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률의 비밀
비자센터 B에 합격한 것은 A를 그만둔 뒤 상당한 시간이 지나 일자리에 절박해졌을 무렵의 일이다. 최종면접까지 보고 나서 2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기에 떨어졌다고 굳게 믿었는데 붙었단다. 그동안 다른 국제기구도 지원했지만 국제상업사무소 최종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나는 미국 비자센터-대사관에서 운영한다-가 정말 궁금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공고가 날 때마다 지원했는데 이 당시엔 연락조차 못 받았다. 하도 많은 곳에 지원을 하고 떨어져서 비자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내가 떨어진 기구의 근로자가 오면 한없이 부러워졌다. B는 훨씬 더 규모가 큰 비자센터였다. 같은 직급은 다 같은 일을 한다 하니 이 정도면 대체자가 없어서 휴가를 못 가는 일도 없을 것 같고, 보안요원도 몇 명이 붙어있으니 안전할 것이다. 면접 끝에 책임자들이 '너 초과근무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길래 '어차피 남편도 늦게 끝나서 일하는 것 자체는 좋아, 근데 돈은 받아야 해.'라고 말하니 '오우 당연하지 체리야, 설마 우리가 돈을 못주겠니'라고 하길래 기분 좋게 첫 출근을 했다. 그리고 야근 수당은 이곳 다니면서 구경한 적이 없다. 비자센터란 다 그런 것일까..? 세 번째 센터까지 경험했다면 어떤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대규모 센터라서 많은 부분이 체계화되어 있었다. 아마 중요한 문서를 다루는 곳이니 A센터에도 카메라가 있었을 것 같은데 카메라를 직접 보거나 그것으로 대놓고 감시를 당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B센터는 책임자가 간수처럼 각 구역 CCTV를 보고 기민하지 못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 채찍질을 하거나 손이 더 필요한 곳으로 가라고 지시하는 형태여서 첫날부터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내가 다닌 어떤 조직보다도 더 -한국 5인미만 사업장에서도 일을 해보았지만- 순수한 어둠에 가까웠다. 하루의 시작과 마지막에 점호가 있고, 법정휴게시간이 준수되지 않았고, 우리들 중 누구도 일과시간에 화장실을 갈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착했던 항공지상직 출신 동기가 1달 만에 나가자 '다음은 나다'라는 마음으로 탈출준비를 시작했다. 그녀가 그만두었다는 사실보다 이곳 근무여건이 어떤지 알면서도 그녀가 그만뒀다는 사실을 점호시간에 기분 나쁜 기색으로 떠들던 상사들에게 많이 실망했다. 일단 이 회사의 어둠을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도록 하자.
내 불만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건 센터 운영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오전에 받은 지원자들이 점심시간까지 소화되지 못하고 특정 구간에서 정체되면 점심시간이 15분이 되기도 한다는 점-실제로 여러 번 발생했다-과 시간마다 발생하는 휴게시간이 이곳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단 하나의 과장 없이, 숨 돌리고 밥을 사 오고 밥을 먹고 하루에 '단 한번' 화장실을 가는 시간이 단 15분 혹은 그 미만일 때가 이 직장에 자주 존재했다는 점이다. 내가 이곳에서 1년을 채우지 못했는데도. HR도 상당히 이상하게 돌아가서 나는 집안 사정으로 여름 특정 기간에 휴가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사측에 알리고, 그 조건을 못 지켜주면 여기 못 다닌다고까지 말한 후에 출근을 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상사한테 다시 확인하니 전혀 못 들었다고 했다.
