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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Sep 06. 2024

5주, 파리, 실업급여

실업급여를 받다

앞 글까지 다룬 직장에 다니면서 일도 적성에 맞고 사람들도 정말 좋아 행복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도, 남편도, 남편의 할머님 할아버지까지도 내가 계속 이곳에서 일할 수 없는지 궁금해하셨지만 내 계약이 끝남과 동시에 회사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력서는 여전히 산산조각 난 경력을 자랑하고, 이 무렵 계속 프랑스에 사는 방향으로 삶도 가닥이 잡혀 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뭘 하고 먹고살지!


 10개월간의 근무 덕분에 실업급여 수급 기준을 채웠다. 지금은 실업급여 개혁 때문에 아마 그 당시만큼의 금액은 못 받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 6개월 동안 한 달 실업급여로 1400-1500유로 정도 금액을 받는 동안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C2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정규직을 목표로 달릴 텐데, 그리 되면 중간에 내 프랑스어의 부족함을 통감하더라도 이렇게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은 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코로나 시국이라 마스크를 끼고 새를 관찰해야 했던 까마르그 습지

 아직 코로나 여파가 조금은 남아있던 시기라 프랑스 구직센터에서도 대면으로 불러내 구직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요즘은 이런 부분들이 전부 코로나 이전처럼 활발하게 대면으로도 이루어지고 있어 2021년 말과 지금 상황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가장 놀라웠던 건 실업급여 수급 중 1년에 (주말포함)35일이나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민자가 많아서 그런 것이었을까? 이 1년에 35일이라는 부분에 대한 해석이 ‘실업급여를 수급하는 기간을 1년으로 잡아 비율로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기계적으로 매년 35일 발생’인지 확실치 않아 나와 남편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지만 애플리케이션에서 적용이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한 결과 ‘1년에 기계적으로 35일 발생’이 맞았다. 내가 다시 자유용병이 된 것이 11월의 일이기에 애플리케이션에서 어떻게 신고가 되는지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에서 어림잡아 33퍼센트 정도를 세금으로 내왔다. 매달 급여명세서를 보면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살벌하게 떼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나 정도면 병원도 자주 가고 실업급여도 실속 있게 받아본 편이니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낸 세금만큼 ‘뽕을 뽑았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28살이 되도록 프랑스에서 구직하면서 공백기에 대한 질문이나 왜 경력이 이렇게 토막 나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두 번 정도 받았다. 당시까지는 아직 ‘비자 종류를 바꾸느라 한국에 잠시 가 있어야 했다’는 변명이 먹혔지만 아무리 프랑스가 한국보다 공백기에 관대하다 한들 이렇게 계속 살다 간 정규직과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았다. 그 예상처럼 2023년 구직과 이직을 일삼을 땐 가끔 날카로운 질문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고생은 했어도 철저하게 준비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협조적인 남편이지만 구직 기간을 길게 가지면서 외벌이 가장으로 느끼는 그의 부담도 늘었다. 어쩔 때는 나도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걸지도 몰라’ 라거나 ‘처음에 운 좋아서 찾은 일자리를 가지고 그게 내 수준이라 착각해선 안 돼’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정말 객관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어 당장 일일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할 순간이 아니면 고집을 이어가는 편이다. 그런 고집들은 당장의 곤궁함을 깊게

할지언정 먼 미래의 선택에 도움이 되었다.

 물건을 살 때 하는 생각이 있다. 잘 모르는 분야의 물건이라고 해서 필요할 적에 가장 싼 것을 사버리면 당장 며칠은 어찌어찌 버티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싼 것을 사고, 거기에서 느낀 불만 때문에 중간 가격의 것, 결국은 고가 상품을 사는 바람에 처음부터 좋은 품질의 물건을 한번 사면 족했을 것을 두 번이나 무의미한 지출을 하고 만다는 것이다. 거기에 낭비한 시간은 말할 것도 없이.


 일자리를 찾는 건 물건을 사는 것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지만 나는 이 둘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초기의 잘못된 선택이 추후 엄청난 추가 지출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나 때로는 잘못된 싸구려 부품으로 낸 유격이 걷잡을 수 없는 손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점. 그래서 아무리 마음이 불안하거나 이 불안이 부부 갈등으로 돌아올 때도 쇠고집으로 버텼다. 이 남자가 좋아서 이 나라에 온 것도 내 선택, 이 나라에 살면서 이런저런 불편한 면이 있는 것도 내 선택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왕 이곳에 와서 살기로 결정했다면 내 삶에서 이 남자가 사라진다 해도 남을 것들을 내 손으로 만들어 나가는 건 내 책임이다. 그건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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