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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Sep 06. 2024

궁금해진 이야기

수치로 보는 프랑스 휴가

프랑스 사람들은 휴가에 얼마나 쓸까? 평균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되겠지만, 큰 집단의 경향성을 파악하는 데 통계만큼 유용한 게 있을까. 휴가 이야기를 쓰다 보니 나도 궁금해져서 여러 기사를 찾아보았다. 제일 먼저 궁금했던 게 보통 휴가에 쓰는 금액이 연봉 대비 몇 퍼센트일까? 였는데, 과연 기사에 인용된 수치들이 몇 있었다. 먼저 프랑스 일간지 중 하나인 Ouest-France에서 소비에 관한 기사를 주로 싣는 Le Mag de la Conso를 보면 2024년 3월 21일에 실린, 프랑스인들은 2024년 여름휴가에 평균 예산으로 얼마를 할당할 것인가?라는 기사가 있다.


 우리 둘 다 돈이 없을 때 만나서 직장인이 될 때까지도 잘 몰랐지만, 사실 프랑스인들은 1년 전에 내년 여름휴가를 미리 예약해두기도 할 만큼 휴가에 진심이다. 그만큼 이 기간엔 꼭 떠날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한 사람들이 많아서이기도 할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올여름휴가를 크레타 섬에서 보냈는데, 우리가 6개월 전에 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섬 동쪽의 한적한 마을은 우리가 마지막으로 남은 숙소를 예약했을 만큼 모든 숙소가 이미 예약되어 있었다-크레타 섬에서도 차가 없으면 갈 수 없는 마을의 이야기이므로 이 얘기 때문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크레타섬은 프랑스인들과 독일인들이 정말 사랑하는 여행지 중 하나여서 어딜 가나 프랑스인들로 가득하고 한적한 마을 식당에도 늘, 간단한 프랑스어를 하는 종업원들이 있어 신기했다. 

안개 때문에 수온이 생각보다 낮았던 해변, 카시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기사에서는 프랑스 여행전문 연구기관인 Pro Tourisme이 프랑스 사람들의 2024년 7월, 그리고 8월에 떠날 휴가 예산이 작년 2638유로에서 7퍼센트 포인트 감소한 2450유로라고 발표했다고 말한다. 올해 휴가객의 10%만이 작년 대비 예산이 증가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2450유로는 한화로 362만 원 정도(2024년 8월 29일 기준)다.


 재미있는 건 2달 후에 르 피가로에 실린 기사에서는 정 반대의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2024년 5월 15일, '프랑스인의 평균 여름휴가 예산이 12년 만에 최고로 치솟다'라는 기사다. 기사에서는 금융상품기업인 Sofinco가 여론조사기관 OpnionWay에 의뢰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58%의 가구가 이번 여름에 휴가를 떠날 거라 답했으며, 그 예산은 평균 1697유로(250만 원)로 1년 만에 12퍼센트 포인트 증가했다고 한다. 기사는 이 현상에서 인플레이션이 진정을 보이고 임금인상이 이 증가세에 더 큰 영향을 가지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풀이하는데 나는 동의하기 힘들다. 특히 인플레이션이 진정세를 보인다는 점이. 

 르 피가로 기사는 41%의 응답자들이 이번 여름 집에 머물 것이라 답했다고 말한다. 작년에 비해 더 높아진 비율이라고 한다. 그들 중 반 이상(저 중에서 61%)은 그럴 여유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조사에 따라 휴가에 할당하는 평균 액수는 달라지지만, 불평등관측기구 (Observatoire des inégalité) 발표와 비교하면 이 결과도 40%의 프랑스인들이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고 발표했으니 거의 일치하는 셈이다. 불평등관측기구가 인용한 수치는 여론조사기구인 크레독(Crédoc)의 것이다. 


 불평등관측기구의 글을 보면 경제적으로 가장 여유로운 프랑스인들이 어려서부터 휴가 기간에 떠나는 것을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로 하며 성장하기 때문에, 또한 별장처럼 더 비용을 들이지 않고 숙박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그들에게는 더 많이 있기 때문에 더 주거지 이외의 장소에서도 편안하게 적응하며 떠나는 것 자체에 저항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현실적인 연구결과를 보고 나는 조금 슬퍼졌고, 조금 안심도 했다. 부끄럽지만 주위에 여름에는 시댁의 성으로, 겨울에는 상류층의 휴가처로 이름이 난 그슈타드로 훅훅 떠나는 동료들을 보다 보면 중위소득의 의미나 현실적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정말 잘 알면서도 내 삶에 자신이 없어지는 순간이 가끔 있어서다. 


 나라 자체가 크기도 하고, 여러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이다 보니 반도지만 사실상 섬나라인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프랑스 휴가 풍경이 신기할 때가 많다. 일단 최종 목적지가 스페인이라면 선택지는 여러 개가 있을 것이다. 비행기, 기차, 자동차,  혹은 그것들의 집합. 많은 사람들은 스페인으로 가는 길에 가족이 살고 있다면 일단 (예를 들면) 리모주에 사시는 할아버지 댁까지 차를 몰아 간 후 그곳에서 3일을 보내고, 또 리모주에서 카르카손에 사는 고모 댁으로 차를 달려간 후 그 집에서 3일을 지낸 뒤에 고모댁 식구들과 합류해 스페인으로 떠나는 식으로 휴가를 계획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가족도 보고, 현실적인 부분으로는 일주일치 숙박비가 굳으니 이득이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프랑스에도 존재하지만 더 넓은 집이나 여유로운 삶을 찾아 파리 밖에서 일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지방도시에는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넓은 집에 사는 사람이 많아 친지들을 며칠 재우더라도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굳이 지방까지 가지 않더라도 파리 근교 위성도시에는 파리의 해도 너무한 주거 비용을 피해 이사 온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며 살고 있다.


 올해 초에 회사에서 오랜만에 마주친 동료에게 인사를 했더니, 신선놀음 구경하다가 도끼 썩은 얼굴로 '나 사실 작년에 남은 휴가가 많아서 4주 쉬다 오늘 나왔는데, 그래서 지금 기분 너무 이상해.'라고 했다. 안 그래도 바이킹 전사같이 생긴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니까 더 시간여행자처럼 보였다-바이킹 어쩌고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게 지레 미안해서 이런 생각을 안 하려고 했는데 어느 날 다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취미가 사냥이라고 했다. 그 후로는 마음껏 바이킹 상상을 한다-. 다들 휴가철이 찾아오면 행복한 얼굴로 넌 휴가까지 몇 주 남았냐고, 난 몇 주 남았다고 이야기한다. 8월이 찾아오면 동네 빵집과 레스토랑, 정육점과 과일가게가 문을 닫는다. 


 프랑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라는 질문에 누군가는 자유정신이라고, 또 누구는 다양성이라고, 누군가는 기술에서 나온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아무리 못된 사람도 '내가 쉬면 너도 쉬는 거지, 그렇긴 하지'라고 말하고 수긍하는 이 사회적 이해가 프랑스의 커다란 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프랑스 사람이 한국 사람보다 이해심이 많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며 나는 이것이 잘 안착한 시스템에서 나오는 이해라고 생각한다-. 잘 쉬고 나서 일터로 돌아온 사람들을 다시 맞이하는 일을 매년 반복해 온 이 사회는 휴식을 모르는 세상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느리지만,  보다 건강하게 멀리 가는 힘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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