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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Oct 20. 2021

박수와 감탄이 새어 나오는 후반부 풍경 : 올레 8코스

고요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길 올레

# 19.6 km

# 월평 아왜낭목 쉼터 ~ 대평포구

# 상징 : 대포 주상절리

# 월평 아왜낭목 쉼터 ~ 중문색달해수욕장 21년 7월 10일 13:20 ~ 17:00 (3시간 40분)

# 예래동 입구 ~ 대평포구 21년 7월 19일 15시 ~ 17시 40분 (2시간 40분)


나의 올레길 바이블인 「 제주올레 가이드북 」에 따르면 소요시간은 5~6시간이며 난이도는 중에 속한다.



흐린 날 오후, 월평 아왜낭목에서 출발


오늘은 파도가 매우 높은 날. 프리다이빙 트레이닝을 갔다가 눈 앞에서 섶섬을 가리는 너울 세례에 바다에 토를 쏟은 날이다. 그래서 그리 오래 걸을 계획은 없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 월평 아왜낭목을 13시 20분 출발한다. 중문에 숙소가 있어 집 가까이로 간다는 왠지 모를 편안함도 함께 장착하였다. 아왜낭목은 아왜나무가 있는 길목이라는 뜻이다. 달의 형체를 띠고 있는 월평마을은 달의 모양이 이어지지 않아 풍수상 허하다고 하여 정기가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왜나무를 심었는데, 1930년 월평마을 출신 재일교포들이 아왜낭목 부지를 매입하고 소나무를 심었다. 아무래도 아왜나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이후 도로 확장 공사가 일어나 아왜나무는 벌채되어 없어지고 소나무만 남게 되었다. 현재는 ‘아왜낭목’의 장소성을 살리기 위해 아왜나무 몇 그루가 심겨있는 상태이다.


너울도 높았고, 비도 내렸던 오전. 올레길을 걷기 시작하는데도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흐리지만 눈부신 날씨이다. 하천 하나를 지난다. 동회수천이다.  



소중한 사유지를 올레 길로 내어준 귤밭 주인은 예쁜 나무만큼이나 마음도 예쁠 것만 같다. 올레길을 사랑하고, 올레길에서 큰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이렇게 사유지를 지날 때 항상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엄청나게 큰 : 약천사


곧 약천사가 나온다. 약천사는 중국 절 느낌이 난다. 거대한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약천사의 창건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통일신라시대 근처 한라산 쪽으로 법화사라는 큰 사찰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부속암자가 인근에 산재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약천사의 이름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약수가 솟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절 이름에도 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들어있으니 제주에 얼마나 물이 소중했는지 느껴진다. 약천사 창건 이전부터 약수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고 하고, 무오법정사 항일운동 당시 일제에 끌려갔다가 옥고를 치르고 나온 방동화 스님이 출소 후 몸조리를 하며 머문 곳이 약수암이라고 한다. 1982년 약천사 불사가 시작되었고, 현재는 지상 30m 높이의 거대한 대적광전과 국내 최대의 목조불상을 가진 제주를 상징하는 사찰이 되었다.


제주의 절들은 대체로 집을 대여한 느낌이 드는데, 약천사는 그렇지 않다. 뭔가 고즈넉하고, 오랜 역사를 담았으며, 고목 향기가 느껴지는 육지에서의 절과는 집 같은 제주절도, 약천사 같은 제주 절도 닮지 않았다.


대포포구를 향하는 야자수 길


서귀포 바다를 향해 있는 야자수 길을 걷는다. 야자수 나무는 내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한다.


아아용암이 가득 찬 바다에 어느새 닿는다.


울퉁불퉁한 아아용암이 만들어낸 현무암 작품인 이곳을 지나면 대포포구가 나온다.



대포포구


큰 개, 큰 포구라는 뜻을 가진 대포포구는 예부터 중요한 교통 요충지였다.

 

대포포구 앞바다는 초록색이다. 김녕이 우유 푼 연한 파란색, 섶섬 앞이 파랑파랑한 삼성 블루, 법환 바당은 남색에 가까운 짙은 파란색이라면 대포 바다는 초록색이다. 내 키 만한 장어가 똬리 틀고 숨어 있을 것 같은 색깔이다. 천지연 폭포를 떠올리게 한다. 대포항에는 귀여운 도대불이 남아있다. 대포동에 한 달 동안 살게 된 첫 날, 가까운 대포 포구에 갔다. 횟집들이 많았는데 2인에 가격이 20만 원을 웃돌았다. 애월 어촌계에서 먹으면 6만 원이면 먹을 것을 이곳은 이름값인지 너무 치솟은 가격이 어이가 없어 먹지 않고 나온 적이 있다. 아무래도 중문 관광단지 근처라 그런 모양이다.





