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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Mar 31. 2021

「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저자 아툴 가완디 | 출판사 동녘사이언스



# 한 줄 추천평 : ★★★☆☆의사들의 고민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추천한다. 학문적이진 않지만 매우 가볍지도 않다. 엄~청 재밌거나 엄~청 감동적이거나 하지는 않다. 


# 읽기 쉬운 정도 : ★★★★★ 경험담 형식으로 돼있어서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다. 




 제목만 봤을 때는 현대의학의 맹점에 대한 과학적인 보고와 같은 글 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의사 개인의 경험담의 나열과 같은 글이었다. 앞서 읽었던 「 지독한 하루 」와 비슷한 류이랄까. 제목을 보고 현대의학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같은 것을 기대했던 나에겐 실망스러웠다. 불확실함을 더욱 많이 안고서 수술을 해야 하는 외과의사로서 느꼈을 법한 현대의학의 문제점을 크게 세 가지로 카테고리화 했고, 그 안에 다양한 환자들에 대한 경험을 써 내려갔다. 


첫째, 오류 가능성

둘째, 불가사의

셋째, 불확실성


 이 책의 원제는 ‘Complications’라고 한다. 의학 용어로 우리 말로는 합병증이라고 번역된다.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곡절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하는 일의 밑바닥에 깔린 보다 큰 불확실성과 딜레마에 대한 나의 우려가 담겨있다.”라고 글쓴이는 제목에 대해 설명한다. 



《 1부 오류 가능성 》


 “하지만 자신감 상실보다 더 나쁜 것은 방어적 반응이다. 외과의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 잘못은 잘 보면서 자기 잘못은 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어떤 의문이나 두려움도 없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실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자신의 한계도 알지 못한다. 한 외과의는 두려움을 모르는 외과의를 만나는 건 드물지만 어쩌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고 했다. 그는 “수술할 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의사는 자기 환자에게 심각한 해를 입히게 되어 있다.” 고 말했다.” 


 환자 앞에서 처음 해보는 거라도 그렇지 않은 척하며 떨지 않고 자신감 있게 해야 환자도 덜 아파하고, 덜 불안하다고 하셨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감 있는 태도와 ‘두려움이 없는 것’ 은 별 개이다. 아무리 작은 술기라도 하기 전에 항상 두려움을 가지고, 한 번 떠올고, 두 번 반추하고, 세 번 다시 읽어 보고 하라고 배웠다. 그때 받았던 가르침과 같은 맥락의 문단이라서 와 닿았다. ‘내가 혹시 해를 끼치면 어떡할까?’ 하는 두려움이 없는 의사에게는 나를 맡기고 싶지 않다. 


 문제가 있는 의사들에 대한 얘기는 암암리에 전해지는 소식들 말고는 이렇게 책에서 대놓고 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비록 미국의 얘기일지라도,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psychosis, 우울증 등등의 문제가 있는 의사들, 그리고 그런 의사들의 정신과 의사에 대한 얘기는 새로웠다. 기금이 끊겨서 병원 운영을 못하고 있다고 끝맺었는데, 지금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 2부 불가사의 》


 만성통증에 대한 글이 있었다. 만성통증을 겪는 환자들을 몇몇 보았는데, 겉으로 보기에도 멀쩡하고, X-ray에서도 멀쩡하지만 환자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경우였다. 



“의사들은 신체상으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만성통 환자를 보게 되면 잘 안 믿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런 환자들이 의외로 굉장히 많다. 우리는 세상이 판독 가능하며 논리적이라고 믿으며, 거기서 생겨나는 문제는 우리가 보거나 느낄 수 있는, 최소한 기계로라도 측정 가능한 문제들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퀸란과 같은 통증은 모두 머릿속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결론 내리기 쉽다. 육체적인 통증이 아니라 왠지 좀 가짜 같은 ‘정신적’인 고통이라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퀸란의 정형외과의는 물리 요법사뿐 아니라 정신과 의사도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기계가 분자 레벨까지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영상 검사에서 정상이면 정말 왠지 정신과의 영역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만성통증 환자들은 꽤 많이 있는 것 같다. 상상만 해도 괴로울 것 같다. 이러한 통증에 대한 원인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영역이라서 더 궁금해진다. 




《 3부 불확실성 》


 부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영상의학과 진단학의 놀라운 진보에도 불구하고 사망환자 다섯 중 둘은 진단이 잘못되고,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이것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경우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의사들이 애당초 그 방향으로 가닥을 잡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잡아낼 수 있는 완벽한 검사법과 영상기술이 있었지만 그 검사나 촬영을 지시하지 않은 것이다.” 


 “환자들을 그렇게 곤고하게 하고, 의사들을 그렇게 곤혹스럽게 하며, 그들이 올리는 청구서를 지불하는 의료복지 당국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의학적 난국의 중심에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람과 질병, 진단법과 치료법에 대해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 불확실성을 이해하고 그것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의사로서 환자들을 돌보다 보면 아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과 싸우는 일이 더 많음을 깨닫게 된다. 의학의 기저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으며, 과연 그러한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바로 환자나 의사 모두 지혜를 발휘해야 할 부분이다.” 



 교과서처럼 명확한 환자는 거의 없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 한 번 본 의사와 100번 본 의사의 차이는 이런 불확실성을 좀 더 잘 예측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리라. 하지만 100번, 1000번을 본다 하더라도 같은 사람은 없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인체이고, 그러므로 여전히 불확실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환자들은 의사에게 명확한 답을 원해서 묻지만 사실 그러한 답은 없다. ‘이 수술을 하면 괜찮아질까요?’ 이 대한 대답은 통계적인 결과로 밖에 설명하지 못하지만 이는 답은 아닌 것이다. '99.99% 의 사람이 낫습니다. 하지만 수술이라는 것이 항상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작용과 합병증이 생길 수 있고, 그렇다면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짜증 나는 말인가. 그래서 낫는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저렇게 말하는 의사는 실력이 없어 보이고, 괜히 다른 병원에 가고 싶어 진다. 그렇다고 “그렇습니다!!!! 나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의사도 믿음이 안 가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저렇게 자신하지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의학에 대해 환자와 의사와의 지식의 간극이 크다. 그리고 환자들은 자신의 병에 대해 심각하게 불안해하고 있다. 학생 때 외과 교수님께서 항상 하시던 말이 있다. “환자들이 얼마나 불안하겠니.” 사실 저 말이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뭔가 가짜처럼 들린달까. 하지만 내가 환자일 때로 돌아가 보면 환자가 느끼는 불안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수술실에서는 마스크와 모자를 무조건 써야 하기 때문에 눈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런 이상한 사람들에 챙그랑 거리는 쇳소리에 이상한 기계들까지 낯선 것 투성이다. ㄷ또, 나는 수술 부위에 따라서 벌거벗겨질 수도 있다. 실제로 수술이 시작하기 전에 눈물을 흘리는 환자들도 많았다. 그럴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에 대해서도 수술실 사람들이 더 많이 신경을 써줬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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