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찍어서

하루를 마무리하기

by 체리

그동안 글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에 관한 불안함을 종종 비추었다. 창작에 관한 일이라면 아마 덜 불안했을 것이다. 일주일, 아니면 2주 정도 마음먹고 몰두한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닌지라 더욱 그랬다. 게다가 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는 일정이나 한 번씩 아파오는 몸이 앞으로의 5개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이 불안함은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내 몸이 생각보다 자주 아프다고 가정하고 최소한, 5개월 동안 최소한 이 정도는 끝낸다는 너그러운 목표를 정하고, 그걸 150일에 골고루 나눠주고 나니 불안이 싹 가신 것이다. 많이 할 수 없으면 조금만 하면 되는데 괜히 불안해했다. 오늘 치의 칸에 도장을 쾅 찍어 하루를 마무리한 지 벌써 3일째다. 오늘도 개운한 마음으로 쾅 찍어 하루를 끝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작심삼일은 넘겼다. 오늘부터 다시 작심삼일 해야지.


머리카락을 기부하기로 마음먹은 건 꽤 오래 전의 일이다. 긴 머리로 지낸 시간이 길어서 한 번쯤 하면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다만 파마를 한 적이 한번 있기 때문에 그 머리가 모두 잘려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또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우울증을 얻었고, 우울증은 이 머리카락 기부 계획에 또 다른 의미를 얹었다. 죽으러 가는 데에 머리카락은 필요 없으니까, 필요한 사람한테 주고 가자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그 후 치료를 시작했고, 또 반년이 넘는 시간을 살았다. 딱 알맞게 자란 머리를 어제 잘랐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과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먼저 '머리를 잘랐으니까 이제 파마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음으로 '아니, 파마를 안 하면 한번 더 기부할 수 있겠네'라는 생각을 했다. 자르기 전만큼 길게 머리를 기르는 데에는 1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산다는 사실을 전제로 생각했다. 내년에도 살아있을 거라는 걸 당연하게 믿었다.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