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도 없고 배움도 없고 의미도 없는 서귀포의 흉물
서복 전시관에 대해선 기사에서 보고 알고 있었다. 올레 6코스를 걸으며 정방폭포를 지나면 바로 중국풍의 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서복 불로초 공원의 시작이다. 조금만 더 걸으면 토 나올 것 같은 서복 전시관이 나온다. 이 공간이 너무 싫어서 곁눈질도 하지 않고 걸었다. 올레길을 걸으며 흥겹던 기분이 순식간에 잡친다. 이후 날을 잡아 심기일전하고 방문하였다. 이건 제대로 까야한다, 깔라면 어떤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토 나올 것 같은 이곳을 참고 샅샅이 뒤졌다. 속속들이 열심히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귀포 문화관광처에서 써놓은 홈페이지의 공식 글부터 살펴보자.
1999년 2월 27일 문화관광부 전국 7대 문화관광권 개발사업으로 지정되어 2003년 9월 26일 개관하였으며, 전시관에는 서복상을 비롯한 진시황릉의 청동마차, 병마용(兵馬俑) 등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있다.
서복은 영주산(한라산)에서 불로초(영지버섯, 시로미, 금광초, 옥지지 등)를 구한 후 서귀포 앞바다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巿過之:서복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글자를 새겨놓아 서귀포(西歸浦)의 지명유래가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고 전해진다. 조선말 학자 김석익이 편찬한 파한록(破閑錄)에는 '1877(고종 14년) 제주 목사 백낙연(白樂淵)이 서불과지 전설을 듣고 정방폭포 절벽에 긴 밧줄을 내려 글자를 탁본하였다. 글자는 12자인데 글자 획이 올챙이처럼 머리는 굵고 끝이 가는 중국의 고대문자인 과두문자(蝌蚪文字)여서 해독할 수가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서복은 서불(徐巿)이라고도 불리며, BC255(제왕 10)년 진나라가 통일하기 전 제(齊)나라에서 태어났다. 서복의 고향은 진나라 당시 제군(齊郡) 황현(黃縣) 서향(徐嚮)으로 오늘날 산동성 용구시(龍口市)이다. 한편 강소성 감유현 서부촌(徐阜村)도 서복의 고향이라 전해진다. 서복은 제나라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연·제나라의 신선사상 영향을 받아 방사(方士:천문, 의학, 신선술, 점복, 상술(相術) 등을 연구하는 사람)가 되었다. 서복은 진시황의 명을 받고 불로장생약을 찾아 3,000여 명의 대선단을 거느리고 동도(東渡)하였으나, 평원광택(平原廣澤 : 평탄한 들과 넓은 진펄)을 얻게 되자 나라를 세우고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최종 정착지로 알려진 일본에서 서복은 농·어업· 의약·주거문화·토기 등 야요이 문화를 창달시켜 일본 경제 사회의 발전을 촉진시켰다고 전해진다. 서복은 선진문명을 전파한 문화의 사자(使者)로서, 한국·중국·일본에서는 매년 서복을 기리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출처 : https://culture.seogwipo.go.kr/seobok/intro/intro.htm
서귀포 시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걸 만들고 싶었는지는 알겠다. “서귀”라는 이름은 “서쪽(西 서녘 서)으로 돌아간(歸돌아갈 귀)” 이란 뜻으로 서귀포의 이름부터 서복에서 기원한다니 말이다. 거기다 서복은 정방폭포에다 천박하기 짝이 없게 “왔다감”이라는 낙서까지 해놨다니 서귀포+정방폭포+서복을 엮어서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기획하려던 의도는 알겠다.
