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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Sep 06. 2024

5주, 느와지-르-섹, 조리도구회사

완전한 혼자

이 회사에 합격했을 때 아무 걱정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일단 입사 며칠 전에 하필 그 넓은 느와지 르섹에서도 딱 회사가 있는 구역에서 누군가 소총싸움을 벌인 무리가 있었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 걱정은 데이터마스터 남편의 '프랑스 안전지도' 속 느와지 르 섹 노른자위땅에 위치한 회사 근처의 안전 수준을 보고 조금 잠재워졌지만 그래도 불안은 했다. 통근 과정에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시 통근시간이 편도 한 시간 반, 내가 버텨낼 수 있는 최대한도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자잘한 걱정은 있었지만 워낙 내 성격이 자잘한 걱정을 많이 하고, 이 정도로 이직을 하다 보면 걱정이 많은 건 당연한 수준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회사는 콘텐츠를 편집할 사람이 필요했고, 내가 한국에서 했던 일과 비슷한 직군에서 프랑스어로 일할 기회를 찾은 건 또 처음이라 신선했다. 지금까지는 '일단 뽑는 거 지원하자'라는 투였다면 이 직업은 프랑스에 온 후도 아니고 무려 한국에 있을 적 내 언어로 하던 일과 일치도가 높아 이 기회를 잡았다는 것 자체로 마음이 벅찼다. 그동안 공부하고 이직하고 매일 구직 공고를 돌리면서 해온 일들이 헛된 움직임이 아니었다는 걸 점점 나아지는 일자리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조리도구를 파는 작은 가게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 다니엘이 필요한 도구를 사러 갈 때마다 보이는 로고가 바로 이 회사 것이었다.

비자센터 B를 다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모르고 마냥 즐거웠던 태국 여행

 좀 멀어서 그렇지 지내기 좋아 보였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조리도구 데이터시트를 만들어 고객들한테 보내고, 오래된 사진을 교체하기 위해 공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찾아와 포토박스에서 사진을 찍고 보정했다. 곧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 콘텐츠 마케팅에도 손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어민이 아닌 사람한테 맡기기는 객관적으로 위험이 따르는 일이라 어지간히 많은 이들이 그만두었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 생각처럼 처음에는 스타쥬(인턴)들에게 이 일을 시켰지만 수도 없이 도망을 가서 정규직으로 뽑은 거라고 했다. 회사에서는 스타쥬들에게 불만이 쌓인 듯 보였다. '창의적인 거 하고 싶으면 로레알을 가야지 우리한테 오면 안 되지..'라고 했는데 스타쥬는 졸업 요건 중 하나라서 여기서 도망치는 게 스타쥬들에게도 원했던 바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쥬들이 왜 도망을 그렇게 쳤는지와 회사사람들이 왜 그렇게 출퇴근길에 문제가 없었는지 물었을까, 의문은 금방 풀렸다. 문제가 없을 때 편도 1시간 반인 통근시간은 자주 배신을 당했다. 낡디 낡은 전광판에 14분 뒤면 온다던 버스가 어느새 48분 뒤에 오는 것으로 바뀌어있질 않나, 느와지 르 섹의 아무것도 없는 도로 위에 승객들을 전부 내쫓은 버스가 아무 말도 없이 제 갈길을 가질 않나, 시티맵퍼(구글맵 같은 길안내앱)에 온다던 버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지를 않나, 출근길 버스가 르클렉(대형마트) 트럭이랑 싸움이 붙어 누가 비키네 마네 싸움이 붙지를 않나... 교통이 정말 불편했다. 아무 문제가 없이 대중교통망이 작동하는 날에도 길이 너무 막혀 20분을 길에서 버리기도 예사였다. 내가 파리에서 오느라, 차가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던 나는 지금 느와지 르섹의 주요 도로가 공사 중이어서 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도 이 지독한 교통체증 때문에 25분 거리를 1시간 걸려서 돌아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커리어는 어디로 가는가

 미리 예상을 못했는데 이곳이 공장이라 10분 거리에 있는 드라이브스루 맥도널드를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다들 도시락을 싸와서 먹었는데 나도 도시락을 가끔 가져가기는 했지만 여름에 취직을 했기에 푹푹 찌는 파리 지하철 안에서 1시간 반을 들고 가다 음식이 상할까 봐 자주 걱정했었다. 사람들은 다들 착했다. 그런데 공장 현장인원과 사무실 인원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점, 내가 아무와도 같이 일하지 않는 점, 그나마 일을 가르쳐주는 사수는 점심을 안 먹고 일할만큼 바쁘다는 점 때문에 점심시간이 늘 혼자인 것은 둘째치고 누구와 말할 여유가 있거나 인간적으로 누구를 알아갈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그나마 콜센터 사람들이 내게 조금이라도 다가와주려 노력했는데 그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다시 콜을 받으러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친근하게 아침, 저녁 인사를 주고받는 것만이 우리가 표할 수 있는 애정의 전부였다. 여기에 반경 1킬로미터의 유일한 동양인이 되고 나니 꽤 고립감이 드는 것이다. 나는 내가 외로움을 덜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는 제법 외로움을 느꼈다.


 밥을 먹은 뒤에는 혼자 산책을 했다. 이 동네가 조금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공장 옆에 있는 이웃 시멘트 공장의 넓은 공터에 주차되어 있는 빨간 차가 내가 가까워지면 차문을 열고 내가 멀어지면 다시 차문을 닫는 것이다. 그 시각 우리 공장 인원들은 점심을 먹고 차에서 쉬거나 공장 창고 그늘에 누워 쉬고 있었고 근처 공장은 내 보기엔 텅 빈 것처럼 조용했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다음 날은 열린 차문에서 남자가 나오더니 멀리서 나를 지켜보았다. 그 후로는 그나마 큰 도로를 끼고 있는 맥도널드 방향이 아니면 산책을 잘 나가지 않았다.


 이곳에 다니는 동안 맹세코 추가 구직 활동은 안 했다. 그런데 비자센터 B에 다니는 동안 매일 평균적으로 20 통정도는 지원서를 보냈다 보니 담당자들이 휴가에서 돌아온 후 지원서를 확인하고 연락을 해오는 것이다. 게다가 비자센터 B를 다니던 시절, 이 회사와 함께 구직 절차를 밟던 에너지솔루션 기업이 다시 연락을 해왔다. 중간에 휴가를 다녀오느라 연락이 없었단다. 나는 완전히 떨어진 줄 알고 지내는 중이었다. 그럴 만했던 것이 내가 한국에서 결혼식을 할 무렵에 인사부와 스크리닝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내가 여름과 겨울 시차를 헷갈려 면접 링크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고 1시간이 지나서야 답을 했던 것이다. 담당자는 그럴 수도 있다고, 한번 더 일정을 잡아 주어 스크리닝은 마쳤지만 연락이 안 온 지 벌써 한 달 정도 지났기에 나는 그래도 스크리닝은 보게 해 줘서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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