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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Sep 06. 2024

5주, 파리, 비자센터 A

진로변경의 시작

두 번의 도전 끝에 50점을 넘기면 합격인 C2레벨 프랑스어 시험에 49점을 받고 떨어졌다. 두 번째 도전은 이곳에 다니던 시기에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애초 이 도전이 정규직 취업에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는 점과 이미 마음에 드는 곳에 정규직으로 취직했다는 점 때문에 더 이상 도전하지 않았다. 1점 차이로 떨어지고 나니  허탈해진 것도 물론 크다. 매 시험에 응시료가 200유로 남짓인데 이미 두 번 도전한 후 자기만족 때문에 한번 더 시험을 치르기에는 너무 큰돈이기도 하고 말이다. C2 레벨 음성파일을 처음에 들었을 때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 직장에서 프랑스어로 주고받는 대화가 더 빠른 탓에 처음엔 바짝 긴장했었다.

햇살과 여유를 충전해 온 바르셀로나 여행

 프랑스에 정착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난 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지금까지 해온 다양한 분야에서의 짧은 경력들로 지원했을 때 합격할 확률이 큰 직군들을 추리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처럼 CDD나 앙떼림으로 일을 하기엔 집 대출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정규직으로 진득이 오래 일하길 원치 않는 지원자'라고 낙인찍힐 가능성이 컸다. 이제 프랑스어도 준비가 되었겠다, 한국과는 관련 없는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을 때가 왔다. 아직도 '멋진 직장'에 대한 욕망이 가득했던 나는 국제기구에 나오는 공고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파리에서 살기에 할 수 있는 멋진 경험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보조 직렬로라도 국제기구에서 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고 사람들을 지원하는 게 말이다.


 프랑스에서 맨 처음 다녔던 게임회사에서 같은 팀에 다녔던 동료가 마침 내가 지원했던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차마 말을 걸지 못했다. 예전 직장 사람들 중에서 최대한 국제기구에서의 삶이 어떤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커피 한잔 사며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공고에 대한 정보는 늘 Glassdoor나 Indeed, Linkedin에서 찾았다. 국제기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사무보조나 비서 일은 거의 비정규직으로만 고용을 했지만 정규직 위주로 기회를 찾던 이 시기에도 '살면서 한번 OECD, WWF 다녀보고 싶었는데 비정규직이 문제냐'라는 생각으로 그냥 지원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유네스코는 애초에 내 경력으로 지원할 수 없는 공고만 올렸고, OECD에서 연락이 왔을 땐 조금 미쳐 날뛸 뻔했다. 스크리닝에 면접까지 통과했는데, '네가 추천인으로 적은 사람들한테 연락해도 될까?'라고 말하기에 이건 진짜 된 거다. 생각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다. 심지어는 추천인으로 적었던 분들께 연락을 드려 혹시 이런 연락이 갈 수 있으니 잘 좀 부탁드린다고 미리 말씀도 드렸는데! 추천인 중 한 명조차 전화를 받지 못한 상태에 떨어트리지 뭔가. 떨어지는 건 익숙하지만 이럴 거면 추천인 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지... 야속했다. 비자센터로 가게 된 것은 결국 소거법의 결과였다. OECD는 이후에 나를 두 번 죽이는데, 위에 적은 것처럼 추천인한테 연락이 올 거라고 말씀드린 후에 떨어진 것도 서운했지만 몇 달이 지난 후에 우리는 유감이며 너는 떨어졌다는, 얼마 전에 받은 이메일을 한번 더 보내왔다. 이런 것을 부관참시라고 하는 것일까?


 연구원을 하다 보면 시키는 일은 거진 다 해야 하기 때문에 비자 신청도 업무 내용 속에 있었다. 외국인 입장으로 프랑스에 살게 되면서 서류의 산과 매년 씨름하기도 했고. 필요한 서류를 모으고 검토한다는 면에서는 기존 업무 내용과 닿는 부분이 많아 지원했다. 이곳과 다음 직장이 아니었다면 나는 세상 다양한 나라의 정부들이 서비스를 사기업에 위탁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나 어떤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나라에 비자를 받아야만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래도록 몰랐을 것이다. 한국 여권이 얼마나 힘이 있는 여권인지 비자센터들을 거치면서 깨달았다. 이 두 직장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그만뒀으며, 이곳같은 경우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낀 적이 없어서 퇴사를 했다. 회사가 직원을 (민원인 등의 위협에서) 보호할 마음이 전혀 없다고 느끼기도 했고.