중문 축구장을 지나 대포연대


대포 횟집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대포포구를 뒤로하고 걷다 보면 또 무언가를 짓고 있는 공사현장을 지난다. 중문 관광단지이라는 독이 점점 퍼지는 듯한 느낌이다.


한 걸음에 성큼성큼 들어가기 좋은 바다가 나온다. 다음에 들어가 봐야지 다짐하면서 지나가면 3.9km 지점인 중문 축구장이 나온다. 올레 20코스에서도, 올레 16코스에서도, 올레 19코스에서도 축구장을 봤다. 그래서인지 제주엔 축구장이 많은 느낌인데 인구 대비 또는 실제 축구하는 인원수 대비 축구장이 많은 건지 궁금해진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대포연대이다. 2000년 2월에 새로 복원되었으며 동쪽으로 직선거리 4.5km 인 마희천연대, 서쪽으로 직선거리 2.6km인 별로천연대와 교신했다. 별로천연대는 8코스에 속해있는 베릿내 오름의 정상에 위치해있었다.




대포 ~ 중문 주상절리대


파도 소리 가득한 공원이 이어진다. 중문 관광단지 일원에 속해있다는 인공적인 느낌이 배어있는 공원이다. 해송에 파란 바다가 가려도 파도소리가 저편에서 바다임을 알려준다. 대포연대에서 중문 주상절리 관광안내소까지 이어지는 해안 올레는 주상절리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올레 8코스는 주상절리 파티인데, 가장 먼저 대포 주상절리가 나온다.



주상절리는 액체 상태였던 용암이 고체로 빠르게 굳으며 부피가 수축하여 생기는 기둥 모양의 구조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용암이 천천히 식을수록 주상 절리가 크고 선명하게 발달하고, 빨리 식으면 기둥의 굵기는 가늘고 모양도 불규칙해진다. 제주 중문과 대포 해안의 주상절리대는 천연기념물 제44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보통 중문 주상절리대를 많이 방문하는데, 올레길을 따라 대포동 쪽으로 오면 주상절리대를 훨씬 더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대포동 해안에서부터 중문동 해안까지 약 2km에 걸쳐 주상절리대가 발달해있다.



중문 주상절리 


중문 주상절리 역시 올레길 8코스에 속해있다. 올레길을 걸을 때는 들어가지 않았고, 따로 날을 잡아 이른 아침 중문 주상절리를 보러 갔다.

 






베릿내 오름


중문 주상절리를 지나 중문관광로를 따라 조금 걸으면 8코스의 명소 베릿내 오름이 나온다. 천제연의 깊은 골짜기 사이로 은하수처럼 물이 흐린다고 해서 '별이 내린 내'라고 부르던 것이 베릿내가 되었다. 이름이 정말 예쁘다. 베릿내 오름은 표고 101.2m의 가뿐한 오름이다. 내려다보는 바다는 조금 심심했다. 섶섬, 문섬, 범섬 그리고 새섬이 서귀포 바다를 얼마나 예쁘게 장식해줬는지 안 보이니까 더욱 느껴진다.



하지만 베릿내오름은 바다가 보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너무나 멋진 오름이다. 오름은 사진에서 보다시피 목재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편하게 걷기 좋다. 오름의 서쪽인 천제연 계곡 양 옆으로 우거진 난대림은 솔잎난, 담팔수 등 희귀 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이 일대는 천연기념물 제182-7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온통 초록 일색인 오름에서 몸이 숨겨지지 않는 새빨간 게를 만났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밀자 순간 '얼음'이 되었다. 아무리 안 움직여도 너의 색깔은 너무 눈에 띈단다.

 


베릿내 오름을 내려오니 천제연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만든 하천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들어가고 싶다!



조선 고종 대에 대정 군수를 지낸 채구석은 관직을 그만두고 중문에 살면서 천제연 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을 끌어와 5만여 평의 논을 조성했다. 천제연에서 중문 일대까지 물길을 '논골물'이라고 불렀다. 이후 감귤 농사를 지으며 논이 필요 없어지자 논골물은 물길을 바꾸어 베릿내 절벽으로 떨어진다. 제주에서 흔치 않게 논농사까지 지을 수 있었고, 민물과 바닷물이 반나는 곳에는 어족 자원이 풍부하여 살기 좋았던 베릿내 마을은 너무 아름다워 빼앗겨버렸다. 1988년 중문 관광단지 2단계 개발 과정에서 주민들은 모두 떠나야만 했다. 천편일률적이고 크기만 큰 못생긴 중문 관광단지 건물로 변해버린 베릿내 마을에선 예전 아름다움은 떠올릴 수 없다.


