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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Sep 06. 2024

쉴 휴자에 겨를 가자

달콤한 울림

 지금 30대 중반인 내가 어릴 적, 우리 부모님은 주 6일제 근무를 했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평생 종사한 분야는 관광업계였으니 휴가를 조금만 길게 써도 눈치가 보여 기억에 남아있는 여름휴가는 길어도 4박 5 일정도고, 겨울 휴가라는 개념은 아예 기억에 없으니 거의 없었다 보는 게 무방할 것 같다. 시골에 이틀 다녀오면 잘 놀은 겨울이었다. 여기에 가정의 어떤 불화까지 더해지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휴가와는 상당히 연이 없는 가정이 된다. 아버지는 은퇴를 2년 남긴 지금도 일주일 넘게 휴가를 쓰라고 하면 몸에서부터 거부반응을 일으키니 저런 상태로 꽤 오래 근무했다 보면 될 것이다. 

올해 여름휴가 마지막 주에 찾은 시부모님의 캠핑장이다. 브런치북 표지 사진도 캠핑장 사진을 썼다.

 아버지가 직장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고, 내가 자라 혼자서 온가족이 떠나는 여행을 계획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굵어진 2010년대에는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갈 수도 있었지만 이러한 흐름은 내가 경제활동인구에 편입하면서 다시 한번의 단절을 겪는다. 가정 분위기가 오랜 기간 휴가 친화적이지 않았던 것에 더해 내가 수습기간을 넘기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거나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는 횟수가 더해지면서 나는 완전히 '휴가는 다음 일을 시작하기 전에나 떠나는 것'이라는 개념에 적응해 버리고, 부모님은 주 6일제 시대의 산업역군이다 보니 나 역시 남들 다 떠날 때 사무실을 지키는 내가 불쌍하다 생각해본 적이 없고, 집에서도 나를 동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체리씨는 이번 여름에 어디 가요?"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었다. 

- 왜 내게 휴가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 왜 이들에게는 어딘가로 떠나는 여름이 당연한가?


 직장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복사기 정도의 존재감으로 살아가길 원했던 나이기에 '체리 씨 이번에 아무 데도 안 간대요' 따위의 말로 잔잔히 주목받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떠날 데도 없는 걸 있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석사를 졸업한 2015년 여름부터 일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상상했던 것처럼 야심 차게 대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나는 2017년 프랑스에서의 첫 직장에 들어갈 때까지 휴가랄 만한 것이 없는 생활을 하다가 말로만 듣던 5주의 유급휴가를 얻게 된다. 

 나는 흔히 말하는 잡 호퍼(Job Hopper)다. 메뚜기 방아깨비, 풀벌레처럼 이 직장에서 저 직장으로 폴짝 뛰는 모습을 빗댄 말이렸다. 내 경우는 좋아서 이직을 했던 것은 아니고 정착할 만한 직장이나 근무 조건을 만나지 못했던 탓이지만 프랑스 첫 직장부터 시작하면 7곳의 직장을 거쳤고, 완전히 처음으로 들어갔던 직장까지 따지면 총 10곳이다. 2014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의 기록인데 현 직장을 제외하면 제일 오래 다녔던 곳에 10개월을 몸담았으니 공백도 길고 이직도 많은, 고용주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이력서의 소유자다. 


 한국에서는 좋은 환경에서 일했다 보기 힘들고, 프랑스에 온 후로도 정규직에 사무직을 목표로 방아깨비처럼 겅중겅중 뛰었다. 그 결과 휴가 없는 삶에 완전히 적응해 버렸던 26살의 나는 6년의 세월을 지나 유급휴가를 9주 쓸 수 있는 직장에 정착했다. 다들 좋은 뜻으로 묻고 내 대신 아쉬워해준다는 걸 알면서도 왜 아무 데도 가지 않는지 설명하는 게 약간 고역이었던 시절 나는 남들 쉴 때 쉬고 남들 일할 때 일하는 리듬에 같이 춤을 추는 게 혼자서 품은 소원이었다. 올해 여름, 2주는 크레타에서 또 남은 1주는 프랑스 시댁에서 보낸 후 이제 겨우 프랑스 사회에서, 남들 춤추는 거 벽에 기대 서서 바라만 보는 처지는 면했구나. 나도 남들 사이에 섞였구나. 생각했다. 


 생각보다 감동적이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게. 그런 생각을 했다. 꽤 사치스러운 태도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0일 쉬던 사람이 45일 쉬게 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복지, 그중에서도 휴가라면 직장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이기도 하고, 나는 단점이라고만 생각했던 내 7번의 폴짝임을 내 능력이라 봐준 친구의 한마디 덕분에 이 주제를 잡을 마음이 들었다. 


 여러 직장을 거치면서 초반의 충격은 옅어졌고, 나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지금 딛고 선 자리밖에 못 보는 내 한계를 의식하려 노력한다. 연애 시절 문화차이에 대해 썼을 때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많은 분들이 말을 걸어주어 신나게 문화차이 이야기를 했던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 또 어떤 분들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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