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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좀 하지, 왜 피는 여러 번 뽑을까?

일부러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by 정여해

44세 남자 이친기 씨는 중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위해 흡연을 시작하였다. 연애하고, 결혼을 하면서 몇 번의 금연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여 아직도 흡연 중이다. 올해는 진급하여 회사에서 굵직한 프로젝트도 맡게 되었다. 그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아 하루 반 갑에서 한 갑으로 늘어나 담배 사는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고 있다. 그런데 4개월 전부터 기침이 시작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기침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데 요 며칠 사이에 기침이 점점 더 느는 느낌이다. 코도 막혀있고, 콧물도 줄줄 나왔다. 오늘은 출근이 늦어서 지하철역에서부터 뛰었는데, 그러고 나서 숨이 차서 할 수 없이 반차를 내고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 침대를 배정받자마자 간호사가 와서 피를 잔뜩 뽑아갔다. 조금 이따가 의사가 와서 또 피를 뽑는다고 한다.

"방금 피 뽑았는데요?"

"이건 산소 수치를 보기 위해서 뽑는 거예요. 다른 채혈입니다."

손목에 들어가는 게 엄청나게 아팠다. 그리고 코에 산소가 나오는 산소 줄을 깨워주었다. 숨찬 게 조금 나아지는 듯싶었다. 그런데 또 손목에서 채혈한다고 왔다.

"도대체 검사 결과를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피만 이렇게 자꾸 뽑아갑니까?"



병원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짜증 섞인 말투의 “또 뽑아요? 왜 또 뽑아요?" "밥도 못 먹는데 피 뽑혀서 죽겄네." 채혈은 간호사들의 업무일 뿐만 아니라 인턴의 업무에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환자가 오자마자 수액 라인을 잡으면서 채혈도 한다. 그래서 보통 간호사가 채혈한 다음에 인턴이 채혈하러 가게 된다. 그래서 간호사들보다 인턴 의사가 더 많이 듣는 질문일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피를 한 번에 뽑아서 한꺼번에 검사를 나가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여러 번 뽑는 것일까?



피를 여러 번 뽑는 이유


첫째, 찌르는 혈관의 종류가 다르다. 간호사가 수액 라인을 잡을 때 겉으로 튀어나와 있는 통통한 파란색의 혈관을 공략한다. 이는 정맥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원에서 의사가 담당하는 동맥혈 채혈은 정맥보다 산소를 많이 담고 있는 동맥이다. 중요한 혈관이라 정맥 보다 깊은 곳에 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고 손가락 촉감으로 한의사들이 잡는 '맥'을 찾은 후에 보이지 않는 혈관을 감촉을 이용하여 찌른다. 보지 않고 찌르기 때문에 한 번에 성공하기 쉽지 않다. 또, 바늘이 깊게 들어가서 채혈 시 통증이 심하다. 그래서 동맥혈 채혈은 환자들이 싫어하나 동맥혈에서만 볼 수 있는 환기 상태, 가스 교환, 산소화 상태, 산염기 상태 등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검사이다.


둘째, 원칙적으로 여러 번 뽑아야 하는 채혈도 있다. 발열이 감염에 의한 것이 의심되는 환자에서 발열 후 24시간 이내에 피를 뽑는 혈액배양 채혈이 그것이다. 피를 뽑아서 세균이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 놓은 배양병에 혈액을 넣고, 최소 3일에서 1주일까지 키워서 세균이 있는지 확인하는 검사이다. 이렇게 얻은 세균이 어떤 항생제에 죽고, 어떤 항생제에는 내성이 있는지 '항생제 감수성 검사'까지 할 수 있어서 감염 환자에서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채혈하는 과정에 있다. 피부에는 수많은 종류의 세균이 서식한다. 우리 면역계에서 방어를 담당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착한 세균들이다. 피를 뽑을 때 바늘은 피부를 거쳐서 혈관에 도달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피부에 있는 세균을 묻혀 나올 수도 있다. 이렇게 기른 세균은 실제로 환자의 몸에서 병을 일으킨 세균이 아니라 채혈하는 과정에서 '오염'으로 얻어진 치료에 쓸모없는 정보이다. 그래서 혈액배양 채혈은 같은 위치에서 시간 간격을 두고 2번 이상 채혈하던지, 아니면 동일한 시간에 다른 부위 2곳 이상 채혈해야 한다. 심각한 균혈증이 의심되거나 곰팡이에 의한 균혈증이 의심되는 경우 48시간, 96시간 후에 또 혈액배양 채혈을 할 수도 있다.


셋째,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항목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투약 시간과 관계있는 약물 농도 모니터링, 그리고 일중 변동이 있는 호르몬을 볼 때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수치를 봐야 하므로 시간 간격을 두고 채혈 해야 한다. 또, 앞서 말한 동맥혈 검사를 통해 볼 수 있는 혈중 산소 농도, 혈중 이산화탄소 농도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항목이므로 여러 번 검사할 수 있다. 동맥혈 검사를 여러 번 받아야 하는 것 역시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고통스러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대체로 호흡기계에 문제가 있어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거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진 사람들의 경우 동맥혈 검사를 자주 하게 되는데, 이는 환자에게 적당한 산소를 공급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산소는 과다하게 들어가도 산화 작용을 일으켜 도리어 몸에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진료 흐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를 여러 번 뽑을 수도 있어요.


대형 병원에서 담당과가 바뀌면 채혈이 추가될 수 있다. 응급실로 온 환자의 경우 응급의학과 의사가 검사와 처치를 끝내고 이 환자를 담당할 과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일반외과라고 하자. 그럼 이제 환자의 담당의는 응급의학과 의사에서 일반외과 의사로 바뀐다. 외과는 외과의 입장에서 봐야 할 검사들이 있다. 수술을 위한 검사 항목들 말이다. 각 과에서 보고자 하는 항목들이 있기에 당연히 채혈이 추가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을 응급의학과 의사의 지식이 모자라서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모든 과는 각각 자신의 역할이 있다. 응급실에서는 급한 응급 처치를 끝내고 환자에게 가장 맞는 과를 정해주는 것이 그들의 역할인 것이다. 같은 과 내에서도 전공한 것 외에 다른 분야는 낯설 정도로 의료의 고도의 전문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전과는 매우 흔한 일이고, 당연히 피검사는 추가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환자들은 여러 과에 걸친 다양한 의학적 문제들을 가지고 병원에 온다. 대형 병원에서는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과에서의 문제가 해결되면 두 번째 우선순위였던 과로 전과되는 것이 전문화 그리고 분업화가 진행된 대한민국 대형 병원의 진료 흐름이다. 한 명의 환자에 여러 과 의사가 배정되어 환자 중심 진료를 하는 미국의 유명 병원과 우리나라 진료 환경과는 차이가 있다. 환자의 불편함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한 번의 '찌름'만 할 수 있게 되게 까지는 의료 시스템 상에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가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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