9.1km 지점 파시픽랜드에서 마무리하였다. 오후 17시이다.


서귀포의 또 하나의 멋진 공원 : 예래생태공원


새파란 하늘이 너무나 아름답던 날. 예래동 입구에서 15시에 시작한다.

 

쨍한 날씨가 해안 올레에 적격이다. 바다를 만나기 위해선 예래생태공원을 지나야 한다. 서귀포 공원들은 자연을 한껏 담고 있기 때문에 공원 올레 역시 놓칠 수 없다.



대왕수천을 끼고 있는 예래 생태 공원은 물소리를 따라간다. 나도 바다를 향하고, 너도 바다를 향하는 함께 가는 길이다. 예래마을은 2,000년 전 바닷가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한다. 생태마을로 생태관광을 자랑하고 있으며 예래천 제1호 반딧불이 보호지역이다. 생태 마을 예래를 속속들이 돌아다녀 보고 싶어진다.



논짓물


16km 지점 논짓물에 닿으면 시원한 해안 올레가 시작된다. 논짓물은 바다 가까이에 위치한 논에서 나는 물이란 뜻을 담고 있다. 민물로 만들어놓은 담수욕장이지만 파도가 계속 밀려들어와 짠맛도 느껴질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날이 매우 쨍해서 하늘을 닮은 바다는 깊은 쪽빛을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운 바다 색깔에 물고기가 되어 헤엄치고 싶어 진다. 중문 관광단지를 지나는 올레 8코스의 다운된 기운을 재충전하기에 충분한 바다색이다.

 



그 모습 그대로 있어줬으면 : 하예포구


17.6km 지점인 하예포구에선 공사가 한창이다. 어떤 공사일까? 공사 안내판을 보니 하예항 어촌 뉴딜사업(3차) 공사라고 한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테마공원, 방파제 공원, 해수체험공간, 하예 항 등대 탐방로 등을 만든다. 다른 어촌 마을과 똑같은 풍경이 되기를 바라는 걸까. 사람이 없고 조용하며 바다 색도 아름다운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주민들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길 바라는가 보다.


누군가는 조용한 곳으로 여행 가고 싶어 하는 반면 누군가는 공원이나 시설 등이 많은 관광지로 여행 가고 싶어 한다. 제주의 조용한 마을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변하여 모두 '중문 관광단지화'된다면 고요한 곳을 방문하고 싶은 사람은 또 어딜 찾아가야 하나. 조그마한 하예항을 쩌렁쩌렁 울리는 공사 소리가 거슬린다.



산방산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예쁜 하천인 대동천을 건넌다.


박수기정, 산방산, 용머리 해안, 모슬봉, 형제섬, 송악산, 가파도, 마라도가 한눈에 들어오며 구름도 몽글몽글 양털구름에, 털구름, 그리고 층쌘구름까지 종류별로 있고, 쪽빛 바다에 은빛 바다, 부서지는 새하얀 파도까지 함께 있는 이 풍경이 8코스에서 가장 좋았다.



멋진 제주 남서쪽 풍경에 감탄하며 걷다 보면 박수기정이 성큼 가까워진다. 너무 멋있잖아!!! 박수기정이 잘 보이는 엄청난 뷰 맛집 카페에서 잠시 쉬며 바다를 감상하였다. 그냥 슈르륵 지나가버리기엔 너무 아쉬운 풍경이다.




길었던 19.6km의 종점 : 대평포구


대평리는 제주어로 '난드르'이다. 바다가 멀리 뻗어나간 넓은 들이란 뜻이다. 박수기정을 담고 있는 마을이고, 올레 좀녀 해상 공연장이라고 무대가 만들어져 있다. 구좌읍 종달리의 '해녀의 부엌'처럼 해녀들의 공연이 진행되는 모양이다.  


17시 40분 두 번에 나눠 걸은 올레 8코스를 마무리하고 택시를 타고 다시 예래동으로 돌아갔다. 중문 관광단지는 그다지 걷고 싶거나 보고 싶은 길이 아니다. 올레 7코스의 강정 해군기지처럼 올레 8코스의 옥에 티 역시 중문 관광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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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주상절리 : 21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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