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복숭아를 깎아주는 사람

by 체리

작년 이맘때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물론 우울증이 내 삶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는 이유가 가장 컸지만, 그 외에도 착잡할 이유라면 많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자꾸만 엇나갔고, 우리가 가시를 주렁주렁 단 채 서로를 끌어안으려 한다는 생각이 깊이 들어 마음이 많이 아팠다. 사랑한다는 사실만은 굳게 믿었지만 서로 안 될 사람들이 만난 건가 싶을 만큼 자주 싸웠다. 그때의 우리는 참으로 심각했고,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다투다가 울음을 터트리며 서로에게 등 돌려 눕기 일쑤였다. 잘 되지 않기로는 내 일도 마찬가지였다. 회사가 도움을 주어 1년 정도 비자를 연장하게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회사가 그렇게까지 기다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직업을 한번 바꾼 상태인데 1년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참담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이번에는 직장에서 모난 돌이 되지 않고 잘 다닐 수 있을까? 애초에 직업을 다시 얻는다면 그 의미는 뭘까. 장례비 획득? 생각이 손끝을 스쳤다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 그래도, 내가 내년의 여름까지 살아있다면 복숭아를 먹겠구나 생각하니 조금은 기분이 좋아지는 듯했다. 나는 복숭아를 정말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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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와 포도와, 내가 사랑하는 한국의 과일들을 하나씩 즐길 수 있을 만큼은 더 살지 않을까. -당시엔-벌 받을 생각이라고 느끼면서도 자꾸만 죽음에 관해 생각했다. 그 후 치료를 시작하고, 약을 먹고, 죽음에 관해 더 생각하다가 다시 약을 먹는 날들을 하나씩 건너 여름까지 왔다. 복숭아의 계절이 온 후로는 정말 기뻤다. 파리에서는 통 맛있는 과일을 만나기 힘들었으니까. 기대감에 젖어 한입 베어 문 과일이 너무 시거나 아무 맛도 나지 않아 분노하며 다른 과일 가게를 찾아 헤매는 날들이었다. "맛있는 과일이 가끔 있긴 있더라. 스페인에서 온 거."라는 내 말에 사랑하는 사람이 픽 웃었다. 아, 방금 건 좀 못된 말이었나.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다. 내가 잃은 매일의 과일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으므로. 멀리 있는 사람의 추억만 곱씹으며 떨어져 지낸 지 반년 정도 되었다.

요즘의 나는 행복을 알고, 죽음에 관해서는 조금만 생각한다. 슬프지 않으며, 공허에 쓸려나가는 일도 거의 없다. 저녁 바람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지금 어떤 기분인가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전 저녁.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기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를 낳아준 사람은 정성스럽게 맛이 있는지 살펴 가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복숭아를 사다 주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복숭아 껍질을 벗길 칼을 들고 내게 복숭아를 먹고 싶냐고 묻는다. 내가 뭐라고 대답할지는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다. 뭐야, 엄청 행복한데. 신기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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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를 나르는 사람과 복숭아를 깎아주는 사람. 인생에서 가장 원했던 사람들이 모두 내 곁에 있으니까. 성실하게 행복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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