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밥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고 하는 걸까?
86세 김다리 씨가 아들과 함께 응급실에 왔다. 부정맥 약을 복용하는 것 외엔 특별한 질환이 없이 건강하였는데, 한 달 전부터 발이 붓고 아프더니 1주일 전부터 발가락 끝이 까맣게 변하는 것 같다. 아들이 아침에 보니 아버지께서 많이 아파하시는데 참는 것으로 보였다. 아버지를 모시고 가까운 내과에 찾아갔다. 병원에서는 혈관 문제인 것 같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대형 병원 응급실로 왔다.
"배고파. 뭐 좀 사 와라."
응급실에 들어와 침대를 배정받고, 아버지께서 하신 첫 말씀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도 못 먹고, 병원을 두 군데나 들렀다 오느라 진이 다 빠졌다. 아들도 허기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간호사가 피 뽑으러 왔길래 물어본다.
"여기 먹을 거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누가 드시게요?"
"저도 먹고, 아버지도 드시려고요. 아침을 못 먹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환자분은 금식하셔야 해요. 밥도 물도 절대 드시면 안 돼요."
라는 말을 하고 떠난다. 아버지는 배가 아파져 오신 것도 아니고, 평소에 식사하시는 데 지장도 없는 분이셨다. 발이 아파서 왔는데 왜 밥을 먹지 말라는 걸까?
"아버지, 아무것도 드시면 안 된대요."
"물 좀 줘~ 목말라."
"물도 드시면 안 된대요. 조금만 참으세요."
김다리 씨는 왜 물도 못 마시는 걸까? 환자가 물 마시고 싶다는데, 그걸 못 마시는 게 하는 게 더 나쁜 것 아닐까? 의료진이 생략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김다리 님은 혈관에 문제가 있어 발가락 끝이 썩는 것처럼 보입니다. 혈관을 자세히 보기 위해선 혈관조영제를 사용한 CT를 찍어야 합니다. 조영제 부작용으로 CT 촬영 도중에 구토를 할 수도 있고, 음식물은 기도로 넘어가서 죽음까지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식이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김다리 님은 조영제를 사용한 혈관 중재 시술을 하실 가능성도 큽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금식하셔야 합니다."
금식은 의학 용어로 ‘NPO(발음 : 엔피오)’이다. 의학 용어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들이 많고 라틴어로 ‘nil per os’의 약자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무것도 안됨’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물도 당연히 안되고, 껌도, 사탕도 안 된다. 의사들끼리 하는 대화를 엿들을 때
“저 환자 NPO 되어 있어?”
“네, NPO 6시간 되어 있습니다.”
라고 들리면, '엔피오란 금식이라는 것이구나'라고 알면 된다.
병원에서 금식이 필요한 이유는 너무나 많다. 소화기계에 탈이 나면 금식을 하는 경우가 많고, 검사를 위해서도 금식을 한다. 검사는 간단한 POCT 혈당 검사에서부터 혈관이 막혔는지 보는 혈관조영술 (angiography)까지 다양하다. 마취가 필요한 경우도 금식은 필수이다.
여기서는 흡인(aspiration)이라는 현상의 측면에서 금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흡인은 타액, 액체, 음식물 등이 호흡기계로 유입되는 현상을 뜻한다.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때 '잘못 넘어가' 캑캑 대며 기침을 한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보통 '사레들린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흡인의 결과이다. 우리 몸은 신비롭게도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방어 작용으로 기도 보호 반사(airway protective reflexes)가 있다. 기침 반사가 대표적이다. 기침을 해서 기도로 넘어간 음식을 즉각 뱉어내게끔 해주는 것이다.
조영제를 사용하는 CT, MRI 검사 그리고 시술들은 조영제의 영향 때문에 금식을 권한다. 환자들이 간혹 'CT를 찍기 때문에 금식한다' 'MRI를 찍기 때문에 금식한다'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조영제 때문에 금식한다'가 맞다. 환자는 '조영제를 사용한'을 생략하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조영제는 혈관 조영제와 경구 조영제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혈관 조영제의 사용이 더 많다. 혈관을 통해 들어가는 조영제의 역할은 흑백 영상에서 혈관을 하얀색으로 잘 보이게 해줌으로써 조직들을 구별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조영제가 들어가면 사람에 따라 메스꺼움(울렁거림, nausea)을 느끼고 구토를 하기도 한다. 아주 심하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경련(발작, seizure)을 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 경련, 정신을 잃는 상황 역시 흡인의 위험성이 높이는 대표적인 상황이다. 또, 누워서 구토하는 경우 흡인되기가 매우 쉽다. CT, MRI, 혈관 시술 모두 환자가 누워서 하는 검사이다. 만약 금식을 하지 않고 고작 CT를 찍다가 흡인되어 기도가 막혀서 죽는다면 이거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고 더 나아가 나를 태워버리는 격 아니겠는가.
