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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Sep 06. 2024

5주, 파리, 비자센터 B(3)

탈출계획

아무리 바쁜 회사에서도 빈틈없이 탈출을 모의해 실행하던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벽에 부딪혔다. 동료들이 마음처럼 탈출할 수 없는 건 물론 자기들 집에 걸린 대출 때문이지만, 이 회사의 보안정책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일과시간에는 휴대폰을 가지고 있을 수 없고, 센터 자체에서 인터넷 연결이 잘 안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휴게시간 없이 일을 하다 보니 다들 퇴근시간에는 녹초가 되었다. 상사들이 우리가 일과시간에 했던 실수들을 긁어모아서 점호시간에 터트리는 건 마지막 남은 기력까지 꺾어 이직에 쏟을 힘을 뺏어가려는 게 아니었을까? 나는 꽤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오늘의 퇴근 시간을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도 아주 큰 변수였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떠나고 싶어 눈이 돌아간 상태였기 때문에 저런 악조건 속에서도 내가 못할 일은 없었다. 면접이나 테스트 시간에 맞춰 집에 오기 위해 택시를 타는 한이 있더라도 들어오는 면접은 다 보려고 노력했다.


 뭐가 됐든 들어오는 면접은 거절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직장을 떠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그 주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정말 한숨을 많이 쉰다. 정말 쓸데없는 일에도 과장되게 한숨을 쉰다는 생각에 그게 무례하게도 느껴지고 못마땅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 직장에서만큼은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되어 평생 쉴 한숨을 다 쉬었다. 어떤 면접들은 아무리 택시를 타고 달려도 볼 수 없는 시간에 잡혔다. 그럴 때면 나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회사 근처 코워킹스페이스의 회의실에 빈자리가 있는지 급히 확인했다. 그렇게 파리정치과학대학교 장학처 최종면접에 떨어지고, 에너지 스타트업 비서직, 보안 스타트업 비서직에 떨어졌다. 남은 희망은 저어 멀리 교외에 있는 주방도구회사와 들어보지 못한 에너지솔루션 기업, 그리고 IESEG 대학원 학생처였다.


시댁식구들이 살던 르마다질 근처 호수

 아무리 피곤한 날에도 집에 가면 노트북을 폈다. 내가 아는 모든 구직 사이트를 켜고, 1 내가 지원할 수 있고 2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공고란 공고는 다 지원했다. '간편 지원'(내가 그 플랫폼에 등록한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바로 보내는 구직 방법)이 가능하고 특별히 그 직군에 맞춰 커버레터를 다시 써야 하는 공고가 아니라면 기계적으로 간편 지원을 했고, 정말 중요한 일자리는 따로 추려 그 자리에 맞게 커버레터를 쓴 후 채용 담당자 이메일로 전송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오만 데에 지원하고도 2주 뒤에 아무 연락이 없을 때는 조금 좌절했다. 일할 때 놓치는 전화 연락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집에 있는 동안은 어떤 전화도 놓치고 싶지 않아 샤워할 때도 핸드폰을 들고 들어갔다. 흐릿한 샤워부스 창문 밖으로 핸드폰에 불이 켜지면 화들짝 놀라 샤워부스 문을 열었다. 특히 이런 연락이 메일로 많이 오는 만큼 이메일 알림 메시지가 뜨면 나도 모르게 온갖 기대는 다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기소개서 쓰는 데에는 자신이 있어서 영어 커버레터도 크게 잘 못쓴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이때만큼 이력서를 진지하게 해부하고 일주일에 몇 건씩 직업맞춤형 커버레터를 쓰던 때도 또 없었기 때문에 이때 자기소개서나 이력서 쓰는 실력이 더 늘었다. 프랑스어 커버레터, 프랑스어 이력서, 영어 커버레터, 영어 이력서, 버전 원, 버전 투, 최종, 최종 2... 매주 늘어가는 문서함 속 파일들을 보며 언제쯤 되어야 정착할 회사를 만날까, 궁금했다. 아무리 포기를 모르는 나도 심신이 지쳐 '내가 너무 이상만 높나?' 라거나 '이제 적당히 정착할 줄도 알아야지'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럴 시간에 아직 지원 안 한 공고를 하나 더 찾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으로 일어났다.


