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렁덜렁 나의 날개
내 체중은 자주 변하는 편이 아니어서 내 몸의 형태를 기억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울감 때문에 끼니를 한두 번 거르기 시작했을 때도 내 몸이 지금의 형태를 벗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한두 끼 거르는 것 정도는 뭐, 지갑 사정에도 도움이 되고 어차피 회사 간식이나 과일로 한 끼 때울 수 있으니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우울해서 한 끼 두 끼 거르던 식사였는데 슬슬 건강 문제가 섞이면서 어느 날은 배가 아파서, 또 어느 날은 왜인지 귀에서 웅웅 울리는 사람들의 소음을 견디는 게 힘들게 느껴져서, 또 다른 날은 밥 사러 갈 기운이 없어서 걸렀다. 그렇다고 해서 배가 안 고픈 것도 아니었고 먹은 것을 습관적으로 게우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걱정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한국에 돌아온 후 깨달았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팔을 흔들면 함께 덜렁거리는, 마치 혹부리 영감님의 노래 주머니를 닮은 나의 날개살은 콤플렉스까지는 아니어도 조금 신경이 쓰이는 존재였다. 엄마는 외탁이라고 했고, 나는 그런가 보다 하며 아령을 잡았지만 아무리-라고 말할 만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아령 운동을 해도 날갯살이 나를 떠나는 일은 없었다. 내가 열심히 달려 버스를 붙잡으려 할 때도 날갯살은 덜렁덜렁 나를 응원했고 내가 거울을 보며 민소매 원피스를 몸에 댔다가, 내려놓았다가 할 때도 날갯살은 거 뭐 팔이 좀 통통하면 어떠냐며 낙천적으로 덜렁거렸다. 솔직히 이 살이 없으면 좀 더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으나 내 체중이 거의 변하지 않는 만큼 그 살 역시 늘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없어질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살이 휑하니 없어진 것이었다. 나의 날갯살이 말이다.
나는 대단히 빼빼 말라본 적이 드물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철없는 생각을 좀 했다. 오? 이렇게 살 빠져본 적이 없는데? 이거 썩 나쁘진 않은데?라고. 그런데 그건 내 생각에 불과했고 친구들도 친척들도 전부 다 대체 내가 무슨 병에 걸린 거냐고 캐물었다. 그때는 겁이 조금 났다. 한국에 온 후로는 내 사랑 냉면에 떡볶이 같은 탄수화물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었기 때문에 살도 금방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체중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아서 조바심도 났다. 내 긍정의 결정체인 날갯살이 사라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처음에는 실감이 별로 나지 않았다. 우주에서 온 우울증 괴물이 나를 통째로 삼켰다가 퉤 뱉고 나니 나의 긍정 주머니-날개살-와 모든 감정, 배변을 제외한 삶의 모든 욕구를 쪽 빨렸다는 이야기의 인물이 된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지만.
지금까지는 우울이 내면에 미친 영향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우울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여 불러온 외면의 변화도 꽤나 컸다. 또 그 변화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것이어서, 치료를 받다 보니 내가 우울에 빼앗긴 것은 감정뿐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의 긍정적인 덜렁덜렁 친구 또한 무자비한 우울증 괴물의 목구멍으로 쏙 넘어가버린 것이었다. 감정이 어느 정도 돌아온 후에는 '살을 빼도 내가 빼는데 왜 지-우울증-가 멋대로 가져가고 난리야'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빼도 내가 뺀다. 내 삶도 내 감정도 그리고 나의 살도 나만의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날개살은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돌아왔다. 예전 체중으로 돌아오는 데에 8개월 정도 걸렸고, 지금은 예전 체중을 웃돌고 있다. 나는 여름에 홀터넥을 즐겨 입지만 더 이상 나의 긍정왕 덜렁이 날갯살을 신경 쓰지 않고, 날개살과 이별을 하느냐 마느냐, 이 덜렁이 친구를 근육으로 만들어 덜 흔들리게 하느냐 마느냐 따위의 결정이 오롯이 내 손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아주 만족스럽다. 우울증이 어떤 것인지 증상의 요약을 포탈에서 검색해 보면 상당히 간단하게 쓰여 있지만, 그 글자 뒤의 세상이 얼마나 텅 비고 무서운 무성 영화의 세계인지 이제는 안다. 내가 겪은 우울은 내 것이 내 것일 수 없는, 타인과 같은 채널에 존재할 수조차 없는, 색깔도 냄새도 없는 병이었다. 이제 되찾은 나의 날개살은 명랑하게 흔들릴 줄 알고, 나는 때때로 달력을 들춰보며 언제쯤이면 약을 끊게 될지 조금의 기대를 품는다. 이만하면 썩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