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 시기를 망라한 작품들이 놀랍다
2021년 4월 삼성은 국보 보물 등 지정문화재를 포함한 유물, 세계와 국내를 망라한 유명 작품 23,000여 점을 국립기관에 기증한다고 밝혔다.
그러고 나서 각각의 기관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이건희 컬렉션 전시 소식을 내놔서 놀랐다. 2만 3000개라고 그러지 않았나? 그 많은 걸 언제 다 분류하고, 어떤 의의를 두고, 어떤 공통점으로 묶어서 전시 주제를 잡고 전시를 한다는 거지? 원래 이렇게 전시를 대충 준비하나? 이해할 수 없는 속도로 전시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박수근미술관, 이중섭미술관 모두 말이다. 기증품들을 보려면 적어도 1년 반은 걸릴 줄 알았다. 급하게 열린 전시회에 기증받은 기관은 미술품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한 것인가? 하는 전시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건희 컬렉션 전시는 7월 21일에 개막하였다.
전시는 <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이름이 노골적이다. ‘함께 누리다’라는 말도 시혜적인 느낌이고 ‘명품’이라는 말도 세속적이랄까. 은근하며 은은한 맛이 전혀 없는 전시 제목이다. 초고속 기획이라서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이건희 컬렉션은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의 <70년 만의 귀향>에서 보고 두 번째로 접하는 전시였다. 그래서 나는 회화만 떠올렸던 것 같다. 서울 현대미술관에서도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나 뭐 르누아르, 달리 등의 작품이 기증되었다 라는 기사를 접한 것도 한 몫한 듯하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 기증품은 정말이지 ‘박물관’에 어울리는 ‘유물’들이 많았다. 그래서 놀랐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던 이렇게 수많은 ‘물건’들은 어디에 있던 것일까? 어떻게 흘러간 것일까? 영화 <도굴>의 지하 수장고가 떠올랐다. 그게 정말 영화가 아니고 사실이었단 말인가? 영화보다 더 실제 같은 실제가 존재했던 모양이다.
오래된 유물이나 회화 작품이나 온도와 습도 관리가 중요할 텐데, (물론 회장님은 전문가를 고용하고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좋은 부지과 건물을 가질 수 있었겠지만) 그게 개인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해본 것 같다. 자본력뿐만 아니라 수집력과 실행력에 더 놀란 컬렉션이다. 이번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이 이렇게 전 시대를 망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병철 회장이 불상, 도자, 근대미술을 모았고, 이건희 회장이 20세기 미술품 위주로 모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홍라희 전 삼성 리움미술관 관장의 컬렉션까지 더해져서 고대부터 동시대 작품까지 소유할 수 있다.
이 전시회에 '명품전'이라는 제목을 단 이유는 전시된 작품들이 대체로 국보와 보물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유물들의 가치를 판단하고 국보와 보물로 채택했을까? 사실 이번 전시품들은 국가지정문화재가 많은데 이전에 리움 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나 연구로 알고 있던 것이 대부분이다. 국가지정문화재이기 때문에 관리도 철저하게 받아 보존 상태도 좋다. 즉, 기증받기 전부터 이미 국보와 보물이었고, 이건희 회장이 소장하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던 전시품들이다.
전시실은 단아하게 단 두 칸으로 엄청난 예매와 엄청난 예약과 대기를 생각하면 고작? 싶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전시품목들이 보물과 국보이니 노골적인 전시 제목을 붙이고 싶을 만도 하다.
금빛 글자로 새긴 고려 시대 불교 경전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매일매일 보고 싶은 크기의 불상들도 컬렉션의 시작부에 위치하고 있다. 기증자의 ‘위대한 안목’을 찬양하는 벽의 글귀에 이어지는 유물들이 기증자의 극락왕생을 바라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이라고 생각하는 건 내가 너무 꼬여서일까?
어쨌거나 매우 정교한 불교 경전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고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한국미술사를 배울 때 뿅 가게 반했었던 고려불화가 있었다. 학부 때 수월관음도를 보러 경남 통도사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갔는데 외장 하드가 날아가버려 그때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게 아쉽다. 함께 비교해서 보면 더 좋았을 텐데.
