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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Mar 20. 2018

어느날

구겨지지 않는 순간도 분명 있다

프랑스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것인데 번역기를 사용한 것이다. 나는 아직도 프랑스어를 못한다.

 이날은 내가 치료를 시작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였고, 그럼에도 눈에 띄는 차도가 없어서 조금 초조해하는 시기였다. 설을 맞아 가족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갔는데 아기 의자에 앉은 작은 아이가 "나는 아기 아니야, 그렇죠?"라고 말해서 아이의 부모님도, 우리 가족도 귀여워서 어쩔 줄 몰랐다. 우울증이 심해진 후로 나는 거의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다. 원래 나는 좀 화가 많은 사람이라 지랄도 정성껏 하는 성격인데 화 날 상황이 되어도 아무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걸 의식하면서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었다. 


이날만큼은 귀여운 것을 귀엽다고, 맛있는 것을 맛있다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보고 사랑스럽다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이런 순간은 빈도는 이 후로 점점 더 많아졌다-치료에는 차도가 있었다 물론 정체기도 있었고-. 구겨지지 않는 순간도 있다는 걸 새삼 느낀 건 이 작은 사람 덕분이다. 너는 모르고 있겠지만,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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