그렇다면 이 공간의 주된 ‘독자’는 누구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곳을 찾아와 서귀포+정방폭포+서복을 느끼며 제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서귀포시가 문화관광부 7대 문화관광권 개발사업으로 1999년부터 2007년까지 107억 5200만 원을 들여 ‘서불과지 유적정비사업’을 벌일 때 분명 이곳을 찾을 사람들에 대해 고민했을 텐데 그 대상이 누구였을지 궁금하다. 과연 정말로 ‘서귀포 사람들을 위한 서귀포의 역사적 기원을 기념하기 위한 서귀포 사람들의 고향 사랑을 한 번 더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서귀포시가 정말로 서귀포 사람들을 위했다면 이곳을 그렇게 만들어버릴 순 없다. 정방폭포와 소낭머리는 제주 4.3 때 수많은 서귀면 사람들이 학살당한 곳이다. 서귀포 사람들의 피가 묻어 있는 이곳을 중국풍 일색으로 꾸민다는 생각은 서귀포 사람들을 진정으로 배려하고 위했다면 나타날 수 없는 아이디어다.
즉, 이 장소의 독자는 바로 중국인 관광객이다. 그런데 그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국인들이 자기네 나라에도 공원에 가면 빨간 페인트로 칠해진 한자가 있는 돌과 같은 ‘중국색’이 가득한 것을 보고 싶어서 제주도에 왔을까? 서귀포에 왔을까? 여행은 이국적인 정취, 여행을 가야 볼 수 있는 풍경, 그곳의 먹거리를 비롯한 문화를 느끼러 가지 않나? 여행이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해도 이건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했다고 해도 의도가 이상하다. 중국인들에게 ‘여기에도 너희 흔적이 있어’라고 그들의 '중국인 이즈 에브리웨어' 정신을 더 강화시켜주려고? 그렇게 기분 좋게 만들어서 칠십리 음식 문화 거리에서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더 사 먹게 하려고? 100억이라는 세금이 들어간 이곳에 대해 아무리 좋게 생각해보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이 공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곳인가? 100억을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했을 텐데 과연 무엇이었을까? 여행을 한 번이라도 가봤으면 이런 괴상한 아이디어를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역시나 중국인 관광객도 찾지 않는다는 기사 :
https://www.khan.co.kr/local/Jeju/article/200710221831321
이쯤 되면 이제 숨겨진 의도가 있었을 거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배려하고 공감해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도 말이 안 되면, 그 사람들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모르는 게 아니라 아는데, 앎에도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것. 그건 물론 돈과 권력 관계일 것이다.
“역사 공부를 하기 좋은 곳이다”라고 어느 사이트에 소개되어 있어서 역시 또 토 나온다. 제주에는 제주사가 점철되어 있는데, 왜 중국 고대사를 이곳에서 굳이?
제주에 수많은 문화와 역사가 있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신석기로 넘어가며 하나의 독립국이었던 탐라 시대 그리고 이어지는 고려와 원나라 지배기, 조선 역사 속에서의 제주.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와 밀접하게 얽혀있고 진행되고 있는 제주의 현대사까지. 문화는 또 어떤가. 제주 사투리가 아니라 ‘제주어’로 불리는 말이나 제주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주는 수많은 제주 신화들, 이런 데 굳이 외국인을 끌어들여 '역사' '공부'라고 할까? 과연 이 서복이라는 사람은 제주의 문화와 관광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개발해야 할 콘텐츠였을까? 애초에 진시황은 전쟁광에다 분서갱유를 일으킨 중국 최대의 폭군 아닌가. 거기에 권력자의 권력 추구의 정점인 ‘불로불사’에 미쳐 이성을 잃은 미치광이이다. 그런 미치광이가 불로불사의 약을 구하라고 보낸 사람을 제주인의 피눈물이 흐르고 있는 이곳에서 기념하고 공부를 한다?
