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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Aug 13. 2021

서귀포 바다에 만취할 수 밖에 없는 올레 5코스

고요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길 올레

# 13.4 km

# 남원포구 ~ 쇠소깍다리

# 상징 : 동백꽃

# 남원포구 ~ 위미동백나무군락지 : 21년 7월 1일 14시 50분 ~ 17시 05분 (2시간 15분)

# 위미동백나무군락지 ~ 쇠소깍 다리 : 21년 7월 5일 13시 20분 ~ 17시 10분 (3시간 50분)


나의 올레길 바이블인 「 제주올레 가이드북 」에 따르면 소요시간은 4~5시간이며 난이도는 중에 속한다. 



올레 5코스의 시작 : 남원포구 



남원포구에서 올레 4코스를 끝내고 잠시 쉬었다 갈까 하다가 해가 반짝일 때 바다를 보고 싶어 올레 여행자 센터에서 물 한 잔 원샷 후 바로 출발한다. 코로나가 아니었음 해수풀장에서 아이들의 즐거운 고함 소리가 들렸을 텐데 물도 없고 아이들도 없는 허전한 풀장이다. 이곳은 수온 16~17도의 지하 60m의 해수를 끌어올려 만든 수영장이다. 



사람 냄새가 나는 포구를 뒤로하고 오직 나와 바다밖에 없는 곳으로 발걸음을 흘린다. 저 멀리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갇혀있을 것 같이 생긴 섶섬이 희미하게 보이고, 납작한 피자 같은 지귀도도 지척이다. 작은 한 발자국씩 움직이는데도 어느덧 가까워진다. 이렇게 많이 걸을 계획도 아니었건만 앞으로 장마가 온다는 소식에 무리하게 된다. 이렇게 푸른빛의 바다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날씨는 하늘이 결정해주고, 묵묵하게 받아들일 뿐. 



바다 쪽에서 바라보고 싶은 : 남원 큰엉


곧, 해안 경승지 안내판이 나온다. 남원 큰엉은 용암 기암들이 늘어서 있으며 바다와 함께 해안 절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약 2.2km에 걸쳐 있다. 구렁비부터 서쪽으로 황토개에 이르며 절벽은 높이가 약 15~20m 정도이다. 안내판에는 한반도, 인디언 추장 얼굴, 쇠 떨어지는 고망, 호두암, 유두암 이름이 붙은 스팟들을 알려주고 있다. 엉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큰엉은 큰 언덕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잔디가 깔린 들판 언덕이 아니라 바닷가나 절벽 등에 뚫린 바위그늘 언덕을 일컫는 말이다. 이를 이르는 육지 단어는 오직 ‘언덕’뿐이었나 보다. 육지에는 없는 지형이니 당연히 이것의 이름이 없을 수밖에 없다. 제주에 있으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흥겨운 기분들을 표현할 수 있는 적합한 언어가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좋다는 말보다 더 좋은 건 없을까? 이건 그냥 너무 좋다로는 부족해!

라고 했더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해녀학교를 다니러 온 해녀학교 동기는

“그냥 Crazy!!!”

를 외친다. 아냐, crazy 로도 부족해.



쨍한 날씨 속에서 너무나 아름다웠던 곳이다. 유명 관광지에 속하는지 사람들도 꽤 있었다. 스팟 “한반도”에선 사진을 찍으려고 삼각대를 들고 기다리는 20대 남성들이 보였다. 젊을 때 예쁜 사진 많이 남기렴. 절벽 위에서 엉을 구경할 수도 있고, 군데군데 바다에 접근하여서도 볼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어서 올레길을 벗어나 왔다 갔다 하면서 구경했다. 갑자기 뜬금없이 공룡이 보여서 내 눈을 의심했다. 한라산 속에 들어가 있을 때 '이런 밀림에선 공룡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진짜로 공룡이 보여서 놀랐다. 공룡 모형은 너무 안 어울려서 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랑이 머리 바위와 유두암


인디언 추장 얼굴


카메라 렌즈를 한 번이라도 옷에 닦았으면 더 좋은 사진이 남았을 텐데 이런 날씨에 이런 곳에서 이런 잘못을 하다니 슬프다. 



멋진 큰엉을 바닷 쪽에서 배 타고 감상하고 싶어 진다. 



