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되고 있는 아름다운 제주의 숲 곶자왈
올레길을 걸으며 나의 두 발로 천천히 볼 수 있었기에 제주의 자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제주에 머물며 홀딱 반한 자연이다. 가장 먼저, 제주 바다에 반했다. 이후 돌에 반했다. 그리고 한라산에 반했다. 이어서 오름에 반해 오름을 탐하였다. 그리고 막판에 곶자왈에 반해버렸다. 올레길 속에 들어있는 곶자왈을 걷다 보니 곶자왈이 주는 아름다움이 좋았다. 이후엔 올레길에 속해 있지 않은 곶자왈들을 찾아다녔다. 곶자왈의 억척스러움이 곧 제주의 역사라는 생각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붉은 물 용암이 지나간 새까만 폐허. 하지만 자연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어둠 속에 생명의 숲을 만든다. 바로 곶자왈이다.
곶자왈은 제주어 사전이나 인터넷 검색 상에선 '가시가 많은 덤불이나 잡목림',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켜 있는 수풀', '원시림의 제주어'라고 되어 있다. 숲을 뜻하는 '곶'과 자갈을 뜻하는 '자왈'의 결합어라고도 한다. 어디서는 '자왈'이 '덤불'을 뜻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어떤 기사에선 곶자왈의 풀이가 잘못된 것 같다는 지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곶자왈이라는 제주어의 기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나 보다. 제주의 곶자왈이 궁금하여 '환상숲 곶자왈 공원'에 방문하여 개인 소유의 곶자왈 지형을 보면서 해설을 해주는 5,000원에 50분 정도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들었는데, 거기서는 '곶'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가시덤불을 뜻한다고 설명하였다. 가시덤불이 자라고, 뒤이어 나무가 자란다. 나무가 크게 자라서 그늘을 만들면 가시덤불이 죽는다. 그러면 사람들이 나무를 할 수 있다. 나무를 베면 다시 가시덤불이 자라고, 이어서 나무가 자라고... 반복되며 숲과 가시덤불이 왔다 갔다 하니 이는 곧 곶, 자왈, 곶, 자왈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를 이어 붙여 곶자왈이라는 말이 되었다고 해설을 들었다.
당신이 아는 '곶자왈', 그 뜻이 아니라... 기사 :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65150
어쨌든, 곶자왈은 '서울'이라는 한 곳의 지명이 아니다. 돌이 많아 농사를 짓기 어려워 방치된 제주에 있는 용암 산림 지역을 뜻하는 단어로 이해할 수 있다. 개간하기 힘들어 불모지로 남았고, 농사도 짓지 못하는 버려진 땅이었다. 곶자왈은 방목을 하거나, 땔감을 얻거나, 숯을 만들고, 식물을 채취하는 정도로 활용되었다. 대부분 중산간의 초지대와 인접한 경우가 많다. 그렇게 과거 사람들은 숲의 끝자락에 위치해 깊고 깊은 불모지 곶자왈과 공존하였다.
제주의 곶자왈은 구좌~성산, 안덕~한경, 애월, 조천~함덕으로 크게 4곳에 있고, 다시 작은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원래는 훨씬 더 넓었는데, 개발로 인해 사라진 곶자왈이다.
https://m.visitjeju.net/kr/detail/view?contentsid=CNTS_000000000021368
곶자왈은 해발 200~600m의 중산간지대에 위치한다. 이들의 지질학적 특징은 크게 4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용암유역(lava flows field)이라는 점이다. 곶자왈에는 제주의 있는 수많은 화산에서 기원된 용암류가 흘러간 흔적이 수 km 이상 존재한다.
둘째, 파호이호이 요암류와 전이형 파호이호이 용암류, 아아 용암류가 각각 또는 서로 공존했던 지역이다. 그 조성은 지역적 차이가 있다.
셋째, 용암 지형은 용암류가 이동하여 만들어졌고, 굳어지거나 풍화되어 만들어진 암석들로 이루어져 있다. 큰 크기의 암괴 (boulder, 직경 26cm 이상)이 많다.
넷째, 용암이 만든 지형뿐만 아니라 숲의 발달로 인해 파괴된 지형을 포함한다.
참고 : 「제주도 지질여행 2020 개정증보판」, 김용제 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2020
곶자왈은 용암이 흐른 곳에 숲이 생긴 곳이다. 곶자왈의 가장 큰 특징은 흙이 없다는 점이다. 돌 위에 식물이 자랄 수 있게끔 환경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먼저 지의류*가 들어온다. 지의류가 자라고 나면 그다음으로 이끼가 들어온다. 이끼의 뿌리들이 풍화작용하면서 조금씩 바위를 부순다. 또, 지의류와 이끼는 죽어 종자가 발아할 수 있는 양분이 되어준다.
* 지의류란?
지의류는 광합성하는 미생물인 진행 미세조류 또는 남세균과 종속영양으로 살아가는 미생물인 균류 간의 상리 공생체이다. 즉, 단일한 생물체를 일컫는 용어가 아니다. 지의류에서 광합성을 담당하는 파트너는 유기 영양분을 생산하고 균류에게 제공하며, 균류는 식물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공생체를 이루고 있다. 지의류는 암석, 나무 표면, 식물 뿌리, 토양 표면 등 다양한 표면에서 서식하고 있으며 식물뿐만 아니라 균류나 조류 등 미생물도 단독으로 살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고, 열대에서 한대지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공생체이다.
참고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145089&cid=61232&categoryId=61232
흙이 없는 곶자왈에 살게 된 나무들은 바위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토양이 있으면 뿌리를 수직으로, 방사형으로 쭉쭉 뻗을 텐데 그럴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수평으로 뻗었다. 그리고 소중한 뿌리는 용암 덩이들에 막혀 땅 속으로 숨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뿌리는 토지 위에 드러나고 이렇게 널빤지 모양으로 변형되어 지표에 노출되는 현상을 "판근 현상"이라고 한다.
