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붙잡고 붙잡고 붙잡기

by 체리

'우리 치료의 목표는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온전히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난 후에도 다시 멍해지는 순간이라면 여러 차례 있었다. 나는 그 순간들을 기억해 두었고, 치료 시간에 그 순간들에 관해 얘기하면 선생님은 종종 "그걸 붙잡아야죠. 쓸려가면 안 돼요."라고 했다. 나는 입으로는 '네'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별로 붙잡고 싶지가 않아서 문젠데..'라고 생각했다. 이 순간에 남아있을 의미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의미가 있어 보일 때도 있었고 없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랬던 것이 치료가 진행되고 약이 효과를 보이면서 또다시 멍해질 때 '어, 아니 안돼. 지금 멍해질 때가 아냐.'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다잡기에 이르렀다. 썩 괜찮은 기분이었다. 멍해지고 싶지 않았고, 나를 붙잡고 싶었으며, 나를 붙잡아 이 순간에 매어놓을 수가 있었다. 가능한 일이었다. 영영 불가능할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내 가족은 대체로 나를 지지해 주는 편이었는데-아버지한텐 말하지 않았다. 그게 아버지만의 탓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정신론을 듣고 있다가는 치료가 더 후퇴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 와중에도 엄마는 가끔씩 '정신 차려야지 이제.'라고 말했었다. 당시 나의 상태는 눈보라 속에서 백색소음만 줄창 듣고 있는 듯하여 별로 좋지 않았지만 엄마의 그 말만은 부옇기만 한 내 세상을 흔들면서 칼집을 내놓았다. 아무 감정이 없는 상태였지만 그 말만은 누가 내게 비비탄 총을 쏜 것처럼 작게나마 통증을 남겼었다. 그래도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한 말인지 알았기 때문에 원망이 들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울증 환자한테 '정신 차리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쓰는 글도 아니다-안 하는 게 좋긴 한데 그건 그들과 당신의 관계에 달려 있고-.


그때만 해도 감정이며 취향 같은 게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 엄마나 선생님한테 분노를 품지는 않았다.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다만 때로 '정신 차려야지 이제', '그걸 붙잡아야죠, 쓸려가면 안 돼요'라는 그 말을 떠올리면 전하지도 못할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난 그날 내 의지로 전화기를 붙잡아 병원을 찾았어. 난 할 수 있는 일을 안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데?', '주마다 병원엘 가잖아. 여기서 더 뭘 하라고 하는 거지?' 확실히 나는 이 이상의 노력을 내게 권할 마음이 없었다. 나는 나를 죽이지도 않았고, 어렸던 그날처럼 주먹으로 벽을 부숴 내 몸에 상처를 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는데? 늦게나마 내게 필요한 치료를 받으러 갔고, 매일 토하느냐, 토하지 않느냐의 기로에 서서 변기통을 붙들고 억억거리는 게 노력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내가 비록 공허를 담은 고기 주머니 신세였지만 자살에 관한 부분 외에 판단력에 큰 이상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내게 말하려는 게 '네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와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당신들의 그 말은 나를 구하지 못해. 절대 전하지 못할 말을 머릿속으로 했다. 나는 비루하게나마 살고 있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발전이었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두 사람의 말을 더 이상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누가 충고를 해준다고 해서 그걸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으니까. 아니 오히려, '좋은 사람' 되려고 듣는 충고마다 받아들이려 애쓰다 이 꼴이 난 거잖아, 누운 채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