큰엉을 나와서 하천을 하나 건너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올레길을 지속한다. 큰엉도 좋았지만, 관광객들이 없는 큰엉을 지나서 있는 이 바당올레가 올레 5코스에서 가장 좋은 길이었다. 





신그물 그리고 피서지로 찰떡인 태웃개


이름도 제주스러운 신그물과 태웃개를 지난다. 신그물은 sour 시다는 뜻이 아니라 싱겁다는 뜻이다. 용천수가 올라와서 이런 이름이 붙었으나 지금은 물이 거의 말라버렸다고 한다. 태웃개는 태우를 메두던 곳이란 뜻이다. 용천수가 샘솟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가까이에 불룩불룩 아아용암 그리고 부서지는 하얀 파도와 짙은 푸른색의 제주 바당, 멀리에 섶섬과 나란히 있는 제지기 오름까지 귀엽게 솟아있는 아기자기한 서귀포 바다의 모습이다. 





현맹춘 님 단 한 사람이 일군 : 위미동백나무군락


중간 스탬프 지점까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올레길에 취해서 홀린 상태로 걷다 보니 어느덧 와버렸다. 제주동백수목원과 함께 있는 위미동백나무군락은 우리나라 고유 동백나무가 떼를 지어 있는 곳이다. 월령에 있는 선인장처럼 자연스럽게 생겨났느냐? 아니다. 단 한 사람의 힘으로 일구어진 곳이다. 돌아가신 현맹춘(1858 ~ 1933) 할머님의 노력이다. 17살에 이곳으로 결혼하여 고향을 떠나온 현맹춘 할머님은 아끼고 아낀 돈 35냥으로 황무지 ‘버득’을 사들였다. 황무지를 열심히 개간하였지만 모진 바닷바람에 농사는 잘 되지 않았고, 바람을 막기 위해서 한라산 동백 씨앗을 가져다 심으셨다. 이 숲이 방풍림이 되면서 땅에 작물이 자라기 시작했고, 이 동백나무 숲을 마을 사람들은 ‘버득할망돔박숲’이라고 부른다. 마을 울타리와 감귤밭 방풍림 모두 키 큰 동백나무이다. 직경이 10cm 이상인 것만도 약 500여 그루이며 이중 가장 큰 나무는 흉고둘레 1.4m에 높이는 10m에 달한다니 아담한 동백나무만 알지 이렇게 큰 동백나무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지금은 여름이라 싱싱한 동백잎뿐이지만 동백꽃이 피는 시기에 꼭 다시 와볼 것이다. 



5코스 중간 스탬프를 찍고 4.9km 지점에서 마무리를 하였다. 17시 05분이다. 


보슬비를 맞으며 걷는 올레 5코스 후반


올레 5코스 남은 구간을 걷기 위해 길을 나섰다. 제주에는 장마가 찾아왔고, 보슬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기도, 우의를 입기도 애매한 빗줄기이다. 일단은 그냥 맞아보자! 2021년 7월 5일 13시 20분, 위미동백나무군락 중간 스탬프 지점부터 다시 걷기 시작한다. 세천포구에 맞닿는 가느다란 하천을 하나 지나 



클링커가 살아 있는 아아용암을 바라보며 걷는다. 며칠 전에 봤던 파란 물 위에 둥둥 떠있어 보이는 납작한 지귀도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흐린 바다의 지귀도이다. 




위미항과 조배머들코지


곧 꽤 규모가 있어 보이는 위미항에 닿는다. 위미항 초입에 조배머들코지가 있다. 멋진 바위가 마치 용두암처럼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얽힌 이야기가 구구절절 적힌 비가 있었다. 비의 내용을 옮겨보면 원래 이곳에는 높이가 70척이 넘는 기암괴석들이 비룡형 또는 문필봉형들로 몰려있어  위미 마을 사람들의 신앙의 장소였다. 그런데 일제 치하 때 일본인 풍수학자가 와 한라산의 정기가 모아진 이 기암 때문에 위미리에 위대한 인물이 날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래서 위미1리에 거주하는 유력자 김 씨를 찾아가 기암이 위미를 향해 총구를 겨눈 모습이라 이 바위들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꼬셨고, 순박한 김 씨가 석공을 동원해 기암과 해반을 폭파시켜버렸다. 거석 밑에는 용이 되어 승천하기 직전의 늙은 이무기가 피를 흘리며 죽었다고 한다. 이후 위미 마을엔 큰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 비는 1997년부터 마을 사람들이 흩어진 바위들을 모아 조배머들코지 복원을 기념하여 세웠다.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 사람들의 자신들의 마을에 대한 사랑을 많이 느낄 수 있다. 육지의 다른 시골도 그럴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을의 주요 명소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세워놓는다거나 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놓는다거나 사라진 마을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글이 새긴 비석을 세워놓는다거나 등 나의 고향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마을의 흔적이 좋다. 위미항을 지나 다양한 종류의 마들렌이 있는 카페에서 휴식을 취했다. 