내가 중국인이라면 한국인의 이런 열등감을 비웃을 것이다. 중국인들한테 무시받을 만한 한국이다.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 아니었나’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사대부들부터 그랬다. 이인직과 고마쓰의 밀회에서 이인직은 ‘조선의 주인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뀔 뿐’이라고 말하며 나라의 주권을 넘겼다. 자주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스스로 노예, 하인, 속국이 되지 못해 안달이 났다. 나의 나라, 나의 지역, 나의 고향에 대한 자긍심은 찾아볼 수 없고 제주라는 한국 땅이 서복이라는 중국인에 의해서 '발견'됨을 기념한다. 아메리카 대륙이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됨을 아메리카 원주민이 돈을 모아 공원과 전시관을 세운 격이다. 무엇을 위해? 왜? 자본을 위해 꼬랑지 흔드는 똥개 격이다.
제주 4.3 기사 : https://www.nocutnews.co.kr/news/5120405
소남머리 4.3 아카이브 : http://43archives.or.kr/viewHistoricSiteD.do?historicSiteSeq=10
서복 전시관을 관람하게 위해선 5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들어가기 전에도 불편했지만 들어가면 더 불편한 풍경이다. 2007년 원자바오 총리가 한중 교류의 해와 서복공원을 기념하기 위해 '서복공원'이라는 휘호를 적은 돌을 기증받았다. 새빨간 글씨가 새겨진 모습은 중국 여행을 가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돌도 중국풍이다.
이 새빨간 글씨와 함께 <서복동도도> 조각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중국인이 그리고 중국인이 조각한 작품들이다. 중국인의,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을 위한 서귀포인가?
서복은 하멜 표류와 다르다. 하멜은 난파하고 바다에 표류하다 조선에 닿았다. 이후 조선의 적극적인 행위가 들어간다. 반면, 서복과 제주의 관계에서 제주는 단순히 수동적인 대상이 될 뿐이다. 또 이것은 안동 하회마을에 영국 여왕 사진이 있는 거랑 다르다. 그건 안동이 조선 시대 양반 문화의 대표이고 일국의 왕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한다는 뜻에서의 방문인데, 이건 시진핑 주석이 방명록에 사인한 걸 대문짝만 하게 벽에다 걸어놓고서 중국 주석에 의해 여기는 우리 땅이요 하고 오줌 싸놓는 듯한 영역 표시한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곳이다.
서복전시관에 들어가는 자동문 앞부터 병마용이 있다. 아… 병마용? 하아 정말 부끄럽고 한숨만 나온다.
한국식 건물에 중국 똥꼬 빠는 게 분명한 내용이 가득 들어있는 전시관이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다. 불로초 공원은 약과였다. 서복전시관은 더 가관이다. 새빨간 배경으로 가득한 전시관 내부는 누가 봐도 중국풍이다. 진시황의 중국 통일과 그가 꿈꿨던 불로장생이 왜 이렇게 타국에서까지 기념되어야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서복이라는 인물의 가계도까지 그려져 있으며 일개 중국인이 다녀간 이곳을 기념한다.
취임 후 중국 내에 어느 곳에도 휘호를 남기지 않았지만 이 서복전시관에는 남겼다며 자화자찬하고, 시진핑 주석의 친필 방명록 사인도 대서특필하며 기념하고 있다.
500원이 아깝다는 얘기가 아니다. 중국 똥꼬 빠는 이 공간에 비용을 지불해야만 소낭머리와 정방폭포 사이에 위치한 이 공간에서 4.3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이곳 서복전시관 내에 있는 4.3 설명판이다.
도대체 어떻게 긍정적으로 해석해야 될까? 중국인들이 와서 기분 좋아서 돈을 많이 쓰고 갈 거다? 이 아름다운 제주 이 아름다운 서귀포 그리고 이토록 처연한 정방폭포에서 이딴 걸 봐야 하다니. 씁쓸하다. 서복전시관은 서귀포 주민들에 대한 배신 행위이며, 사죄해야 한다. 아무런 감동도, 배움도, 깨달음도 얻을 수 없는 의미 없는 공간에다 100억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진시황과 서복은 과연 불로초를 찾았구나. 영주산이 있는 이 곳 서귀에 서복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공원이 박제되어 후대 (외국) 사람들에게 이름이 오르내리니 이 어찌 불로불사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