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9월 7일 H.O.T. 데뷔 7주년이야."
중학교 2학년, 덕후로써 만난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덕질하며 그 내용을 공유했다. 팬미팅, 생일파티, 콘서트 등 공연을 보러 갔다. 나는 아직 학생이면서, 집도 지방이었기 때문에 활발한 오프를 뛰기 어려웠다. 간혹 지방 행사가 있으면 보러 갔고, 가끔은 서울이나 부산 공연을 갔다. 큰 오프가 있으면 팬클럽 차원에서 버스를 대절해 주었는데, 구미발 버스는 많으면 4대였다. 부산, 대구와 같은 큰 도시는 버스가 20대, 50대씩 움직였는데, 서울에 보인 버스의 규모에 놀라곤 했다. 그리고 어린 눈에 팬클럽 대학생 회장 언니가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각 지역 대표 팬클럽 회장들이 모여 지역별로 관람 자리를 정하고, 무사히 행사를 치르는 데 다양한 일을 하셨다(이렇게 애매하게 쓰는 이유는 내가 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요새 덕질판에 이런 시스템은 없어진 듯하다.
얼마 후면 재원씨 생신이잖아. 나도 그때는 안갈려고. 재원씨께는 미안하지만. 우혁 오빠에 생신날에는 꼭 갈려고!! 이번 주 토요일이 강타 팬미팅 날인데, 그날 우리 엄마 생일이라서 안 갈려고 했으나 엄마가 엄마친구들끼리 그날 놀러 간다고 갔다 와도 된다고 해서 가게 되었어.
03.03.24 현미 (중3, 16세)
안 좋던 기분을 5월 4일 생파 가서 다 풀었어. 정말 재미있었거든. 경북 자리는 사이드였는데, 굉장히 안 보였어. 그래도 좋게 생각해서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항상 잘 볼 수는 없는 거지만 구미 가까이서 그것도 딱 시험 끝나고 한 것만 해도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몇 백 번을 고개 숙여도 모자랄 판에 불평할 게 어딨어. 03.05.07 여해 (중3, 16세)
9월 6일 플라이 투더 스카이 텐텐클럽 공방으로 구미에 jtL이 왔었어. 이런 촌구석에. 작년에는 기쁜 우리 젊은 날인가? 그거 공방으로 8월에 jtL이 왔었는데. 그래서 거기 갔었었어.
03.09.21 여해 (중3, 16세)
그리고 우리는 덕후들이 공유하는 달력을 가지고 있었다. 멤버들의 생일이라든가, 데뷔일이라든가 하는 기념일들이 있어서 그에 맞춰서 편지를 보내곤 했다. 기념일이 다가오면 당연히 덕메인 현미가 생각나곤 했으니까.
어제는 우리들의 희준씨의 생신이었지. 생일 파티는 갔었어?
03.03.15 여해 (중3, 16세)
4월 5일 날은 우리 친척들이 꼭~ 매년 절대로 빠뜨리지 않는 성묘날이야. 그래서 구미 지역 자축도 언제나 못가는...
03.03.15 여해 (중3, 16세)
오늘은 9월 7일 H.O.T. 데뷔 7주년이야. 작년이나 전만 해도 학교에서 벽보하고, 박하사탕 먹으며, 아~다시 하나 되길 바라며 하루를 보냈는데, 오늘은 그냥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며.
03.09.07 현미 (중3, 16세)
날짜를 쓰다 보니 오늘이 승호 생일인 걸 이제야 알았어.
08.06.07. 현미 (21세)
고등학교에 가면서 나나 현미의 오프 활동은 많이 줄어들었고, 새 앨범이 나오면 음반을 사서 듣는 정도가 되었다. H.O.T. 의 해체로 인한 여파이기도 했고, 학업으로 인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기는 힘들었다.
jtL 2집은 역시 좋은 것 같아. 나는 my life blues(된장사이)가 가장 좋더라구. 왠지 친근해지는 느낌의 가사야. 2집 노래 모두 좋은 건 당연하고. 1, 1.5집 과는 스타일이 많이 따뜻해진 것 같아. 비판 노래는 없고 가사도 많이 부드럽고 편안해졌다. 강타 프로젝트 앨범도 낸다는데, 이럴 땐 학생으로서 3장은 참 부담스러워. 03.08.21 현미 (중3, 16세)
창우혁 앨범 9/9에 나오는 거 알지?! 벌써 예약해놓고 빨리 오길 바랄 뿐이야! 정말 노력하고 열심히 한 게 보여!!!
