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위가 따끔따끔하기에 생각해 보니 위장약을 먹지 않았다. 죽만 먹기 시작한 지 벌써 며칠째다. 워낙 배가 금세 꺼지는 음식이라 출근한 지 한 시간 반만 지나면 배가 요란하게 울어댄지 며칠이 지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죽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매일 죽만 먹어야 하는 것은 이제 질린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을 제시간에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걸리는 성격이라 일단은 약을 들고 탕비실로 향했다. 내일은 까먹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자리에 앉으니 생각이 났다. 올해 초의 나는 12시를 넘기면 겨우 잠재운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깨어나 괴로워했고, 멀쩡하다가도 멍해지는 증상을 느낌과 동시에 오늘 분량의 약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살았다는 것. 재미있을 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는데 씩 웃음이 났다. 일단은 내가 위장약을 잊어버린 상황과 우울증 약을 잊어버린 상황을 동급으로 취급할 만큼 우울증 치료에 관한 거부감-의사 선생님한테 미주알고주알 말하는 것에는 여전히 거부감을 느끼지만- 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치료를 시작한 지 -내 생각엔-거의 1년이 지난 지금은 약을 먹는 걸 깜박 잊어도 돌연 멍해지거나 다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일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 또 하루를 건너는 길에 이 사실들을 마주했다. 나는 잊어버릴 때쯤 도착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성질이 꽤 급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에 낭만이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사실들은 내가 의식하기를 완전히 잊어버린 후에야 내 앞에 나타났고, 나는 그 사실이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많이 있다. 가령 내 우울증의 진짜 뿌리는 어디에 있었는지, 언제가 진정한 시작이었는지, 어디까지가 우울증의 영향이고 어디까지가 내 성격인지 등.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아!라고 소리치며 깨닫게 될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도 나는 슬프지 않고, 압도되지도 않으므로. 이 정도면 썩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분노가 있고 지루함이 있고, 짜증이 있는 세상은 작년의 내가 있던 무취의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안도감을 주니까.
나와 사랑하는 사람은 늪에 빠져 있었다. 참 많이 울고 싸웠으며 여러 차례 죽었다. 의미라고는 그 불길 속에서 서로를 놓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불길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았다는 사실만이 의미라면 그건 이 관계에서 미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많이 불안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넌 내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는 해?"라고 물었고, 그 사람은 나에게 "넌 나한테 돌아오고 싶기는 해?"라고 물었다-다른 사람도 만났다는 뜻이 아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리적인 의미였다- 10월도 다 지나 이제 11월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일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함께고, 나는 돌아가기 위해, 그 사람은 다시 붙잡기 위해 애쓰며 산다. 나는 좀 더 현명하게 나를 위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전보다 더 포용하고 더 끌어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우울을 내려놓은 지금 다시 한번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사무치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