철기시대 청동검, 청동 방울이 인상적이었다. 청동 방울은 여태껏 본 것 중에 가장 정교했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동그란 방울만 많이 보았는데 여기선 원 모양의 쌍두령과 직선 모양의 쌍두령처럼 다른 모양의 방울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이거 흔들어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들어보고 싶은데, 원 소유자가 흔들어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내가 가지고 있었으면 소중하게, 적어도 한 번은 흔들어봤을 것 같다.
고려시대 청동북, 향로, 향완 모두 아름다웠고, 무엇보다 글자가 새겨져 있어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적 가치도 높은 유물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컬렉션 전시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밀고 있는 것이 바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이다.
정선을 좋아하고, 대단한 화가지만 나는 그 옆의 김홍도의 <추성부도>가 더 좋았다. 하나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여 풀어내는 게 재미있었다. 계절의 영향도 있으려나. 하늘도 높아지고 파래지며 가을의 느낌을 풍기고 있는 날이었기에 여름의 비가 많이 내렸던 인왕산의 풍경보다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소리 낼 것만 같은 <추성부도>가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월오봉도처럼 쨍한 색채를 가진 한국화는 언제나 옳다. 이번 전시에는 <십장생도>가 그랬다. 단순히 그림이 아니라 10폭의 병풍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조선시대 이건희라고 불릴 만한 사람의 집에 있었을 법한 느낌으로 너무 멋졌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 유물이 있었다. 이는 한글이 창제된 15세기 훈민정음의 표기법을 잘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글과 한글 서체까지 함께 있어 가치고 있다. 각각 보물 523-3호와 보물 9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엄청 멋있는 책이었고, 이 책의 가치도 가치이려니와 보존 상태도 놀라웠다.
신라의 토우는 말해 무엇하랴. 국립 경주 박물관에 있는 신라의 대표 토우 토기와 비견해도 떨어지지 않는 토우 인형을 가진 토기가 있었다.
그 외 가야시대 토기와 조선 백자, 고려청자들이 제 멋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씨 여인의 묘지석과 부장품으로 추정되는 분청사기 세트가 있었다. 이 멋진 유물일 눈에 넣을 정도로 가까이서 정교함을 느끼며 관람할 수 있어서 좋지만, 애초에 이 그릇들의 목적은 죽은 이가 저승에서도 잘 먹고 잘 지내기를 바라는 목적에서 넣어졌다. 그 본연의 용도를 다하고 있지 못함에 미안함이 든다.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 작품들이 도굴 여부나 문화재를 입수한 과정은 따져보지 않아도 되는 걸까 하는 의아함도 든다. 이건희 컬렉션을 접하면서 또 새로운 궁금증들이 나타난다.
밍기적거리다 예약 놓치고 끝나버릴 뻔한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컬렉션 전시. 국립현대미술관이 내년 3월까지라 대략 그 비슷하게 생각했는데, 예약하러 들어가 볼까 하고 들어갔더니 9월 26일에 끝나고 그때까지 전부 매진이다.
‘어쩔 수 없지 못 보네’ 하고 빠른 포기 후 국립중앙박물관의 호모 사피엔스전과 상설 전시를 보러 갔다. 호모 사피엔스전을 보고 상설 전시관으로 가서 이건희 컬렉션이
전시되고 있는 데를 향했다. 역시나 사전 예약 없이는
관람 불가라고 한다.
“취소표 현장 예약은 안 되나요?”
취소표가 풀리면 온라인에 풀리고 현장 예매는 절대 없다고 한다. 새로고침으로 온라인 예매를 해야만 볼 수 있다고.
그리고 20분 동안 새로고침을 한 끝에 구할 수 있었다. 시간도 앞으로 30분 후인 12시 30분 것. 못 보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현장에서 딱 적절한 시간에 구하다니 운이 좋았다.
하지만 대구시립미술관이나 광주시립미술관은 제주에 머무는 동안 이미 전시가 끝나버려 가보지 못한 게 아쉽다. 박수근 미술관은 거리와 일정 때문에 가지 못하였다. 하지만 기증 작품들의 재공개되고 또 도록도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 보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아쉬워할 필요는 없겠다. 국립중앙박물관도 기증 1주년을 맞아 2022년 4월에 제대로 된(?) 전시를 준비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