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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Oct 08. 2021

지상에 20cm 떠있는 예술가들「나의 조선 미술 순례」

예술이라는 창을 통해 보는 '조선'

# 나의 조선미술 순례

# 서경식

# 반비

# 2014년 11월


# 한 줄 추천평 : ★★★★★ 우리가 아는 그 ‘조선’ 미술이 아님을 염두에 둘 것. 하지만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 읽기 쉬는 정도 : ★★★★☆ 어려운 말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다. 

 






한국인에게 '조선'이란 뜻이 디아스포라에게 '조선'이란 뜻과 같을 수 있나


서경식 선생님의 말이 옳았다. 내가 다수자의 입장에서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조선 미술 순례 」가 내(우리)가 생각하는 그 “조선” 미술 순례라고 생각하고 건져 올린 책이었다. 조선 미술, 그리고 대체로 회화였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읽기 시작하자마자 내가 또 어떤 소수자에게는 무의식적으로 상처를 줄 수 있는 다수의 입장에서 제목을 해석했음을 깨달았다. 항상 ‘여성’이라는 권력관계에서 minor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경식 선생님의 글을 보다 보면 나도 어떤 범주에서는 major의 위치에서 major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윤석남” 작가 편에선 비슷한 깨달음이 보인다. 재일 조선인 디아스포라로서 누구보다도 minor 였지만 여남의 관점으로 봤을 때는 남성의 성(性)을 가지고 있는 major 로서 여성이라는 존재와 수천 만년 동안 소수자로서 억압받으며 내재된 DNA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성찰 말이다.


윤석남 <기도>


이 책의 제목을 짓는 데도 작가의 고심이 매우 담겨 있었다. 제목을 보고 얻게 되는 깨달음뿐만 아니라 ‘서경식’이라는 누가 봐도 ‘한국인’의 이름 석자를 가진 책이지만 이 책은 번역된 책으로 번역가도 있다. 이 역시 ‘한국’ ‘국민’ 으로써 아무렇지 않게 ‘한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태어날 때부터 내재한 사람에게는 낯설게 여겨지는 지점일 것이다.



그리 어렵지 않으며 매우 재미있게 읽힌다


서양미술사, 현대미술사, 한국미술사와 같은 교양 강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점 그리고 대한민국 평균을 웃도는 미술관 관람 정도를 제외하면 미술에는 문외한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려고 했을 때 서문을 보고 ‘아 이게 꽤나 내가 잘 모르는 현대 한국 작가들에 대한 글이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기우였다. 나처럼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무리 없게, 하지만 조금은 가슴 아파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8명의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해 얘기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같이 ‘신윤복’ 단 한 명만 알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익숙한 신윤복 보다 현대의 작가들이 격정의 한국 또는 세계를 살아가면서 그들의 역사와 생각을 작품에 담아내는 그 과정, 그들의 생각, 배경 등을 함께 보여주는 동시대 작가들의 이야기가 훨씬 울림을 주었다. 신기했던 것은 예술가와 작가와의 만남에서 나온 글이고, 나는 미술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뭔가 어렵고 뜬구름 잡는 얘기들이 있을 것 같았는데, 그보다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는 것이었다. 나보고 그림을 보고 쓰라면 못 쓸 글이지만, ‘이런 그림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이해 못하겠다’가 아닌 ‘와 정말 그렇게 보인다’의 감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나라는 필터를 통하여 예술을 바라보는 거고,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나에게 달린 것이라고. 나의 해석과 취향이 이 분야를 전문으로 한 유명한(?) 사람과 다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어쩔 건데?라고 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예술인 듯하다. 변기통도 갖다 놓고 예술이 되는 이 시대에 말이다.



예술가 그리고 그들이 반영하는 현실


예술가는 자신 만의 환상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처럼 가족,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떨어질 수 없고, 도리어 ‘지상에서 20cm 정도 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예술가에 대한 이 정의가 마음에 들었다. 현실을 벗어날 수 없고 현실을 아주 조금 떨어져서 관조하며 그것을 유머이든, 숭고함이든, 노골적인 비판이든, 뭐든 간에 예술로 승화시키는 예술가들. 너무 멋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윤석남 작가를 알게 되었고 곧 팬이 되었다. 역사라는 현실, 여성이라는 현실을 절절히 담아내는 작품들이 좋다. 


윤석남 <우리는 모계 가족>


광주의 사람들을 부르거나 아스라이 사라진 위안부를 부르는 ‘초혼’이라는 주제를 가진 작품이 다른 작가지만 동시에 등장하는데, 그만큼 이름 없이 아무도 모르는 채 낯선 곳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근현대사 속에 많이 있음을 예술을 통해서도 알게 되고, 그들의 혼을 불러서 위로하고 공감하고 싶어 하는 예술가들의 따스한 마음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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