토양 깊이 뿌리박고 굳건하게 서있을 수 없기 때문에 곶자왈이나 한라산 숲을 걷다 보면 이렇게 뒤집힌 나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서 쓰러지려면 육지에서는 엄청난 태풍이 올 때 아니고선 볼 수 없는 풍경인데 곶자왈에선 흔하게 볼 수 있다.
열심히 돌에 의지해 뿌리를 지탱하고 있는 나무의 생명력이 느껴지는가.
돌은 낭에 의지하고, 낭은 돌에 의지한다.
곶자왈이라는 거대한 숲이 생기기 위해선 용암 바위 아주 조금씩, 조금씩 풍화되어 흙으로 변한다. 아주 조금 있는 흙, 옆에 동료가 죽어서 남긴 양분 정도로 살아간다. 주위 나무들보다 조금 더 위로 뻗어야 햇빛도 받을 수 있다. 척박한 땅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 경쟁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곶자왈이다. 하지만 너 죽고 나 죽자의 괴로운 경쟁이 아니다. 곶자왈에서 양분이 모자라서, 햇빛을 못 받아서 식물이 죽어도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죽어서 다른 식물들을 위한 양분이 되어 주고 햇빛 길을 열어주며 다른 생물체가 잘 살 수 있는 터전이 되어준다.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숲이다. 겨울 곶자왈은 가보지 않았지만, 추운 겨울 곶자왈에는 푸르름과 따뜻함이 가득하여 계절감각을 잃게 만든다고 한다.
화산 폭발로 여기저기서 흐르는 용암들이 이전에 흘러서 이미 바위가 된 것들을 부순다. 바위 덩이들은 불규칙하게 쌓이고, 그 사이사이로 다양한 식물들이 자란다. 제주에만, 제주 곶자왈에만 살고 있는 생물들도 많다.
곶자왈에는 600종 이상의 관속식물이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식물은 제주고사리삼, 개가시나무, 으름난초, 순채, 제주물부추 등이 있다. 울창한 숲은 섬휘파람새, 직박구리 등 텃새들의 보금자리일 뿐만 아니라 긴꼬리딱새, 팔색조 등 희귀 철새들의 월동지가 되어 준다. 그 외에도 제주도룡뇽, 쇠삭모사와 같은 양서류와 파충류도 있으며 포유류로는 노루가 대표적이다.
개간하기 힘들어 불모지로 남았고, 농사도 짓지 못하는 버려진 땅이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 수많은 종류의 생태를 담고 있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산소를 내어준다. 또, 겹겹이 쌓인 용암 돌들 사이로 지하수를 저장해주며 깨끗하게 필터링도 시켜준다. 우리가 사 먹는 생수 '삼다수' 역시 교래 곶자왈이 만들어낸 물이다.
땔감을 만들기 위해, 숯을 만들기 위해 곶자왈의 나무를 베었다. 오랜 세월 동안 30~40년 주기로 나무를 베었다. 이렇게 밑동만 남은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는 것을 '맹아'라고 한다. 곶자왈은 이런 맹아들이 자라서 숲을 만든 '맹아림'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맹아력이 약한 나무들은 죽고, 강한 나무들이 살아남게 되었다. 그래서 곶자왈은 사람들의 간섭을 받지 않은 원시림이 아니라 2 차림의 성격을 보인다.
곶자왈은 안에 들어가서 봐야 한다. 겉에서만 보면 그냥 평범한 숲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단단한 뿌리가 돌을 감싸고 있는 곶자왈의 풍경을 보면 신기하다. 또, 영양분을 공급받는 나무의 소중한 부분인 뿌리가 전부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곶자왈의 나무뿌리를 보면 이게 뿌리가 아니라 줄기처럼 보인다. 뿌리를 옆으로 뻗으며 척박한 환경에서 악착같이 살아온 나무들은 너무나 제주 해녀의 모습이다. 아니, 제주 사람들의 모습이자 제주의 모습이다.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악한 것도 없고 선한 것도 없다. 곶자왈에서 제주의 자연뿐만 아니라 제주의 역사와 제주의 사람들이 느껴진다.
붉은 물 용암이 흐르던 곳에 초록색의 숲이 되었다. 10만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걸쳐 만들어진 폐허 위의 숲이다. 치열하게 생존한 나무의 가지 하나, 잎 하나가 너무나 소중하다. 상처 내지 않아도, 헤집지 않아도 곶자왈 안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치유되고 정화된다. 코로 곶자왈의 향기를 느끼며, 귀로 곶자왈의 소리를 듣고, 눈으로 곶자왈의 푸르름을 느껴라.
돌에서 시작하여 생명의 보고이자 지하수의 창고이자, 제주의 허파가 된 숲 곶자왈. 뜨거운 용암이 굳은 바위에서 시작하여 숲이 되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런 곶자왈을 파내고 골프장을 짓고, 영어 교육 도시를 짓는 데는 몇 개월, 몇 년이면 충분하다. 곶자왈의 물이 잘 빠진다는 특성 탓에 골프장에 제격이다. 제주 지도를 꺼내놓고 골프장의 위치를 보면 딱 곶자왈이었을 곳들이다.
곶자왈에 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불과 1990년대이다. 조사와 연구가 현재 진행형이며 속속들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곶자왈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곳인지 채 알기도 전에 파헤치고 있다.
곶자왈에 한 번이라도 들어가 보면 이 아름다운 곳을 파괴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슬픈 일인지 알 수 있다.
http://www.gotjawal.com/skyboard/read.sky?id=690&page=1&code=sky_notice&scode=&search=&SearchSt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