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우울증 측정기
이번 우울증은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던 1년 동안 발병하고 악화한 것인 만큼 아버지가 영향을 미친 부분은 별로 없지만,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나와 엄마의 정신상태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우리는 종종 그 시기를 '살아남았다'라고 표현할 만큼 별로 좋은 기억은 남아있지 않고, 아버지는 그 시간을 어떻게 추억하는지 잘 모르겠다. 굳이 물어본 적은 없다. 지금까지 이해하려 애쓴 것도 가해자에겐 과분한 일이라 생각해서다. 나는 악에 받쳐 살았고 혹시라도 내가 학교에 간 동안 엄마가 몸을 던지지나 않을지 불안해하면서 지내기도 했다. 오빠는 군에 있으니 무슨 일이 있을 때 엄마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도 생각했다. 10대 말엽은 늘 그렇지는 않아도 많은 시간을 불안해하면서 지냈다. 그중 며칠인가는 베개 밑에 칼을 넣고 문고리를 걸어 잠근 채 잠자리에 들었고, 아버지의 가짜 상여를 만드는 상상을 했었다-어른이 된 후에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나 말고도 아버지의 가짜 상여를 만들려 했던 사람을 만나게 되어 신기했다 솔직히 롤모델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진짜로 만들었으니까-. 위에 기술한 바처럼 내 10대 말엽은 불안감의 비중이 높았는데, 때로는 우울감이 찾아왔지만 무시하고 넘기면 어느샌가 사라졌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일단 오늘을 무사히 넘기는 게 우선이었다. 이런 만큼 내가 아버지를 싫어하게 된 것도, '내가 이래서 아빠를 싫어하는 거야'라고 몇 번인가 서슴지 않고 소리친 것도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고, 나는 아버지를 대단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연민하게 되었다. 자업자득으로 받는 고통 말고, 그 사람이 살면서 짊어졌던 무게에 대한 연민 말이다.
미워하고 원통해하는 데에도 대단한 양의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나처럼 허약한 사람이 계속 이를 갈며 아버지를 미워하지 못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영영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조금씩 변한다. 아버지를 신뢰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릴 적처럼 당신이 상처받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은 안 한다. 저 사람이 상처를 받는다고 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지 않아서다. 아마 그 반대일 것이다.
아버지는 공감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탓에 말로 사람을 상처 입히고, 원한을 산다. 자연히 나는 아버지에게 아주 많은 것을 숨기는 방향으로 성장했고, 우울증 치료를 시작했을 때도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았다. 틀림없이 의지 운운하며 산에나 데려가려 할 테니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바라서는 안 될 노릇이니까. 우울증이 심하지 않았을 땐 몰랐는데, 아버지는 훌륭한 우울증 측정기였다. 우울증이 한창 심했을 때에는 쥐어짠 레몬처럼 아무 감정이 없어 아버지한테 느끼는 짜증조차 어떤 감정이었는지 기억해낼 수 없었다. 아버지한테 조금이라도 짜증이 느껴지는 날에는 '오늘은 (내) 상태가 조금 좋은걸?'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고, 그때의 나는 감정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껴 방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울기까지 했을 만큼 절실히 '뭔가'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짜증이라는 감정을 약하게나마 되찾게 한 아버지에게 고마움마저 느꼈다.
아직도 치료가 끝나지 않아서 아버지가 무례한 행동을 해도 예전 수준으로 무지막지한 분노를 느끼지는 않지만 나는 매일 어제보다 조금 더 분노한다. 치료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요지경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