회사에 자주 오지 않아서 볼 일이 없는 동성의 상사가 하나 있었다. 지부장이어서 특별히 중요한 전달사항이 없으면 이곳까지 올 필요가 없어서였다. 그녀도 내가 이곳을 떠날 동기를 준 사람 중 하나인데, 내가 프랑스에 오기 전에 두 번, 각기 다른 회사에서 성희롱과 추행을 당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실 거다. 센터 담당자 책상 앞에서 특수 케이스 발생을 알리기 위해 기다리는 내 허리를 그녀가 감싸 안고 내 엉덩이에(주사를 맞는 위쪽부위) 자기 머리통을 가져다 비볐을 때 나는 당장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담당자는 자기 책상에서 벌어진 일이니 분명히 그것을 봤을 텐데 이상한 기색으로 눈을 피했다. 센터 담당자 책상은 감시를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우리 일벌들 책상보다 한단 위에 있어서 높이 차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센터장 반응이 아무리 봐도 처음있는 일같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문제제기를 해도 센터장은 절대 내 편에서 증언하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살다 살다, 세 번이나 직장에서 이런 짓거리를 당하다니. 그 처음의 추행도 어이가 없었지만 이 지부장이 두 번째로 센터를 찾았을 때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내 머리통을 잡더니 정확히 내 왼쪽 눈알과 왼쪽 귀 사이의 가죽 어딘가에 키스를 하자 순수한 공포가 솟아났다. 나는 분노로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진짜 미친 사람 앞에서는 이렇게 무서워지는 법인가, 남편이 세 번째는 없다고, 세 번째는 있어서도 안되지만 또 무슨 일 있으면 그다음 날부터 드러눕고 회사 나가지 말라고 말했을 때 나는 진짜 광기의 공포를 되새겼다.
타고난 건강이 그렇게 좋지 않은 편이라 이곳에 다니면서 정말 크게 탈이 날까 봐 걱정을 했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쉬는 시간이 없는 것도 큰 문제지만 화장실을 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어릴 적 겪은 방광염의 통증을 추억하며 내가 여기서 언제 한 번은 아플 거야, 아프고 말 거야.. 생각을 했지만 의외로 탈이난 건 손목이고 내장 기관은 아니었다. 더 다녔다면 달랐겠지만... 건강문제라고 해야하나, 이곳에서 계속 구두를 신고 생활하다 보니 발에 티눈이 많이 생겨 괴로웠다. 그만둔 지 1년이 지나니 발이 다시 멀쩡해져서 요즘 기쁘게 생활하고 있다. 동기가 그만두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으면서 새 직장에 들어갈 때 그곳이 어떤 곳인지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리뷰를 보고 출근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곳에 관한 리뷰를 체크했을 땐 High turnover라고 적힌 글이 딱 하나에 나머지는 아주 애매하게만 단점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돈을 주고 리뷰를 세탁하는 게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위에 언급한 단점들도 어마어마하지만, 연봉이 안내받은 것과 달랐다. '분명 보너스 포함 이만큼이지만 보너스를 못 받는 일은 없어서 이만큼이 네 연봉이다'라고 했는데, 상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너네 이러면 이번달 보너스는 쓱싹 하고 없는 거야. 협박을 하는 거다. 한 달은 실제로 보너스를 못 받은 적이 있는데 보너스를 제외하니 거의 최저시급이나 다름없어서 그달은 직원들 사기가 바닥을 쳤다. 회사에서 매일 쓰는 기기들 역시 상태가 안 좋았다. 사측도 분명히 그 사실을 알았을 텐데, 알아서 하라는 명령만 내려와 다들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나는 늘 머리끝까지 화가 나있어 누가 도발하면 바로 부스에서 나가 맞붙어 싸웠다. 보안요원은 내 얼굴만 보면 '오늘 또 누구랑 싸웠니?'라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언젠가는 민원인이 날더러 거짓말쟁이라 하기에 한바탕 하고 직원 공간으로 가 세수를 했다. 내 사물함을 꽝 닫는 바람에 문이 부서졌는데 (문짝 째로 떨어지길래 그대로 사물함 위에 얹어놨다) 일과시간이 끝나니 고쳐져 있었다. 휴게실에는 카메라가 없다고 했었는데, 이때쯤 되자 조금 미쳐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당시 우리 부부가 마음에 들어 했던 집이 있었다. 가격협상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가격 협상이 이루어지면 대출 때문에 당분간은 계속 이곳에 다니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할 만큼 그 집이 마음에 들었었는데, 집도 인연이 있어야 내 것이 된다는 어른들 말처럼 판매자 측이 점점 시간을 끌더니 결국은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끝내는 거래가 파투 났다.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