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번째

오늘의 실망을 사랑해

by 체리

우울증(과 자살 충동) 이 한창 고점을 달리고 있을 때 나는 두 가지 방법으로 다음 주까지의 생존을 도모했다. 사실 이 두 가지 일은 내가 아프거나 아프지 않거나 상관없이 자주 하는 일이라 돈 쓰는 일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지만 그때는 정말 생존을 위해 했다. 진짜다!

* 택배 시키기

택배 시키기는 연재 중에 한번 언급한 적이 있다. 택배를 시키면 받을 사람이-가족들이 있긴 하지만-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가급적이면 살아있는 것이 좋다. 거기에 택배를 시키는 것으로 시간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꽤 괜찮게 느껴져서 시간의 흐름을 택배 단위로 쟀다. 오늘 시킨 게 수요일쯤엔 올 테니까 수요일까진 살아있어야겠다, 그런 식이었다. 당시 나는 다시 직업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집에서 지냈는데, '나갈 수 있는데 안 나가는 것'과 '나갈 수 없어서 못 나가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보니 원래 집을 매우 사랑하는 나지만 고인 시간 속에서 약의 부작용과 씨름하고 걱정 섞인 시선을 받으면서 밤에는 불안 증세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괴로웠다. 내 시간은 매우 단단히 고여있지는 않았지만 점성이 높았다. 꿀렁꿀렁대는 나의 시간에서는 유속을 가늠할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택배는 반죽 같은 내 시간을 몇 덩어리로 끊어주었다. 시간의 흐름이 눈에 보일 듯 구분되었다. 이 점은 도움이 되었다.

* 복권 사기

복권은 주 단위로 추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부러 주 단위로 추첨하는 복권을 샀다. 원래도 복권 사는 건 좋아했지만, 우울증이 심할 때는 매주 꼬박꼬박 샀다. 몇 개를 살 것인지, 어떤 번호로 살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복권의 결과를 보려면 이번 주 토요일까지, 다음 주 수요일까지는 살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했다. 처음에는 복권이 소액이나마 당첨이 되든 안 되든 정말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고, 그저 '그래도 이번 주는 살았군'이라는 건조한 감흥이 있었을 뿐이지만 치료가 차도를 보이면서 복권의 좋지 못한 결과에 실망을 하게 되고, '살려고' 복권을 사는 것이 아니라 '행운을 원해서' 복권을 사기 시작했다.

내 복권 승률은 정말 별로다. 잘 되어 봐야 4등(그것도 한번), 거의 5등인데 최근엔 그 소액마저도 당첨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매주 토요일, 예정된 실망 속에 잘 숨긴 기대를 품고 당첨 여부를 확인하는 건 점점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저번 주처럼 오늘도 실망했지만, 나는 이 실망이 썩 마음에 든다는 그런 생각마저 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찾아오는 게 실망이라 할지라도, 불과 1년 전의 나는 그 감정마저 절실해서 나날이 말라가고 있었으니까. 결과가 어떨지 대충은 알면서도 그것이 당연하니까, 낱알을 쪼는 새처럼 성실하게 감정을 모은다. 내가 한 결정의 결과를 내 손으로 확인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주워 담는다. 그 모든 과정에 나의 의지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 아주 만족스럽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지만 우울증을 앓은 후라고 해서 내가 특별히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굳이 비교하면 치료받기 전보다는 더 긍정적이지만, 우울증은 '내가 광고회사 그 새끼들, 방송국 놈들 하는 꼬라지 참아주다가 이 꼴이 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자신을 위해 더욱 현명한 감정의 해소를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특별히 긍정적으로 변했다기보다는 더 현명해졌다는 말이 맞을 거다. 특히 대책 없고 맹목적인 긍정은 나의 소형 그릇에 맞지 않으므로 절대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병과 우리는 달리 어쩔 수가 없어서 친구를 먹는 것이다. 거기에 세상에는 병 말고도 좋은 친구가 무척 많다. 하루도 편한 적 없었던 내 우울증의 발자취는 미화될 수도 없고, 미화되어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