조영제를 사용하는 시술들은 '조영술'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 시술들이다. '조영'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비치는 그림자, 사진이나 그림 따위에 나타낸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이다. 실시간으로 x-ray를 보면서 시술을 하는 건데, 대표적인 것으로 심장혈관 조영술이 있다. 심장혈관뿐만 아니라 주요 혈관들을 보고, 중재 시술 (intervention)하는 기술이 점점 발달하여 많은 경우 혈관 수술 대신 시술로 대체되고 있다. 하지만 혈관은 x-ray에서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시술을 하나? 그래서 바로 조영제를 쓴다. x-ray에 보이게끔 혈관을 염색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쓰이는 조영제 역시 마찬가지로 구토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수술 역시 흡인의 위험이 있어 NPO를 하고 있다. "자정 이후로 금식" 은 수술 환자들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오더이다. 전신 마취뿐만 아니라 부분 마취도 흡인은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마취제나 진정제가 기도 보호 반사를 감소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에서 고체형 최소 6시간, 액체형은 최소 2시간 동안 섭취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만 명당 1.4 명 ~ 11명 정도로 마취 중 흡인이 일어난다고 보고되어 있다.
NPO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응급 수술의 경우 흡인은 더욱더 흔하다. 또 수술 후에는 메스꺼움이 몇 시간 정도 더 지속할 수 있음으로 수술 후 NPO를 더 진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흡인의 위험이 높은 환자군(임산부, 비만, 노인, 위장 장애 등)에서는 엄격한 금식 시간 준수가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들의 경우 어느 정도의 음식물 섭취가 수술에 대한 스트레스를 경감시켜서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앞으로 관련 연구가 더 쌓이면 수술과 관련한 금식 시간은 줄어들거나 경우에 따라선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영상 검사나 중재 시술의 발달로 신속성, 정확도가 매우 높아져서 이러한 검사들에 진단과 치료의 의존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말인즉슨, 금식이 필요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는 ‘진료의 편의를 위해’ 일단 금식 처방(오더 order)을 내린다. 이 환자에게 어떤 검사와 시술, 수술이 (추가로)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금식을 하는 것이 응급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검사와 치료 시간을 연장(delay) 시키지 않고 즉각적으로 처치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묻따 금식 오더를 낸다. 금식이 왜 되어 있지 않았냐는 교수의 고함은 병원에서 흔한 레퍼토리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금식이 필요하지 않았을 환자들도 괴롭게 금식을 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래서 의사의 처방이 ‘진료의 편의를 위해’라는 점을 인정하고, 환자에게 이로운 오더가 아님을 솔직하게 밝힌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 구조상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 개개인의 NPO 여부를 정확하고 적절하게 챙겨주기는 쉽지 않다. 환자는 너무 많고, 의료진은 너무 적다. 진료의 편의를 위해 만연하는 금식 처방이 줄어들어야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 과 전문의들이 한 명의 환자만 볼 수 있고, 천문학적 액수의 의료비를 내어 환자 중심 진료를 하는 클리블랜드 클리닉 같은 곳에서 가능하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제도 아래의 대형병원 응급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의료진의 수가 적어서 외에 다른 이유들도 많지만 이는 다른 글에서 차차 설명해 볼 예정이다.
해부학적으로 식도와 기도는 목에서 연결되어 있고, 후두덮개(후두개, epiglottis)라는 구조물이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연결된 두 공간을 이어 주기도 하고 끊어주기도 한다.
음식을 먹으면 입 - 식도 - 위 - 소장 - 대장 - 항문을 거쳐 배출된다. 식도를 지나서 음식물은 위에 도달하는데 위는 저장 공간이다. 음식물이 여기에 머물다가 소화 능력이 되는 한에서 조금씩 조금씩 소장으로 내려보낸다. 즉, 음식은 위에 남아 있기 쉽고 이 음식물들은 식도를 거슬러 올라가서 후두덮개라는 장벽을 지나 기도로 넘어가서 넘어가기 쉽다. 이때 서 있다면 중력의 영향으로 위에서 식도를 거슬러 올라가기 쉽지 않지만 누워 있으면 쉽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흡인의 위험성이 더 높아진다. 그래서 사지 마비 등의 이유로 누워서 생활하는 환자들이 흡인성 폐렴에 걸리기 쉽다.
임상에서 흡인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흡인은 일단 생기면 굉장히,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료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엄청나게 큰 고깃덩어리가 흡인되어 큰 기도를 막았는데, 처치하지 않으면 3분 내로 죽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임리히 요법이라는 응급 처치 방법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기도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만약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작은 밥풀이라서 기관-기관지-세기관지-폐포까지 내려간다면? 폐포는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확산으로 이동시키는 굉장히 얇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혈관과 매우 가까이 닿아있다. 소화기관처럼 빈(hollow) 관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밥풀을 위한 공간은 없다. 밥풀은 그곳에 머물면서 산소 교환을 막고, 누군가가 와서 치워주기를 기다린다. 대식세포라는 면역세포가 있지만 얘는 박테리아와 같은 아주 작은 물질만 없앨 수 있지 밥풀처럼 큰 것을 치우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폐에 틀어박힌 밥풀은 치워지지 않고, 유기물이기 때문에 썩기 시작한다. 이는 곧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폐장렴(pneumonitis) , 더 진행하면 세균들이 번식하여 폐렴(pneumonia)이 된다.
흡인성 폐렴(aspiration pneumonia)은 삼키는 데 사용되는 근육과 근육을 조절하는 신경에 문제가 생겨 구역 반사, 삼킴 반사, 기침 반사를 비롯한 기도 보호 반사가 손상된 환자들, 누워서 생활하는 환자들의 대표적인 사망 원인이다.
흡인이 일어나면 죽을 수 있다. 위험한 흡인을 예방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간단하게 금식하는 것으로 예방할 수 있다! 그래서 병원은 지금 당장의 목마름은 참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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