부터 마스크의 존재에 생각이 미쳐 매일 섀도잉도 병행하게 되었다. 가능한 한 시험공부에 드는 시간을 단축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듣기, 말하기, 쓰기를 통틀어 토론 형식이 정말 중요한 시험인지라 자연스럽게 토론 팟캐스트를 선택했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와 다니엘이 집에서 하는 대화의 98%는 영어로 이루어진다. 집에서 하는 프랑스어의 주 목적은 다니엘을 웃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고양이 오닉스를 수없이 팔아 가며 "사료주의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식량 자원의 독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 그것이 저 오닉스의 의견입니다." 같은 헛소리를 자주 한다. 그 과정에 나는 깨닫고 말았다. 이 시험을 거친 결과 나는 원했던 합격증을 손에 넣었는지는 몰라도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 "고양이 복지의 세 가지 축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료, 비둘기 극장,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과소비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게 절약한 예산이 바로 고양이 복지를 완성시킵니다." 같은 헛소리는 즉흥으로 1분도 할 수 있지만 정작 미용실에서-가지는 않지만 간다면- "끝은 층을 좀 내주시고요" 같은 말은 못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굳이 미용실까지 안 가도 시부모님 앞에서 "저희는 겨울에 돼지 감자뼈랑 된장으로 끓인 국을 많이 먹는데요, 골수도 좋아하는 분들은 좋아해요." 나 "하하 죄송해요, 제가 이래요 마음만 앞서서 다 먹지도 못할걸.. (그릇에 담았네요)" 같은 말은 못 한다. 비슷하고 더 쉬운 문장은 만들 수 있겠지만, 위 한국어보다 훨씬 더 어눌하게 들릴 것이고 시간도 더 걸릴 것이다. 고양이 오닉스의 야망과 그의 중년의 위기에 대한 연설을 좋아하는 건 다니엘 정도이기 때문에 이런 말로 시간을 끌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내가 황망한 표정으로 앉아있으면 다니엘은 "Bah, il faut parler en français, vas-y(그러면 프랑스어로 말해야지, 빨리)!"라고 말하며 재촉의 손짓을 한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 너는 오늘 프랑스어로 말해야만 해"라고 강하게 말하는 날도 없지는 않다. 그런 마지못한 노력의 결실인가, 굳이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말해야 할 문장을 머릿속으로 반복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왔다.  그래도 매일이 아쉬움으로 여기저기 얼룩져 있다. 다른 한국 친구와 함께 길을 걷는데 "Asiatique(아시아인들이네!)"라고 크게 소리치던 카페 테라스 좌석의 헨델 머리 영감태기에게 반사적으로 "Ta gueule(닥치쇼)"이 아닌, 영어 욕을 했던 날이나 중고거래 판매자에게 "Pardon, j'ai pris la douche(미안, 나 샤워하고 있었어-une douche라고 쓰는 게 맞다-)"라고 외국인 티가 폴폴 나는 메시지를 보낸 날처럼.


 그래도 어제는 무섭던 일이 오늘은 무섭지 않을 때, 어제는 실수했던 문장이 오늘은 매끄러울 때. 앞으로 가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옆으로는 나아가고 있다는 마음이 들 때 드는 성취감이 매일을 단단히 받쳐준다. 아직 모르는 게 산더미 같다는 사실은 단기간에 어찌 되는 게 아니니 제쳐두고 말이다. 아주 옛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이 단단히 꼬였다. 그래서 나는 세 장의 항공권으로 이루어진 무자비한 21시간의 여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맹렬히 '모로 가고' 있지만, 아무튼 집에 가고는 있어. 마이애미 공항에서 맥모닝을 씹으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 DALF를 따기까지 300시간쯤 책상 앞에 앉아 모르는 것들과 씨름하는 과정이, 또 그 앞에 놓인 또 다른 모르는 것들과의 대진표와 합쳐져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더라도. 나는 지금 '어디를 가고는 있다'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미 프랑스어와 지독하게 얽혀버린 이상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답이 없으니까 말이다.  아무 의미 없다는 걸 내가 가장 잘 알지만, 그럼에도 외칠 수밖에. "야이, 언제까지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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