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니거 아니니까 신경 꺼
보통 일요일 오전에는 업로드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지난주에는 일요일 밤이 다 되어서야 업로드를 했다. 이유라면 별 것 없다. 굉장히 무기력했고, 무엇보다 아주 오랜만에 맞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주말이라 최선을 다해 늘어졌다. 사정이 있어 정해진 기간 안에 최대한 해 두는 게 좋은 일이 있었지만 지난 주말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매주 찾는 정형외과도 가지 않았다-자랑은 아니지만-.
올해 여름에 이런 주말을 보냈더라면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적어도 반 정도는 해두고 쉬는 게 좋지 않을까? 라면서 온전히 쉬지도 뭔가를 하지도 못하는 시간을 보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내 발목을 잡는 것은 '혹시 지금의 무기력이 우울증의 증상은 아닐까?' 혹은 '우울증이 조금 심해진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어지럼증이 생기면 바로 '우울증 약 때문일까?'라고 생각했다. 바닥에 넘어져 까진 상처는 얼마나 메워졌는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우울증은 그렇지 않다 보니 푹 패인 심장의 공동이 어디까지 메워졌는지 확인하는 일은 오직 짐작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게는 충분히 두려워할 이유가 있었고, 가능성 있는 위협을 견제하는 것은 내게 있어 나쁜 일이 아니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에도 쿵덕쿵덕 널뛰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내가 변화를 느낀 부분도 여기에 있다. 지난 주말 나는 최선을 다해 아랫목을 사수하면서도 아무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 '내가 아직 우울한가?'라는 걱정 따위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가위 한번 눌린 적 없는 주제에 감히 비유하자면 모든 치료의 가정이 가위눌림과 조금 비슷했다. 다만 가위에 눌려 움직이지 못하는 부분이 자신의 몸이라면 우울증에 눌려 움직이지 못한 부분은 내 감정이었다. 가위에서 벗어날 때 처음에는 손가락을, 다음으로는 손목을, 그다음으로는 온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나도 처음에는 짜증을, 다음으로는 행복을, 마지막으로는 제어권 자체를 되찾았다. 짜증이 날 때 짜증을 내고, 슬픈 일이 있으면 슬퍼한다. 개중에서 과하게 표현된 감정이 있다면 그때는 후회를 한다. 이제 제어권은 내 손에 있다.
약을 반으로 줄인 부작용도 많이 줄었다. 이제 나는 거의 어지러움을 느끼지 않고, 물론 약을 완전히 끊을 때 느끼는 어지러움에는 공포를 느끼지만. 이만하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화장실을 가거나 차를 타기 위해 뜨거운 물을 가지러 가는 극히 일상적인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대상 없는 공포가 느껴지면 '또 내 제어권이 우울증 쪽으로 좀 넘어갔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나는 안다. 이 불안은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괜찮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 안 괜찮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이미 잘 안다. 그러니까 괜찮다.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불안이 그리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이제 자신을 다각도에서 분석하고, 오늘 하루를 복기해 가며 어느 선택 때문에 무엇이 더 나빠졌는지 검토하지 않아도 된다. 더 정확히는 앞서 말한 복기나 분석에 대한 의무감에서 벗어났다. 이제 '쉬고 싶은 이유'를 자신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내가 피곤해서,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맞은 온전한 주말이어서, 이제 이런 간단한 이유들은 내 주말을 느긋하게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텅 빈 자신을 참기가 힘들어서,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꺾지 않아도 되고, 끝내 잠 못 들다 북받치는 불안에 꺽꺽대며 소리를 삼킬 필요도 없다. 아주 간단하지 못한 날들을 지나 되찾은 일상은 무척 간단해서,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