 다들 그만둔다, 그만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정작 진지하게 그만둘 생각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구직리뷰사이트에 누군가 이 센터를 폭로했다. 어쩐지 아침부터 모르는 사람 하나와 지부장이 와있었는데, 지부장이 예의 그 추행을 일삼지 않아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워낙 감사가 자주 있어 또 감사가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사실 그 모르는 사람은 본사에서 온 HR이었다. 점호시간이 되자 상사들과 본사 HR 직원, 지부장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중에 변절자가 있다! 이중에 변절자가 우리 등에 칼을 꽂고-실제로 한 말- 바로 어제 구직리뷰사이트에 가족과도 같은-실제로 한 말- 우리 욕을 써놓았다! 나는 그동안 우리 센터에 인터넷이 끊겨 며칠 동안 고생을 한 일도, 여권 읽는 기기가 작동되지 않아 분노한 민원인과 한 공간에 갇혀 한참을 기다렸던 일도, 매일 수도 없이 써야 하는 프린터 일곱 대 중 네 대가 먹통이라 모든 이들이 더 나은 자리를 쓰려고 악착같이 일찍 출근해 온 일도 충분히 해결될 수 있었는데 그저 무시당해 온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센터에 어떤 실수가 있을수록, 또 그 실수가 큰 것일수록 저녁 점호는 길어졌는데 이날 점호가 얼마나 길었는지 짐작이 가실 것이다. 나는 원래도 이곳에 아무 정이 남아있지 않았는데, 리뷰 하나에 혼비백산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하루종일 고생한 사람들 면전에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니 완전히 정이 떨어져 2주 뒤에 HR에 사규에 적힌 퇴사 고지기간이 며칠인지 물었다.


 이 일이 터진 당일은 다들 점호가 너무 길어져 파김치가 된 채로 퇴근하느라 한마디 나눌 시간조차 없었지만 다음날 아침부터 사측에 서서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설파하며 그래서 네가 그랬니?라고 조사하는 동료, 그런데 틀린 말은 아니었지 않냐고 그 와중에 농담하는 동료,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동료 등 가지각색이었다. 언젠가 내 차례가 와서 동료 중 한 명이 '체리 네가 그랬니?'라고 말했을 때, 나는 피곤을 뚫고 눈알을 뒤집는 표정을 발사하지 않도록 많이 노력했다. 넌 기운 많아서 좋겠다.. 대신 나 곧 집 산다는 얘기 했잖아, 그런 큰 일 앞두고 왜 그런 짓을 하겠어?라고만 했다.


 다음 퇴사자는 나야! 내가 나갈 거야! 이 생각만 하며 버틴 몇 개월이었다. 싱겁게도 다른 동료가 먼저 탈출 티켓을 얻었다. 나는 늘 '퇴사하는 걸 어떻게 알리지?'라고 고민했는데, 이 동료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걔네는 훈련기간에도 월급 조금 주고 RTT를 준다더라고, 근데 너넨 안주잖아 그럼 뭐 어떻게 해.'라는 명대사를 상사들에게 던지고 국경 경찰(la police aux frontières - 입국할 때 도장 찍어주는 사람들) 이 되기 위해 떠나갔다. 나는 외국인 입장에서 이런 공공기관 일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못해봤기 때문에 기회를 노려 대체 어떻게 공고를 찾았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내무부 홈페이지에서 찾았다 하기에 몇 번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 글로 적어보니 그의 명대사는 어떤 일침처럼 보이는데 그런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고, 평소 그 동료 스타일대로 톡톡 튀는 농담처럼 느껴졌다. 말투야 어쨌든 그런 말을 상사 면전에 던진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게 느껴졌지만.


그리고 나는 다음 직장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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