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화라고 빠르게 말해보기
나는 오기가 많은 사람이다. 우울증이 생긴 후부터는 원래 가지고 있던 고집이나 화 같은 일면들이 거세되다시피 한 것을 느꼈는데 요즘 가장 기쁜 것은 내 답 없는 오기가 많이 돌아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들이다. 먹고 싶은 과자가 가게에 없어서 슈퍼 다섯 군데를 돌아 돌아 겨우 한 봉지를 사 왔던 날이나 몸은 피곤해서 눈이 감기기 직전인데 매일 해야 하는 공부를 놓지 않고 끝낸 날처럼, 내 안에는 에너지가 있고 그걸 통해 뭔가를 하고 싶은 순간, 해내고야 만다는 사실은 아주 의미 있다. 몸이야 거의 늘 좋지 않고, 치료 초기에는 우울증이 심해서 의지의 파편마저 사라진 날들이었는데. 목표가 너무 크다고 체념하지 않고 그걸 정해진 시간 내로 쪼개서 오늘 몫의 양을 해냈다는 사실이, 몸이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늘 몫의 공부를 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나는 화가 많이 났었다. 때로는 너무 피곤해서 잠드는 시간을 세심하게 조절해야 한다거나, 일이 끝나고 일터에서 돌아오면 밥을 먹고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거나. 내 의지 이외의 것들이 내 생활이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빈도가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에 그 화는 오랜 시간 누적되어 왔다. 그런데 치료가 차도를 보이고 있는지 그것들이-적어도 지금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을 막지 못하는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자 의기양양한 미소가 비어져 나왔다. 거봐!! 나도 할 수 있지!! 피곤 조까!라고 생각했다.
제이슨 스타뎀이 나온 영화 중에 아드레날린 24라는 영화가 있다. 인터넷에서는 "난 살아있다!! 난 살아있다고 니기미 씨부랄 것들아!!"라는 짤로 더 유명하다. 너무 오래전에 봐서 나도 마지막 장면을 빼면 기억나는 게 몇 없지만.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손을 닦고 크림을 바르면서, 손의 물기를 닦으면서 생각하는 건 딱 두 가지였다. 아드레날린 24의 대사와 '우울증 조까!!!'였다. '하하하, 조까라고!!'라고 생각하면서 발목 운동도 했다. 치료 초기에는 내 감정이 모조리, 우울증의 손아귀에 진공 포장된 상태로 붙들려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우울증의 손아귀에 들린 힘이 조금씩 약해짐을 느낀다. 우울증이 더 이상, 내 목줄을 당겨 나를 울게 하거나 허탈하게 만들 만큼의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다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영화에 나오는 악령들처럼 네 발로 달리면서(그런 짓을 하면 넘어지겠지만) 깔깔 웃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왠지 모르게 느껴진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게 찾아올 고비가 한두 개쯤 남아있을 거다. 없으면 더 좋지만. 그래도 전체 치료 기간을 통틀어 가장 진심으로 외친 '조까!!'였기 때문에 만족한다. 오기와 고집, 돌아온 걸 환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