위미1리 고망물과 본향당


하천을 건너며 고망물을 지나는데 고망물 앞 마을 할머니들이 앉아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마치 우물가 물 뜨러 온 아낙들이 수다를 공유하듯 올망졸망 모이셔서 보슬비를 즐기고 계셨다. ‘고망’은 제주어로 구멍을 뜻한다. 바위틈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용천수를 이 동네에선 고망물이라고 불렀고, 1940년대에는 고망물을 이용하여 소주를 생산하는 황하소주공장이 있었다. 고망물은 제주 8대 명수 중에 하나이다. 



위미항 옆에 있는 위미1리 길을 걷는데 아주 멋진 나무가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본향당이 위치한 곳이다. 이 본향당은 풍농신과 해신을 모시는 곳이다. 





건축학개론 카페 서연의 집 


섶섬을 바라보며 위미 바당올레를 걷는다. 테왁 두 개가 올려져 있다. 누가 두고 갔을까? 


제주허씨가 올레꾼 옆을 꽤나 지나가길래 이 근방에 또 무언가가 있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 나온 것은 바로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지은 카페 서연의 집이다. 카페에서 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들어갔다. 딱히 이 영화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첫사랑 영화의 최고봉은 자고로 클래식) 그래도 지나던 길에 나왔는데 구경은 해야지 하며 들어갔다. 김유신이 된 엄태웅 때문에 뭔가 엄태웅 배우에 대한 반감(?)이 있는데, 수지를 좋아하는 남편이 왔으면 좋아했겠다.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많아 소란스러웠다. 비싼 당근주스를 마시며 잠시 핸드폰 충전을 하고 금방 나왔다. 



넙빌레와 공천포구, 신례천


풀이 무성한 하천을 건너 9.8km 지점에 위치한 넙빌레에 도착한다. 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넙빌레를 지나서 조금 걸으면 행정구역이 위미에서 신례로 바뀐다. 공천포구에 가까워지는데 까만 모래 해안이 나왔다. 



이 검은 모래는 모래찜질에 좋다고 한다. 


11km 지점인 신례천을 지나 하례리로 들어간다. 



제주 포구의 옛 모습 : 망장포


올레길을 걸으며 원형이 남아 있는 옛 포구들을 가끔 지났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망장포이다. 원나라 지배를 받을 때부터 각종 물품과 말에 이 망장포를 통해서 나갔다고 한다. 그물을 많이 쳐서 망장포이기도, 봉화가 있었어서 망장포라고 불렸다는 등 이름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다. 




올레 5코스 후반부의 백미 : 망장포를 지나서 나오는 바당 숲 올레


망장포를 지나 있는 바당 숲 올레가 큰엉 경승지를 지나 있었던 바당 올레와 더불어 올레 5코스의 백미길이다.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며 거칠기도 하고 둥글기도 한 현무암석과 서귀포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자랑하는 길이다. 




아주 얕은 오름 : 예촌망


지형이 여우를 닮았다고 하여 호촌이라고 불렸던 예촌망이다. 원래 봉수대가 있었는데 1960년대에 감귤밭이 조성되며 봉수대는 사라졌다. 해발고도 66.5m의 아주 얕은 오름인 예촌망을 정상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옆을 비껴서 지나간다. 감귤밭을 끼고 걷는 좁은 길의 느낌이 좋다. 




올레 5코스의 종점 : 쇠소깍 다리 그리고 효돈천


쇠소깍 다리에 17시 10분에 도착하여 즐거웠던 올레 5코스를 마무리하였다. 버스를 타러 가기 위해 일주동로를 향해 효돈천을 거슬러 올라가며 풍경을 감상한다. 장마철 습도가 가득하여 마스크 안쪽에 물방울이 차서 턱으로 흘러내린다. 우산을 꺼내들거나 우의를 입을 정도의 비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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