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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Sep 06. 2024

9주, 낭테르, 에너지솔루션기업

정착할 수 있을까

공장 인원들과 버스에 갇혀있다가 출근시간에 늦거나 어제 퇴근길 버스가 중간에 다 내리라고 해서 다음 것을 기다리다가 결국 우버를 타고 역까지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급해진 사장님이 다른 인원들보다 30분 일찍 퇴근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고마운 제안이기는 했지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다들 비슷한 문제를 겪는 상황에 나만 30분 일찍 퇴근하면 결국 다른 사람들한테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기도 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니 말이다. 이 회사는 특이하게 4.5일제를 시행하는 회사여서 금요일에는 정오까지만 일을 하고 퇴근했기에 면접은 무조건 금요일에 보았다. 느와지 르 섹에서 낭테르까지는 1시간 반정도 걸렸기 때문이다. 처음에 HR과 통화했을 때 유급휴가가 6주라는 부분만 기억이 나서 막상 면접을 봤는데 별로라도 일단 한번 가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했다. RTT가 유급휴가와 별도라는 게 정확히 며칠의 유급휴가를 협상 테이블 위로 올리는지 아직 정확히 이해는 못 하고 있었지만.

내가 태국을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 매년 가고 싶다.

 역에서 내리자 거리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환경미화원들이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 왔다-면접날 이후로는 그런 적이 없다-. 그리고 1차 면접을 보면서 나는 이 회사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마침 그 전날 우연히 목격한, 포토부스 뒤에 가득한 검은 알갱이들이 쥐똥이라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었을까. 이 회사에는 내가 원했던 것들이 많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망할 염려는 당분간 없을 규모의 회사, 깨끗한 사무실과 화장실, 부재시 대체근무자가 존재하는 근무 환경, '다음 스텝'을 꿈꿀 수 있는 직무, 프랑스어와 영어로 일하는 환경, 충분한 휴가, 인수인계의 존재, 최대 50분을 넘기지 않는 합리적인 통근시간, 너무 자주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대중교통 노선, 지금까지 쌓은 경험을 골고루 필요로 하는 직무 내용까지. 면접 단계에서 하는 말을 다 믿을 것은 못 되지만 야근도 없다니, 점점 더 매력적이었다.


 최종면접이 한번 미루어지고, 보통 최종 면접은 뽑을지 안 뽑을지를 주로 보는 반면에 최종면접까지 나와 경쟁자를 따로 한 번씩 평가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서 속을 많이 끓였지만 다행히도 합격했다. 느와지 르섹에서 다니던 회사 사장님은 노발대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장님은 내가 없어도 이 공장을 운영하며 잘만 먹고살겠지만 나는 이번 일자리가 프랑스에서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을. 누가 누굴 걱정한단 말인가. 나는 이 마지막 이직으로 연봉을 좀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기대연봉을 물어보기는 했지만 계약서에 쓰여있는 것은 그전에 받던 연봉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차이는 아래와 같다.


현직장 휴가는 저기에 회사 자체적으로 주는(창립기념일과 비슷한) 휴가가 추가되어 총 9주라는 계산이 나온다

  같은 연봉을 받더라도 일단 4주 남짓 더 연차를 쓸 수 있다는 점, 새 직장에서는 원격 근무가 허용되어 1주일에 들어가는 통근시간이 확 줄어든다는 점, 이곳에서 오래 경력을 쌓아 들어가고 싶었던 국제기구 조직에서 비서를 구할 때 지원해 보는 것도 무리한 꿈은 아니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 이직이길 간절히 바라며 이직했고, 다행히 이변은 일어나지 않아 만족하며 1년 넘게 다니고 있다. 1년을 넘기던 날, 남편이 '너의 최대 근무 기록이 깨졌어'라고  말하며 좋아했다. 남편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끝을 모르고 이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일단 나 혼자 월세를 내며 생활했더라면 생활비 때문에라도 이직에 도전하는데 훨씬 더 겁을 먹었을 것이고, 집안일을 나눠서 해주는 사람이 없어 훨씬 더 피곤했을 것이다. 아무리 비자센터 B부터는 쉬는 시간을 갖지 않고 새 회사에 출근했다지만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이, 집을 산다는 큰 결정을 앞두고 자꾸 이직을 해버리면 나는 남편처럼 단단히 지지해 줄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다. 그저 이직을 마음으로 지원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가 더 피곤할 때도 커버레터를 같이 읽어주고 이력서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고치는 게 어떠냐고 조언해 준 남편이기에 나도 기회만 있으면 감사를 표하고 있다. 남편, 오늘도 고마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앞에서 내가 언젠가부터 출근할 회사의 모든 리뷰를 읽어보고 출근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연히 현 직장 출근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회사뿐 아니라 이 회사의 전신 페이지에 달려있는 리뷰까지 전부 다 읽었다. 내 직군이 아닌 사람들의 리뷰까지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적은 단점이 수많은 리뷰에서 상당한 일치를 보임과 동시에 그것들이 내가 보는 '진짜 단점'은 아닌 것이다. 예를 들면 연차가 올라감과 동시에 받는 연봉 인상률이 다른 회사 대비 만족스럽지 못하다거나, 자기 생각에 일이 좀 지루하다거나 다른 회사보다 덜 좋은 연금 패키지에 가입시켜 준다거나 등의 단점. '출퇴근에 5억 년 걸린다'나 '조심해라 연봉으로 거짓말 쳤음'같은 게 아니고. 게다가 회사의 장점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팀마다 다르긴 한데 사람들이 순한 편이다'라고 적어두었다. 리뷰 조작을 했다고 보기엔 전체리뷰 점수가 그렇게 좋지 않았고 장점이 그다지 다채롭거나 강조되어있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진정한 꿀직업의 향기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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