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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Aug 23. 2021

목포에서 배 타고 제주 가기

여행의 반대말은 익숙함이다

차량 선적을 위한 여객선 이용


해녀학교를 다니기 위해 제주에 꽤 오랜 기간 머물기 때문에 차를 가져가기로 했다. 그래서 목포에서 차와 함께 배를 타고 제주에 입도하였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원래 계획은 목포에서 1박을 하고 아침에 배를 싣는 거였지만 연차를 많이 쓰기가 어려워 당일 출발로 변경했다. 배의 출항 시간은 9시. 하지만 차 선적은 1시간 전에 끝나기 때문에 늦어도 8시까지는 목포항에 도착해야 한다. 7시까지로 잡고 새벽 2시 반에 서울에서 출발했다. 서울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비가 와서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천안을 지나면서부터 빗줄기가 가늘어지면서 곧 비가 그쳤다. 엄청난 비구름을 서울에 두고 떠났다. 이 작은 나라에도 확연한 온도차를 보이는 날씨라니. 목포까지는 가는 길은 멀었다.



평소와 다른 정경이 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풍경이 바뀐다. 건물보다는 느긋한 높이의 산들이 가득하다. 큰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싶은 그런 초록색을 띄고 있다. 전라도를 들어감으로써 달라진 풍경에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눈에 들어오는 자극이 달라지는 것이 여행의 시작을 느끼게 해 준다. 


보통은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이 그런 역할을 해준다. 어딘가로 떠날 때가 아니고서야 들르지 않는 곳이고,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시각, 청각, 후각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에서 기분이 들뜬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공유한다. 목소리도 한 톤 높아지고, 음량도 커지며, 몸짓도 과장되게 나온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달라진 장소, 달라진 자극이다.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곳을 간다는 것이 바로 여행임을 알게 해 준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평소와 다름없는 분위기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일상적으로 터미널과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매주 주말마다 서울역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기차와 버스를 타고 고향집을 갔던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 서울역까지 눈감고도 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친구들이 당시 유행하던 코레일 기차여행을 떠날 때도

"나한테 기차는 여행이 아니야. 기차 지겨워."

라고 하며 거절했다. 그때는 서울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이 그냥 단순히 사람 많고, 짐에 치이며, 화장실은 더럽고, 정신없는 곳일 뿐이었다. 여행의 설렘이 아니라 여행의 설렘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생긴 북적임이 짜증 나는 곳이었다. 역과 터미널의 풍경이 그만큼 나에게 낯섬보다는 익숙함이 더 어울리는 곳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여행의 반대말은 '익숙함' 일 것 같다. 익숙하게 되면 더 이상 '여행'이 아니다. 여행보다는 '살이' 또는 '일상'에 가까워진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풍경과 어떤 새로운 자극을 받을까? 제주에 머물며 매일 느꼈던 기대감이 있었다.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제주는 육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고,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들을 품고 있다. 그것을 파고 다니는 매일은 '여행'이었다. 3개월이 지나면서 몇 개 없는 제주의 큰 도로의 방향과 길은 외워지고, 어디에 가짜 속도 측정기가 있는지도 알게 되고,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들이 감탄하는 하늘의 모습에 '저 정도는 뭐'라고 생각하게 됐을 때가 3개월이 지났을 때이니 그때부터는 여행이 아니라 '일상'의 레벨로 업그레이드 또는 다운그레이드 되었다. 



퀸메리호, 비행기보다 2억만 배 좋다



목포항에 6시 30분쯤 도착하여 차를 실었다. 차 싣는 곳으로 들어가서 동승자는 내리고 운전자가 지시사항에 맞춰 차를 싣는다. 걸리는 시간은 10분도 채 안 걸린다. 중형차 한 대 선적은 약 85,000원 정도이다. 항구 특유의 소음이 또 다른 자극이 되어 여행을 알려준다. 정식 출항 시간은 9시, 도착 시간은 12시 50분이다. 차 말고 사람이 타는 시간까지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돌아와 여객터미널에서 졸면서 탑승을 기다렸다. 



이후 꽤나 큰 여객선에 오르는데 타이타닉 장면이 떠오른다. 로즈의 독백과 타이타닉 메인타이틀이 나오는 바로 그 장면. 역시 여객선 하면 타이타닉이다. 2명에서 쓰는 300,000원짜리 방에서부터 100명이 쓰는 30,000원짜리 방까지 로즈와 잭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약 50,000원짜리 8명이 한 방을 쓰는 침대 객실이었다. 여자 방, 남자방이 구분되어 있어서 남편과 작별을 한 후에 우리는 배가 떠나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 2시 반부터 시작된 이동이 배의 출항도, 바다의 출렁임도 느낄 수 없게 했다. 1시간 반쯤 자고 일어나서 침대를 떠나 드디어 퀸메리호를 즐길 수 있었다. 



파리바게트 카페가 있어서 꽤나 멀쩡한 커피도 마실 수 있고, 영화관이랑 코인 노래방, 오락실도 있었다. 영화관은 운영이 되었는지 스크린이 켜져 있었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코인 노래방과 오락실은 운영되고 있었다. 정확한 명부 작성만 하면 되는 듯하다. 내부에 놀 거리도 풍부했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밖으로 나가서 보는 바다였다. 서울에서 쏟아지던 폭우를 맞던 게 불과 8시간 전인가 싶을 정도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햇빛과 새파란 바다가 여객선의 소음과 어우러졌다. 이렇게 멋진 이동 수단이라니!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보다 배로 가는 것이 훨씬 좋았다. 바다를 맘껏 볼 수 있고, 배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말이다. 이게 바로 바다야! 이게 바로 여행이야! 를 날뛰는 머리카락의 촉각으로 만끽한다. 




어느새 제주항에 도착


배 안에서 기절했던 시간 때문에 밖에서 바다 보면서 멍 때리고 좀 놀다 보니 어느새 제주항에 도착했다. 화물칸에는 차가 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턱이 군데군데 굉장히 많아서 자칫 잘못하다간 넘어지기 쉬워 보였다. 차를 타고 배를 순식간에 내리고 순식간에 제주항을 벗어났다. 앞으로 꽤 여러 번 볼 제주항이라는 것을 이 때는 몰랐다. 제주항의 위치도 모르고 그냥 내비게이션이 찍는 대로 식당을 향해 떠났다.


저기 보이는 오름은 원당봉일까?


퀸메리호 : http://www.seafer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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