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번째

정말이냐고

by 체리

용량을 반으로 줄인 지 2주가 넘었다. 내가 심하게 부작용을 겪은 것은 브린텔릭스이고 렉사프로 복용을 시작했을 때는 이렇다 할 부작용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감량 기간 또한 순조롭게 지나갈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어지러움이 느껴져서 평소보다 더 쉽게 멀미를 했고, 몇 번인가 차에서 토할 뻔한 탓에 계속 토봉지를 가지고 다닌다. 평소에 비해 무척 선명한 꿈은 덤이었다. 평소에도 꿈 내용은 곧잘 기억하는 편이지만 너무 선명한 꿈을 꾸면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다. 아무리 어지러움이 느껴진다 한들 하루에도 몇 번씩 길가에서 큰절을 하게 만든 브린텔릭스의 구토감에 비하면 무척 순한 편이었지만. 어지러움도 나름대로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위안되는 부분이 있다면 용량을 줄인 것 때문에 느껴지는 심리적인 변화는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미미하다고 해야 할지, 내가 의식을 못 하고 있다면 거의 없는 수준이라 봐도 될 것이다.

증상이 나아지면서 이제 2주에 한 번만 병원을 방문해도 된다. 병원을 다시 방문한 날 그동안 어지러워서 고생을 좀 했다는 이야기를 하니, 증량할 때라면 모를까 감량할 때 나처럼 부작용을 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단다. 내가 약에 민감한 편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봉투 정도는 늘 가방에 들어있어서 구토 봉투 찾을 걱정은 크게 안 했는데, 한두 번 토할 뻔하고 나니 물티슈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물티슈야 말로 내 가방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물건이다 보니 생각날 때 하나 장만해 둬야겠다 싶었다.

약을 끊는 순간이, 더 정확히는 복용 중단을 시도하는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한번 더 어지럼증으로 인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뜻이다. 병원에서는 그런 문제 때문에 한번 우회해서(바로 끊지 않고 다른 약으로 바꿨다가 그 약을 끊는 방법) 복용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럴 시간이 충분치 않다. 이대로 용량을 반 줄인 렉사프로를 먹다가 그대로 복용을 중단해 보기로 했다.

지난주에 몸살이 한번 났다. 속이 무척 안 좋았기 때문에 임의로 약을 끊었었는데 (4일 정도) 그것이 부작용을 좀 더 악화시킨 것인지 아니면 몸살과 시너지 효과를 냈는지 어지러움이 증폭되어 머리의 높이가 조금만 달라져도 무척 어지러웠다. 사무실에서 탕비실을 찾아 차를 타고 다시 내 자리로 오는 동안, 그 짧지 않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만도 몇 번인가 벽을 짚어 가며 쉬어야 했다. 정말이지 약을 끊는 과정에 이런 증상을 겪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다. 인생은 생각대로 되는 법이 별로 없다.

문제라면 이런 점 때문에 평소보다 지출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경험 상 구토감이 느껴질 때 생강엿을 씹거나 찬 음료를 먹으면 좀 나아지던데, 요즘 카페 프라푸치노 가격이 그다지 저렴한 편은 아니다 보니 구토감 때문에 버스정류장 앞에서 찬 음료를 사 먹을 때마다 약간의 죄책감과 분노가 느껴진다. 왜 내가 이런 병 때문에 안 써도 될 돈을 이렇게나 쓰고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입에 들어온 음료가 달기 때문에 이런 감정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나는 평소에 커피를 마시지 않아 이런 부분에 대한 월별 지출은 크지 않은 편인데 한두 번씩 음료를 사 먹다 보니 생기는 지출은 조금 뼈아프다.

가지 않을 것 같던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가니까 3개월 남짓으로 예상되는 복용 중단 적응기도 생각만큼 느리지 않게 지나갈 것이다. 물론 나야 내 할 일을 하며 지낼 따름이지만 새끼손톱의 반 보다도 작은 약 하나가 내게 이렇게 영향을 미치다니, 건방진 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