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번째

너의 영향력

by 체리

나누고 싶은 소식이 하나 생겼다. 다음 달부터 약의 용량을 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그 후 경과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이것 하나만으로 기뻐하기엔 한참 이르지만, 적어도 내가 뭔가를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경과가 좋지 않다 한들 그 사실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결정권이 내 손에 있다는 사실이 또 기쁘다.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도 아주 감사하다.


렉사프로를 복용한 지 6개월 정도 된 것 같다. 내게는 약이 잘 맞아서 부작용을 거의 겪지 않았지만, 원래 위가 예민해서 위가 아플 때마다 '혹시...', '약을 오래 복용하는 중이라 그런가...'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조금 곤욕이다. 그래도 부작용 때문에 기온만 조금 바뀌어도 보도에 절하듯 엎드려 구역질을 해야 했던 시기에 비하면 생활이 아주 쾌적하다. 흐음, 4개월 전까지만 해도 내 어깨에 살짝 올라온 우울증의 손끝을 의식하며 살았다. 그 전은 그 손아귀를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나날의 연속이었고. 감정이 흔들릴 만한 계기가 있으면 그것이 미약한 우울의 후폭풍으로 다가오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늘 있었다. 하지만 근 한 달 정도 되는 기간은 그 그림자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자유로웠다. 나는 이제 감정을 쭉 쥐어짠 후 남은 건조한 껍데기의 집합체가 아니었고, 허무를 담은 고기 주머니도 아니었다. 재미있는 것에는 흥미를 느꼈고, 사람들이 말을 걸면 대체로 감정을 가지고 응대했다. 억지 미소도 잘 짓지 않았다. 이것은 우울증을 겪기 전의 내게는 아주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미처 의식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이것을 되찾기 위해 내가 지하철 역에서, 낯선 나라의 기차역에서, 맨홀 뚜껑 위에 납작 엎드려 구역질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던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아주 절실했던 성과이다. 나는 심지어 어느 종교의 본산에서 구토를-같이 있던 사람은 그것을 '고양이 토'라고 불렀다. 내가 보인 반응에 비해 너무 작은 양이어서인가-했고, 쌓여있던 눈과 낙엽으로 그것을 덮은 후에는 부끄러움을 느껴 세전함에 넣은 돈으로 나의 추태를 보상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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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초기에는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데 안 한 것'은 아니고, 뭔가를 구상하거나 행동으로 옮길 기운이 아예 없었으니까. 그나마 글쓰기가 내게 숨 쉴 구멍을, 그리고 지나가는 오늘에 느끼는 부끄러움을 피해갈 공간을 조금이나마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글 쓰고 그리는 동안만큼은 손을 움직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오늘 먹은 약과 이번 주 진료에 들인 시간이 조금씩 쌓이면 마치 빵집 포인트 쌓이듯 언젠가는 진전이 있을 거라 믿었는데, 그동안 뭐라도 쌓이긴 한 모양이다. 우울증이라는 일개 현상에 자아를 주고 내 감정을 쏟는 것도 이 비전문가의 소견으로는, 위험하다면 위험한 일이 아닐까 싶지만 그의 손가락과 나의 몸이 단 하나의 접점조차 갖지 못하는 지금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울증 너는 정말이지 내게 어떤 영향력도 갖지 못한다고. 글쎄, 그걸 가능하게 한 건 약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약을 먹기로 결정한 것도, 버스를 타고 500미터를 더 걸어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은 것도 나라고. 그러니까 너를 떠나게 한 힘은 내게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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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경향이 있다. 기대했다가 실망했다가, 실망하기 싫으니 기대하지 않으려 했다가 결국은 기대하는. 그래서 지금도 '괜찮아', '괜찮을까?', '괜찮지 않을 수도 있어' 사이를 오가느라 바쁘다. 그래도 달리기는 빠르니까, 아마 우울증과 나는 살면서 한 번은 다시 스치겠지만. 잡히기 전에 쌩 달려 나가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안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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