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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Sep 01. 2021

정난주 마리아 : 소설 ⌜난주⌟

18세기 제주를 찾아다니며 읽다

# 난주

# 김소윤

# 은행나무

# 2018년 11월 19일


# 한 줄 추천평 : ★★★ 18세기 제주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제주 유배인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 제주로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읽어도 좋을 듯. 


# 읽기 쉬는 정도 : ★★★★★ 재미있는 소설로 술술 읽힌다.  







제주에 오면서 제주 관련 책들을 무더기로 구매하여 함께 내려왔다. ⌜한국이 싫어서⌟로 알게 된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 덕분에 제주 4.3 평화문학상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주 4.3 평화문학상을 받은 책들을 읽게 되었는데 그중 ⌜난주⌟ 는 6회 수상작이고 수상작 선정 당시 만장일치로 뽑혔다. 



정난주 마리아, 그녀는 누구인가?


정난주 마리아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인이다. 황사영의 아내이자 정약용의 조카이다. ⌜자산어보⌟로 유명해진 정약용의 형제들이다. 영화 <자산어보>에도 황사영 백서 사건이 살짝 나온다. 


1773년 정약현과 경주 이 씨 사이에서 태어난 정난주 마리아는 정약용과 정약종의 조카이다. 천주교를 익혔던 숙부의 가르침을 받아 천주교에 입교했으며, 1791년 황사영과 혼인했다. 황사영은 16세에 초시, 17세에 복시에 장원급제하여 정조에게 예쁨을 받던 천재였으나 천주교에 입교 후 위정자보다 종교자로서의 길을 걸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났고, 황사영은 박해의 참상과 순교자 현황 그리고 신앙의 자유를 위한 외국의 지원을 청원하는 『황사영 백서(黃嗣永帛書)』 를 작성하여 청나라로 보내려 하였다. 하지만 보내기 전에 발각되어 능지처참되었다. 대역죄인의 아내가 된 정난주는 제주도에 관비로 유배되었다. 두 살 된  아들 황경한을 안고 제주로 유배 가던 중 중간 기착지인 추자도에 황경한을 두고 떠난다. 차마 노비의 삶을 물려줄 수 없었던 정난주가 천주를 믿고 누군가가 발견하여 길러주기를 바랐던 마음은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후 제주에서도 단 한 번도 아들에 대해 언급했던 적이 없다고 하는 정난주 마리아의 자식을 향한 사랑은 소름 끼칠 정도이다. 아들은 다행히 오 씨 성을 가진 어부의 손에 의해 평범하게 자랐고, 하추자도 예초리에 살았다. 정난주 마리아는 서귀포 대정현 소속 관비로 유배 생활을 했고, 죽는 날까지 해배되지 못하고 37년 간 제주에 살았다. 1838년 음력 2월 병환으로 돌아가시며 모슬포에 묻혔다. 


정약현의 딸이자 정약용의 조카, 황사영의 아내라고 소개하면 얼마나 ‘족보 있는’ 여성인지 감이 올까? 하지만 누구의 무엇보다 신유박해의 피해자이자 제주 유배인인 정난주 마리아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면 이 책을 보면 좋다. 서울의 조선 명문가 집안의 양반이었다가 순식간에 제주 관노비가 되어 버린 운명은 소설이지만 실화이고, 실화이지만 소설 같은 이야기이다. 그녀는 양반에서 한 순간에 대역 죄인이라는 신분으로 조선에서 가장 천한 사람이 되었고, 일반 양인들 뿐만 아니라 나졸, 노비들까지도 희롱하고 괴롭힐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시련을 신앙의 힘으로 인내했고, 뛰어난 교양과 학식으로 ‘서울 할머니’로 불리며 제주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천주교 대정성지로 단장된 정난주 마리아의 묘역이 대정읍 동일리에 위치한다. 올레길 11코스도 지난다. 


헤어질 때 두 살이었던 황경한은 하추자도 예초리에서 평범한 어부로 살았고, 그 후손들은 현재로 추자도에 살고 있다. 황사영의 묘는 하추자도에 있다. 올레길 18-1코스를 지난다. 소설은 자살로 위장하고 난주가 추자도로 넘어가 아들 경헌과 살며 삶을 마감하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황경한의 ㅎ자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제주에서 죽어 모슬포에 묻힌 정난주의 마지막 모습과는 다른 결말이지만 상상인데 뭐 어떠랴. 




