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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Sep 02. 2021

멋진 용암 지형을 담고 있는 : 마라도

마라도  바닷속 탐험과 함께

송악산 일본군 진지를 바라보며


국내 최남단의 섬 마라도. 올레 7-1 코스를 걷기 위해 가파도행 여객선을 탈 때 갔던 운진항에는 가파도행과 마라도행 두 종류의 배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올레 10코스에서 본 송악산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기로 했다.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 진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홍준 아저씨 책을 보면 동굴 진지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는 것을 보면 원래는 진지 내부에 접근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현재는 막아 놓아 가까이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육지에서 제대로 볼 수가 없고 개수도 위치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바다 쪽에서 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감탄사가 들린다.

"와! 저기 동굴이 있네~!"

그렇게 즐거운 목소리로 단순히 "동굴"이라고 넘기면 안 된다고 알려주고 싶다. 이 진지 구축에는 많은 도민들이 동원되었으며, 주민들은 무리한 식량 착출을 당해야만 했다. 


2021년 8월 따끈따끈한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동굴안전연구소와 제주도동굴연구소에서 ‘근대전쟁유적 제주도 일본군 동굴진지(요새) 현황조사 및 증언채록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서 밝힌 일본군 동굴진지의 수는 제주시 75곳에 278개, 서귀포시 45곳에 170개로 모두 120곳에 448개다. 진지동굴은 미군 상륙 함정을 공격에 대비해 일본 해군 특공대의 소형 함정 신요와 어뢰 등을 숨기기 위해 판 것이다. 이 중 어승생악 복곽진지, 가마오름 주 저항진지, 서우봉 해군 특공대 기지, 섯알오름 전진 거점, 송악산 해군 특공대 기지, 일출봉 해군 특공대 기지, 송악산 지네형 동굴진지 등 7곳 73개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로 패배의 기운이 짙게 몰려오던 때 일본군은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마지막 거점으로 제주도를 선정하여 전 제주를 요새화한다. 만주에 주둔했던 일본군 6만여 명 등 제주에서 징병한 1만 5000여 명 등 7만 4781명의 병력을 배치하는 ‘결 7호’(決七號)라는 작전명이 그것이다. 당시 제주 인구가 약 25만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의 병력이다. 성산일출봉을 비롯하여 송악산, 서우봉, 삼매봉, 수월봉, 추자도 등 주요 해안 거점에 동굴 진지를 구축했다. 


이곳들은 모두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가지고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다. 송악산에서 산방산으로 이어지는 사계 해안도로는 절경을 자아낸다. 송악산 둘레길은 올레길에 포함되기도 전부터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였다. 아름다움 속에 상처 난 세계사 속의, 현대사 속의 제주 흔적을 단순히 '와! 동굴이다!'로 넘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송악산 해안 동굴 진지는 총 17개로 성산일출봉에서 봤던 해안 동굴 진지처럼 '신요'를 숨기기 위해 만들었다. '대양을 뒤흔든다'는 뜻의 일본 군함 이름을 딴 이 자살 특공 병기는 80마력짜리 엔진을 달고 뱃머리에 250kg의 폭약을 장착했다. 이 신요 자살 특공대로 인한 사망자는 필리핀 해역에서 9백여 명, 오키나와 해역에서 159명이었지만 연합군의 군함에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고 한다. 본토 전쟁에 대비하여 제주 해안에 머물던 신요는 쓰임새를 발휘하기도 전에 원자폭탄에 의해 패전을 맞이해버렸기 때문이다.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332416


올레길 중에서 가장 애정 하는 코스인 10코스를 이렇게 볼 수 있어 좋았다. 송악산에서 바라보는 마라도와 가파도도 정말 멋있었는데, 이렇게 바다에서 바라보는 송악산도 멋지기 그지없다. 태평양 전쟁, 미군의 군사 작전 중 상륙 지점이 오키나와가 아니라 제주였다면 이 송악산은 폭파되어 없어졌을 것이다. 




태풍이 와도 폭우가 와도 천둥 번개가 쳐도 해녀학교는 바다에 갑니다


마라도 바다 탐험을 떠나는 날은 폭우가 쏟아지던 12호 태풍 오마이스가 오던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다. 송악산에서 산방산을 바라보면 아주 멋있는데,  비구름의 영향으로 아예 산방산의 존재조차 확인할 수 없다. 



아름다운 송악산과 형제섬, 산방산이 멋들어지게 보이면서 잔잔한 바다가 있어서 맘껏 들어갈 수 있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거친 날씨와 바다에도 한껏 흥이 오른다. 이런 모험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바로 해녀학교 동기들. 우리의 목적은 마라도에서 짜장면 먹기나 마라도 관광이 아니라 마라도 바다에 들어가서 다이빙을 하는 것이다. 태풍이 지척인데 과연 가능할까? 싶었지만, 들어가고 싶은 바다가 있고, 궁금한 바다가 있으면 일단 Go! 하는 고맨 해녀학교이다. 



화산섬 마라도 


마라도는 우리나라 최남단 섬의 섬으로 행정 주소상 서귀포시 대정읍에 속한다. 하모리 해안에서 남쪽으로 약 8km 떨어져 있으며, 모슬포항에서 배로 30분 거리에 있다. 송악산에서 출발하여도 약 30분이면 닿는다. 남북 길이 1.3km, 동서 길이 0.5km라서 남북으로 길쭉한 타원형의 섬이다. 작은 섬이라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 마라도에서 바라보는 산방산과 형제섬, 한라산을 포함한 제주의 풍경이 멋지다고 하지만 비구름이 가득하여 볼 수는 없었다. 가장 높은 곳의 고도가 39m이니 가파도와 맞먹을 정도로 낮은 섬이다. 등대가 있는 동쪽이 조금 더 높다. 