05.09.01 현미 (고2, 18세)
갔다 오고 나면 또 가고 싶어서 다음 공연 내내 떨리고 공연 끝나서의 허탈함이 있었어. 지금은 그렇게 심하지 않지만 생각해 보면 옛날엔 참 순수하게 맹목적으로 좋아했던 것 같아. 이제는 그냥 삶의 활력소 같아. 그 사람을 보면 행복하고 노래를 들으면 힘이 나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05.12.19 현미 (고2, 18세)
그러다 대학교 가면서 부터는 H.O.T. 멤버들의 활동 자체가 거의 없어져 버려 관심은 줄어들었고, 가끔 들려오는 멤버들의 이러저러한 논란들과 함께 현생을 사느라 서서히 탈덕 되어갔다.
10대 청소년기 동안 온 마음을 바쳐 좋아했고, 당시에 그토록 영원을 외쳤지만 그렇지 않을 것을 사실 너도, 나도 알고 있었다. 잔인하게도 더 이상 멋있거나 매력적이지 않았다(하지만 덕후 DNA를 내재한 나는 또 다른 멋있고, 매력적인 아이돌을 찾아내 새로운 덕질을 시작하게 된다. 그건 좀 더 훗날의 이야기). 2011년도 현미와 함께 간 장우혁 생파는 내가 가는 마지막 생일 파티 일 것 역시 자명했다. 현미도 이런 나의 변화를 눈치채고, 간혹 있는 행사에 함께 가자고 하지 않고, 홀로 다녀오곤 했다.
나 10월 1일~2일 장우혁 팬클럽 캠프가. 누군가 덕분에 행복한데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니. 난 34살 장우혁도 좋더라.
11.09.25 현미 (24세)
장우혁 캠프를 다녀왔어. 이것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역시 장우혁이란 생각이 들어. 수많은 몇 만 명의 팬 중에 이제는 백 명 만이 모여 1박 2일을 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꼈어.
11.11.07 현미 (24세)
나 5월 5일 날 장우혁 생일파티 가.
12.5.3 현미 (25세)
H.O.T. 가 데뷔를 했을 때 우리 나이가 국민학교 1학년이었다. 그래서 H.O.T. 팬들의 나이대에선 굉장히 어린 편에 속했다. H.O.T. 팬이 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세대였을 것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H.O.T. 는 캔디, 행복, 빛 등의 노래로 전국민적 아이돌이 되었고,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H.O.T. 는 해체되었다. 전설의 227 콘서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머리가 좀 커서(?) 부모님을 속이고(?) 갈 작정이었는데, 부모님이 스키장으로 날 꼬셨다. 스포츠를 좋아했던 나는 콘서트는 다음에 가면 된다고 생각하며 스키장을 선택했다. 그게 마지막 콘서트일 줄 알았으면 갔었을 텐데. 스키장 리프트에서 '지금 콘서트 하고 있겠다...' 하며 미련이 남았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2018년, H.O.T. 재결합 콘서트가 열렸다.
어릴 때 수도 없이 듣던 노래들이 흘러나오자마자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학창 시절 특유의 촌스러움, 반짝거림 그리고 표류하는 감정, 별빛 아래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몸부림치던 고3 때의 나. 독특한 목표를 설정하고 공부를 하던 나로서는 '서울에 가서 장우혁을 보자'는 더없이 강력한 공부 동기였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데 H.O.T. 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게는 30% 까지 되지 않을까. (덕질의 순기능에 대해 언젠가 논해보려고 한다.)
우리에게 서서히 주입되었던 그 시대의 소리 그리고 그 시대의 향기! 덕질뿐만 아니라 청소년기 전부를 교류했던 현미와 함께 마치 내가 초등학교 6학년, 그때 가지 못한 콘서트에 와있다고 느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고, 그래서 타임머신이 있냐고 묻는다면 난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강렬한 정서와 추억, 그리고 염원과 자극이 섞이면 말이다.
너랑 이렇게 만난 것도 H.O.T. 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테니 더없이 소중한 개념(?)인 거라고 생각해.
18.10.12 여해 (31세)
우리 '관계'의 시작은 좋아하는 가수라는 공통점이었으나 이는 시간이 지나며 차츰 흐릿해져 갔다. 나의 자연스러운 탈덕이나, 가수의 없는 활동으로 인한 현미의 덕질 감소도 그 이유이겠으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유지되는 데에 있어서 초반에 친해지기 위해 필요했던 '공통으로' 공감하는 무언가보다 다른 요소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