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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Sep 06. 2024

?일, 파리, 건설회사 (1)

위탁의 위탁

이 일자리를  찾기 전에 공백기가 꽤 길었다.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가 B2 레벨 시험을 합격하기까지 시간이 들었던 탓이지만 어이없는 실수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때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시기의 일이다. 공부를 하기보다는 일자리를 더 공격적으로 찾고 있었고, 장기비자로 온 사람들 대상으로 실시하는 신체검사와 사회통합교육을 천천히 받고 있던 때, 집 근처 한 사무실에서 사무보조 공고를 올렸기에 지원을 했더니 바로 연락이 온 것이다. 심지어 전처럼 영어로 일할 수도 있었다! 전화 스크리닝은 분위기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면접관이 물었다. 


"그런데 너 비녯(Vignette)은 있니?" 


 어.. 없는데.라고 대답했다. 일단 비녯이 뭔지 몰랐고 그때까지 받은 건 스티커처럼 생긴 비자 하나다. 분위기가 급변했다. 비녯이 없으면.. 우리랑 일하는 건 좀 힘들겠다. 그럼 안녕. 허탈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비녯은 노동 자격을 부여하는 서류라고 보면 되고, 이민청에서 진행하는 과정을 모두 마쳐야 받을 수 있단다. 그런가 보다, 하고 마지막 사회통합교육까지 받았는데 끝까지 비녯을 주지 않는 거다. 이민청에도 물어보고, 귀찮은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도 여러 차례 확인했는데 이젠 비녯을 주지 않는단다. 얼마 전에 절차가 바뀌어서 내가 내무부 웹사이트에서 거친 과정이 비녯을 대체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 사실만 알았어도 잡을 수 있었던 기회를 내 발로 뻥 차버린 것이다. 모은 돈이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잘 알았기 때문에 매우 속이 쓰렸지만 첫 기회도, 그리고 이번 기회도 느낌이 좋게 진행되었으니 곧 내 기회가 올 거라 생각했다. 잔인하게도 기회는 오지 않았고, 여유롭게 생각했던 우리는 날이 갈수록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간만 해도 우리에게는 '프랑스어는 언제든 필요하니까, 지금은 꼭 필요한 일종의 투자 기간이야'라는 긍정의 정신이 살아있었다. 아직 매몰찬 현실의 따귀를 맞기 전의 일이다. 

새해를 맞은 베니스 

 코로나가 이곳을 덮치면서 한국 관광기업들이 올리던 공고들이 싹 사라졌다. 사실 이 기간에는 취직을 했다 해도 별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장만 봐도 내 인종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며 피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았기 때문이다. B2 시험에 합격은 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내 생각을 똑 부러지게 말하기 힘들었다. 사람들 말하는 속도는 여전히 너무 빠르고 라디오처럼 분명하지 않았다. 조금 위축되었다. 그래도 면접은 봐야지 않나, 당시 프랑스 거주 한인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에 서류 관리 업무 공고가 올라와 바로 지원했다. 공고는 한국어로 올라왔는데 전화는 프랑스어로 왔다. 이때까지는 나를 고용하는 사람들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알쏭달쏭했다. 


 의문은 내게 전화한 프랑스 사람을 만나러 헤드헌팅 회사로 갔을 때 풀렸다. 처음으로 앙테림이라는 노동계약 조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들 말은 프랑스 기업과 일하는 한국 건설회사가 프랑스 기업 건물에서 같이 일을 하는데 그 한국 건설회사 측에서 서류 보조를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에 프랑스로 돌아가면 꼭 현지 일자리를 거머쥐고 싶다 생각했기에 조금 슬펐지만 그 시국에 정말 귀한 일자리였다. 다만 CDD-기간제 계약직-와 CDI-정규직- 계약밖에 몰랐던 입장이라 당연히 앙테림도 비슷한 조건에서 계약이 이루어진다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프랑스라면 휴가야 뭐 당연히 알아서 주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앙테림 계약은 주로 짧은 기간 안에 대량의 일이 처리되어야 하는 상황에 진행하는 계약이었다. 주재원 비서나 이번 서류 보조 작업처럼 그 정해진 기간 동안 공백이 생기면 곤란할 때 말이다. 


 이때 느낀 점이 있어 이후 직업을 구할 때는 Intérim, 앙떼림이라 쓰여 있으면 무조건 피했다. 내게 최종 목표는 남편과 비슷한 리듬으로 1년을 나고 집 대출에 문제가 없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경제적으로 삶을 지탱하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비서로 진로를 확 틀어버렸는데 직군이 직군이다 보니 앙떼림 계약이 꽤 많았다. 배경도 단순히 보스가 공백이 생기는 걸 싫어하는 회사부터 일이 너무 많아 휴가를 주기 곤란한 직장까지 다양했다. 

 필연적으로 다음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점이나 휴가가 없다는 점처럼 단점이 분명하지만 앙떼림 계약은 같은 직군 CDD나 CDI 계약보다 한 달 임금이 조금이라도 높게 책정되고 퇴직금 명목은 아니지만 매달 조금씩 적립된 돈을 계약 종료 시 한 번에, 퇴직금처럼 받을 수 있다는 약간의 장점도 있었다. 건설회사라면 완전히 남초회사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프랑스에 오기 전에 여비를 모으려고 건설프로그램 회사 콜센터에 잠시 일한 적이 있어 '그 당시의 고객님들을 만나러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들어가 보니 남초 회사가 맞았는데 이곳 역시 같이 일하는 분들이 정말 좋아 옛날 안 좋은 기억들을 잊는 데 많이 도움이 되었다. 합리적이고 유능하고 도와줄 준비가 될 사람들과 일을 했다. 외국인 반, 한국인 반 정도였는데 생각보다 프랑스어로 일할 일은 많지 않았다. 


 나는 서류만 담당했고 행정 일만 맡아서 하는 비서분-둘 다 프랑스사람이었다-들이 두 분 있었는데, 한 명은 일에 관심이 전혀 없었고 남은 한 명은 내가 비서가 아님에도 내가 같은 편이 되어 일하지 않는 사람을 단죄해 주길 바라 열심히 도망 다녔다. 처음엔 이야기쯤이야 충분히 들을 수 있다 생각했는데 점점 자기는 인터넷을 잘 못한다고 작은 비서 업무를 내게 주기 시작하길래 그 후부터는 정말 열심히 모르는척했다. 간식비가 넉넉히 책정되었던지 직장에 부식류가 많이 돌아다녔는데 상사들이 일찍 퇴근하면 내게 일을 주려 하던 그 비서가 나타나 냉장고를 털어가는 것을 보는 게 하루 끝에 보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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