마라도 역시 화산 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화산섬이다. 파호이호이 용암류가 굳어져 만들어졌으며, 용암이 두께가 얇은 복합 용암류가 층층이 쌓여서 형성되었다. 톨레이아이트질 안산암 조성을 지니며 다양한 형태의 용암 지형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 제주 본 섬과의 관계와 분출 양식과 시기 등에 대해선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섬이다. 



마라도를 한 바퀴 도는 내내 아래를 바라보며 들어갈 바다 찾기


살레덕 선착장에 도착할 때부터 멋진 해식 동굴의 풍경에 

"저기 들어가자! 저기 들어가자!"

라고 외쳤지만 송악산과 운진항에서 출발한 배들이 자주 드나들어 수면에선 보이지 않는 다이빙 이기에 살짝 위험해 보였다. 살레덕 선착장을 바다에서 본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마라도의 동쪽 해안선은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서쪽 해안선을 따라 해식동굴이 발달하였다. 우리는 마라도에 도착해서부터 마라도를 정면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봤다. 서쪽에 발달한 해식동굴은 거센 파도가 아니면 들어가서 탐험해 보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아름다움이다. 높은 파도가 부서지는 백파에도 맑은 물이 느껴져 더욱 바닷속이 궁금해지는 마라도 바다이다. 해식동굴과 함께 주상절리도 관찰할 수 있다. 



"저기 들어가면 좋을까? 저긴 어때? 저긴 들어갈 수 있겠다. 저긴 파도가 너무 센데?" 

마라도는 오랜 시간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해식동굴이 아주 멋있는 곳이다. 그래서 더욱 바다에서 봐야 하고, 바닷속에서 봐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가 들어가기로 결정한 곳은 바로 지리덕 선착장이다. 바다에 들어가기 쉽고 나오기도 쉬워 보였다. 지리덕 선착장에서 옷을 입고 들어갔는데, 바닷물을 제대로 막아주는 제대로 된 슈트를 입은 것은 나뿐이었다. 나머지 세 명은 일반 수영복이거나 물이 잘 새는 슈트였다. 그래서 들어가자마자 세 명의 친구들이 너무 따가워서 있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실링이 제대로 되는 슈트 덕에 따가움을 느끼지 않았고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시야여서 나가기가 아쉬웠다. 바닷속은 감태와 많은 물고기들이 있어 아름다웠다. 시야가 좋고 바다가 좋다면 최고일 듯하다. 


지리덕 선착장 뒤에는 용암류가 만들어낸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용암류들이 얼기설기 서로 얽혀 있다. 빗물이 현무암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곳에서 바닷물을 씻어내는 천연 샤워도 할 수 있었다. 




지리덕 선착장을 나와 걷다보니 마라도 해녀 삼촌들이 물질을 위해 들어가는 듯한 곳을 발견하였다. 


"안 가볼 수 없지! 가보자!"


내려가서 보니 숨겨져 있는 비경이다. 마라도 도보길만 따라가면 이 풍경은 놓칠 수밖에 없다. 기암절벽의 용암이 만들어낸 무늬가 장관이다. 용암류가 서로 얽혀있고, 겉 부분이 공기에 닿아 차갑기 때문에 먼저 식는다. 이후 여전히 뜨거운 용암류가 내부를 이동하여 천천히 식어 굳어졌다. 용암류 내부가 비어 있는 용암관도 보이는 용암 지형을 잘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살짝 몸을 담그고 파도를 느끼며 놀았는데, 그동안 드러난 살을 모기에게 엄청 뜯겼다. 얼굴과 귀였다. 아주 잠깐 동안인데도 일인 당 10방 넘게 뜯겼으니 어딘가 민물이 고여 장구벌레가 사는 곳이 근처에 있나 보다. 



마라도 동쪽 해안으로 발달한 해식절벽이다. 



뭘 잡기 위해 들어가는 바다가 아니에요. 누구보다 바다 지킴이인 해녀학교 학생들


바닷물을 씻어내기 위해 쏟아지는 비를 원했는데 제주로 돌아오는 배에서 바람이 이루어졌다. 바다 위로 번개도 번쩍 내리치고 우르릉 쾅 대더니 비가 쏟아진다. 이미 젖어 있으면서 다이빙 슈트를 입고 있던 우리는 비바람 치는 갑판에 유일하게 나와있는 일행이었다. 


"뭐 좀 잡으셨어요?"

누군가 물어본다.

"잡으러 온 거 아니에요~"

"잡으러 온 거 아니에요?"

"지금은 금채기입니다. 아무것도 잡으면 안 돼요."

라고 알려준다. 


해녀학교를 다니면서 깨달은 점 중에 하나는 내가 잡는 것보다 관찰하기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성게가 알을 낳는 것을 보고, 문어가 살기 위해 도망가는 것을 보고, 소라가 알을 낳는 것을 보면 잡을 수가 없다. 바다에 들어가는 목적이 무언가를 "잡기"위해서가 아닐 수 있음을 아직 많은 이들을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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