 비자 센터란 어떤 나라에 가기 위해 비자가 필요한 사람들과 그 '어떤 나라' 정부 사이에서 활약하는 조직이다. 지원자한테서는 서류를 받아서 정부에 주고, 정부에서는 비자를 받아 지원자한테 준다. 지원자가 너무 늦어서 일정에 맞추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대략적인 소요기간에 대한 안내도 하고, 빠진 서류가 있거나 적당하지 못한 서류를 받았다면 그 점도 고지를 한다. 특수한 경우라서 남들보다 빨리 비자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바로,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유관부서에 호소한다. 이걸 직접 하는 나라-미국처럼-도 있지만 전문 기업에 외주를 주기도 한다는 걸 전혀 몰랐던 나는 첫날부터 배울 것이 많았다.

 첫날 우범지대에 있는 회사로 출근을 했을 때, 나는 뭔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리 이름을 보고 우범지대의 일부라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 대놓고 역 바로 앞에 있는데 분위기가 안 좋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동네 양아치란 양아치들이 다 하필 역 앞에 앉아 시간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한테 내가 지나가는 게 어때 보였겠는가, 이때부터 일단 하루에 한 번은 양아치들의 야유를 듣는 미래가 확정되었다. 출근한 지 일주일쯤 되었던 날, 남들을 먼저 보내고 퇴근을 하는데 역 바로 옆에 누가 자기 구토물에 상체를 박고 쓰러져있었다. 움직임은 전혀 없었고 사람들은 늘 보는 풍경이라는 듯이 그 옆을 지나쳐서 역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SAMU(프랑스의 119)에 신고를 했다. 다섯 번 정도 신고를 했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다. 겨우 연결이 되었는데 그들이 나에게 계속 '그 쓰러진 사람이 SDF(노숙자)가 아닌 게 확실하냐?'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게 대체 왜 중요한지와 설령 노숙자라 한들 토 속에 쓰러져있는 사람의 등만 보고 내가 어떻게 노숙자인지 판별할 수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나는 모르겠다는 소리만 반복했다. 나는 그 후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금 궁금해했지만 그가 역 근처 식당 유리벽에 딱따구리처럼 머리를 박고 있는 걸 본 후에는 절대 다시는, 그를 위해 신고해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집에가서 (내 눈앞에서 쓰러진 게 아니라서 얼마나 시간이 지난 후에 실려갔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때문에) 그 아저씨 죽었으면 어떡하냐고 조금 울었는데 눈물이 아까웠다.


 하루는 변전기가 터지는 것처럼 큰 뻥 소리가 났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던 길이었다. 하필 유동인구가 많은 역 앞에서 그런 소리가 나니, 또 도시가 도시이다 보니 거리 사람들은 다 얼어붙었다. 그리고 공포에 질린 수선거림이 하나둘씩 군중의 경직된 몸을 움직였다. 나는 설마 변전기겠지, 변전기겠지 생각하며 패닉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잰걸음으로 사무실에 돌아왔다. 다음날 기사에 보니 변전기가 터진 게 맞았고, 조금 안심했다.


 회사 주변에 늘 이상하리만큼 인분 냄새가 나는 거리가 하나 있었다. 오페라 역에는 늘 방귀냄새가 나는데, 여기는 한 술 더 떠서 똥냄새가 나는구나.. 나는 그 거리를 걸을 때마다 한층 더 우울해졌다. 회사 사람들은 정말 좋았지만 대체 얼마를 받아야 이 안전에 대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안전도 문제였지만 회사 측에서 최소한의 비품도 갖춰주지 않거나 한국 출신에게도 상당히 많게 느껴지는 초과근무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후 한참이 지나 재취업을 하게 되지만 일찌감치 그만둔 것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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