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에서 시작된 취미 : 등산

등산의 시작

by 정여해

등산의 첫 계기는 브런치에 한참 글을 썼던 한라산이다. 2021년, 그저 해녀학교에 다니려고 내려갔던 제주가 나의 삶을 큰 각도로 굴절시켰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등산이다. 제주에 머물면 자연스럽게 제주의 자연에 빠져든다. 비단 하루만 머물더라도 쪽빛 제주 바다에 마음을 빼앗기듯 말이다. 나는 바다 뿐만 아니라 오름, 들판, 하늘 등 제주 풍경에 '홀릭'되었다. 그래서 제주를 떠난 이후에도 계절 별로 달라지는 모습이 궁금하여 자주 찾아갔고,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으슥한(?) 곳도 찾아다니며 제주의 자연을 만끽했다(하고 있다). 그리고 제주와는 다른 육지의 모습도 궁금해져, 우리 국토 그리고 해외의 산과 바다도 돌아다니며 관찰 중이다. 여행을 간다고 하면 도시 보다는 자연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올 정도로 나의 여행 스타일도 바꿔놓았다.


KakaoTalk_20250228_150421763_02.jpg 한라산 남벽을 지나 서귀로 향하는 길




2021년 5월. 제주에 도착한 후, 제주에 머무는 동안 언젠가 올라갈 한라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사람들한테 질문 하곤 했다.

"찾아보니까 성판악 코스가 있고, 관음사 코스가 있던데 어디로 가보셨어요?"

기억나는 대답은

"둘 다 힘들어요."

"어디로든 가지 마세요."

"한라산은 오르는 산이 아니라 바라보는 산이죠."


비슷하게 2024년 8월 일본에서의 일이다. 고베를 방문해서 38도 폭염 경보에 등산을 하고 내려온 날이었다. 나는 후지산이 닫히기 전에 2024년 안으로 후지산 등반을 계획 중이었다. 후지산을 오르는데에는 다양한 코스가 있어 정보를 얻을 겸 오사카 내추럴와인바에서 대화를 트게 된 60대의 노신사에게 질문했다.

"곧 후지산을 오를 예정이야. 가봤니?"

후지산을 올라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똑같은 말을 들었다.

"후지산은 오르는 산이 아니라 바라보는 산이야."


누군가에게 산은 바라보는 존재지만, 누군가에겐 탐험의 대상이다. 나처럼 조류가 센 지도 모르고, 파도가 하얀 거품을 내며 뒤집어져도 바다에 뛰어드는 인간에겐, 일단 들어가봐야 하는 곳이다.


내가 산을 '오른다' 라고 표현하다가 이제는 '들어간다' 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한 건 설악산을 다닌 이후 부터이다. 그리고 '내려온다'가 아니라 '나온다' 라는 말을 쓴다. 설악산은 겹겹이 봉우리들이 이어지며 굽이치는 말그대로 첩첩산중이다. 설악산을 '오르기' 위해선 일단 '들어가야' 하는데, 설악산의 규모 때문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 역시 꽤나 시간과 품이 든다. (물론 설악에도 드나듦이 짧은 코스도 있긴 하다.) 그리고 자고로 산이란 들어가긴 쉬워도 나오기는 어려운 법이다. 항상 여분의 체력을 남겨둬야 함이 필수인 이유이다.


이전 한라산 꼭지에도 썼다시피 나의 등산 경험은 거의 전무한 상태나 다름 없었지만, 당시에도 한라산을 몇 번이나 다녀왔다. 그렇게 한라산을 시작으로 나는 등산에 감겼고, 지금은 1주일에 한 번씩 설악산을 방문할 정도로 프로 등산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한라산은 뛰어서도 오른다.


한라산을 탐구하듯 다녔듯이 여러 산도 공부하듯 다니고 있다. 어르신들 처럼 들꽃이나 나무의 이름을 인디(indication) 하기는 어렵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혹은 그렇게 되지 않아도 좋다. 사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꽃과 나무 보다는 거시적인 부분이다. 지형과 지질학적 근원 그리고 산에 얽힌 설화나 역사적 이야기들이다. 이에 대해 조금씩 써보고자 한다.


KakaoTalk_20250228_150421763.jpg 문경새재의 역사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경 주흘산




KakaoTalk_20250228_152538248_01.jpg 전남 고흥 팔영산에서 내려다본 다도해 풍경


우리나라에 자연이 멋진 곳이 참 많다. 등산에 빠진 후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도 다녀왔지만, 큰 규모일 뿐 '아름답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저 거대하기만 하기 때문에 조화롭지 못했다. 바위도, 나무도, 절벽도 무슨 팝콘 기계에 들어갔다 나온양 그저 크다. 비례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내가 작은 나라에서 작은 것만 보며 자랐기 때문일까? 웅장한 자연 앞에 압도 되는 숭고미가 있고, 높이서 떨어지는 폭포는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장관이지만, 너무 아름다워 혼미할 지경까진 아니다.


하지만 설악은 그랬다. 국뽕 일 수도 있고 또는 나의 주관적인 감각일 수도 있고, 나의 적은 경험에서 내린 조속한 판단일 수 있겠지만. 무언가와의 비교를 떠나서 일단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움이 그 곳에 있다. 설악에 있다보면 서울이나 제주에서 만큼이나 외국인들을 많이 지나치게 되는데, 그들에게도 가히 자랑할 만한 아름다움이다. 사실 붙잡고 주접 떨고 싶다. 너무 예쁘지 않냐고. 이런 거 본 적 있냐고. 계절 마다 바뀌는 걸 보고 싶지 않냐고. 또 오고 싶지 않냐고.


그리고 설악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선 드나듦을 견뎌낼 체력이 필요하고, 그런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풍경이라 더욱 소중하다. 설악은 겉에서 훝어도 멋있지만, 안에서 보면 더더욱 멋있기 때문에.


KakaoTalk_20250228_150317775.jpg 2024년 여름 설악 중청 하늘




2021년 판데믹 당시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우리 국토 뿐이었지만, 그 덕분에 내가 얻은 것이 바로 자연에 푹 담기는 삶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갈 수 있다. 전세계엔 훨씬 더 많은 아름다운 자연들이 있을 텐데, 직접 가서 보고 싶을 따름이다. 천천히.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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