정난주 마리아에 대한 자세한 글이 있어 첨부한다 :

https://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holyplace&ctxtOrgNum=2368&curpage=&PSIZE=20



태어났으니 죽지 못해 먹고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이다


매일매일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괴롭힘이나 내 마음속 괴로움, 혼란, 자책, 슬픔 등의 부정적인 마음은 다스리기 쉽지 않다. 아마도 성인의 반열에 오를만한 신앙의 힘과 더불어 이 책에서 상상해 본 것처럼 좋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다. ⌜난주⌟에는 악인은 없다. 척박한 제주 땅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제주인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정난주의 삶 자체는 비극이면서도 우리네의 삶이다. 즐거움이 있으면 슬픔이 있고, 괴로움이 있다가도 그 속에 행복이 있고. 살아남기 위해 물 위로 코만 간신히 내놓고 물속에 잠긴 다리로 미친 듯이 휘저으며 어떻게든 편안하게 숨 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제주 남원읍 한남리에 위치한 헌마공신 김만일 기념관에서도 설명을 보며 굉장히 어이없었다. 조선 팔도의 모든 자연과 생물은 임금의 것이라 비록 내 집에서 내가 기르는 내 말이라도 내 맘대로 처리할 수 없다. 임금에게 바친다는 명목 하에 탐관오리들이 마구 빼앗아가니 백성들의 삶은 괴로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제주를 샅샅이 뒤지며 ⌜난주⌟의 배경을 만들었다


제주살이 첫 주에 난주를 읽고, 두 달이 지나서 다시 읽었다. 이 소설은 따라 읽다 보면 장면과 풍경들이 눈에 명확하게 보인다. 그래서 책을 보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좀 더 잘 고증된 영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돌아다녔다. 성읍 민속마을, 제주민속촌, 돌문화공원 그리고 모슬포까지. 또, 탐라순력도를 열심히 보고, ⌜옛 그림으로 보는 제주⌟ 책도 함께 펴서 마리아가 살았던 그 제주의 모습에 다가가려고 했다. 뼛속까지 이방인이자 외지인인 내가 잔뜩 경계하는 고양이와 같은 제주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다. 



집은 이랬을까? 저랬을까? 하며 자연스럽게 제주의 초가집을 떠올리고, 올레를 떠올리고, 통시를 떠올리며 읽었다. 마지막에 한낮에도 어두운 곶자왈 지네굴에 버려지는 모습에선 내가 봤던 용암이 만들어낸 밀림 곶자왈을 떠올리며 읽는다. 그렇게 열심히 제주 자연을 눈에 넣고, 제주어를 들으며 지낸 후에 다시 한번 난주를 읽으며 좀 더 제주의 과거를 떠올리며 소설에 푹 빠질 수 있었다. 



당 오백 절 오백이라는 제주의 민속 신앙에 대해서도 처음 제주에 왔을 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휙휙 바뀌는 날씨에, 바다 날씨에 좌우되는 물질에, 작물 하나 길러내기 어려운 척박한 토양에서 살기 위해선 나무, 돌, 오름, 바다, 집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신이 있다고 생각해야 하고, 굿을 많이 지냈어야만 했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종교로 인해 유배된 사람이 가장 종교 활동이 왕성한 지역으로 유배된 것도 정난주에게는 또 하나의 시련 아니었을까. 방마다 화장실에도 나무마다 돌 하나마다 제사며 굿을 아낌없이 드린다. 



소설 속에는 대정현에서 관비로 지내다 차귀진 관비로 쫓겨가는 설정이 나오는데 이는 소설적 상상력이 작용한 부분인 듯하다. 정난주 마리아의 제주에서의 삶을 검색했을 때 이러한 내용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도 더욱 거센 시련이 있을 만한 곳까지 쫓겨가고 결국 곶자왈 속의 동굴로 버려지지만 예수가 부활하듯 살아 나오는 난주의 모습은 인간이라기 보단 천상에 소속된 존재처럼 그려진다. 



제주의 모습과는 별개로 소설 ⌜난주⌟에서 관노비의 삶과 성격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어 좋았다. 양반들의 청빈낙도, 유유자적의 삶은 소위 그것과 거리가 먼 수많은 집안일, 밭일, 잡일들을 도맡아 해주는 신분인 노비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수많은 힘든 일에서 해방되는데 시가 절로 나오고, 흥은 절로 돋울 것이다. 월대에서, 용연에서, 정방 폭포에서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 속에서 풍월을 읊을 수 있었던 것은 전부 그들의 신분 덕분이다. 자본가의 삶이자 부동산 건물주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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