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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Jun 16. 2021

해녀학교와 곽지, 한담을 담고 있는 올레 15-B 코스

고요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길 올레

# 13 km

# 한림항 비양도행 도선 대합실 ~ 고내포구

# 상징 : 비양도

# 21년 5월 5일 9시 10분 ~ 14시 (4시간 50분) 


나의 올레길 바이블인 「 제주올레 가이드북 」에 따르면 소요시간은 5~6시간이며 난이도는 중에 속한다. 


https://www.jejuolle.org/trail/kor/olle_trail/default.asp?search_idx=21



새벽까지 놀다가 오전 7시에 일어나서 친구들을 공항에 데려다주고 도로 잘까 올레길를 갈까 고민하다 집을 나섰다. 올레길의 아름다움이 수면욕을 이겼다. 대단한 올레다. 한수풀 해녀학교 OT 이후 주중이다. 앞으로 내가 들어갈 해녀학교 앞바다를 잘 알고 싶어서 해녀학교가 속해있는 올레 15코스를 걷기로 결정했다. 


비양도를 이어주는 15코스의 시작 : 한림항


15 코스는 한림항에서 시작한다. 넓은 한림항 중에서도 비양도를 가는 배를 타는 곳에 바로 15코스 시작 지점이 있다. 도항선 대합실 앞에서 멀리, 하지만 꽤나 가까이에 비양도가 보인다. 제주시에 머무는 동안 비양도도 구경 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9시 10분에 스탬프를 찍고 출발했다. 너무나 맑은 날씨에 시원한 바닷바람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행복하다. 


항구는 뭔가 이상야릇한 느낌을 준다. 육지의 항구는 비릿한 바다 내음이 나서 그렇다고 치지만 제주의 항구는 그런 냄새도 나지 않는데도 특유의 느낌을 주는 것을 보면 항구 자체에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거칠어 보이지만 그 배를 타는 사람들보다는 안 터프할 것 같은 조막조막한 어선들, 어떤 간절함이라던가, 무속적인 함의가 있을 것 같은 어선 이름들,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배에 필요한 도구들, 그리고 그런 배들이 조용하게 바다 위에 주차되어 있는 풍경들이 좋다. 올레길을 걸을 때도 포구를 지날 때 따뜻하고 안전한 느낌이 든다. 그만큼 자연은 예측하기 어렵고 두려운 곳이라는 경각심이 나약한 인간의 DNA에 새겨져 있나보다. 


한림항은 크다.



한수리 마을 바닷길


한림 해안로를 따라 한수리 바닷가를 걸었다. 나무 솟대가 파란 하늘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죽도연대의 옛터를 표시하는 표지석이 있다. 이 지역은 대나무가 많아서 대섬이라는 옛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비양도에도 대나무가 많은데, 이 부근이 대나무가 많은 지역이었나 보다. 한수리 마을엔 죽도 연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죽도연대는 명월진에 속하는 연대로 바다를 지키던 곳이다. 동쪽으로 귀덕리의 우지연대와 서쪽으로 한림리의 마두연대와 교신을 주고받았다. 이후 마두연대가 폐쇄되면서 더 서쪽의 금능 배령연대와 교신하였다. 대섬에 있던 대성당에는 영등제를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그 어떤 물감보다 아름다운 제주 하늘



귀여운 조물케 수원리 마을길


꺾어서 수원리 마을길로 이어진다. 수원리의 옛 이름은 ‘조물케’이다. 제주어는 뜻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자어로 잠수포인 조물케는 물이 잠기는 땅이란 뜻이다. 마을이 생긴 이래 식수로 썼던 큰물, 생이물, 돈지물, 개물, 솔패기물, 엉물, 쇠물, 중이물, 모시물, 가좌 외의두 개의 엉물 등 11개의 샘이 만조 때 전부 바닷물에 잠기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마을 이름 탓에 해녀들의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고 하여 1882년 마을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 이름을 수원리로 바꾸었다. 수원리로 들어서자마자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인 듯한 멋진 나무가 나타났다. 


수원리 그늘을 만들어주는 멋진 나무


조금 더 들어가면 2019년에 수원 초등학생들이 구룡석 용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아주 자그마한 터가 나온다. '구룡 소공원'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다. 구룡석 설화는 용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여의주를 옥황상제가 아무도 차지하지 못하게 돌로 만들어 석수굴 앞바다에 떨어트려 버렸다는 내용이다. 수원초등학교 학생들은 대단한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막 싸웠다고 보기엔 귀여운 용들


제주에는 크고 작은 설화들이 많이 남아있다. 설화를 접했을 때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에 있는 <제주설화> 탭으로 들어가면 그 내용을 볼 수 있다. 이 곳에서 구룡석 전설을 찾아보면


“수원리 해안가 속칭 남수왓 동쪽 근처에 용구못(龍九池)이라는 큰 못이 있었고 이 못에는 아홉 마리 용의 새끼들이 살았다. 이들이 승천하려면 꼭 여의주를 물어야되는데 여의주는 하나밖에 없는 게 상식이다. 이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하여 아홉 새끼용은 매일을 으르렁거리며 다투게 되었다. 아홉 마리 용의 새끼들이 매일을 다투다 보니 하늘과 땅이 혼탁하여 어느 때는 비가 계속 내리고 어느 때는 거센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삶이 괴롭다. 견디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청명한 길일을 택하여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용의 새끼들의 싸움을 멈추게 해달라고 빌었다. 마을 사람들의 정성을 알아들은 옥황상제께서 용들이 서로가 차지하려고 하는 여의주를 큰 돌로 변하게 하여 아무도 여의주를 차지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여의주를 차지하지 못하나 아홉 용의 새끼들은 이무기가 되어 승천하지 못하였으며 아홉 용들이 차지하려던 여의주는 돌(九龍石)이 되어 석수굴앞 바다에 떨어져 버렸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렇게 자세하게 나온다. 이 외에도 지역별로 모아놔서 올레길을 따라 그 지역에 맞는 설화를 함께 읽으며 걷는 것도 재밌겠다 싶다. 

https://www.jeju.go.kr/culture/myth/otherMyth.htm;jsessionid=eP73pM931ZGzvAkzgABZjE6fCrEaxL6c1vilsmH7tznf7YF4JKtuwYE8KcUj4zsU.was_2_servlet_www3?category=27&page=3&act=view&seq=28440


수원리 복지회관에서 A, B 코스가 나뉘는데 바다를 사랑하는 나는 당연히 B 코스이다. 고민도 없이 왼쪽으로 꺾었는데, 올레꾼 두 명이 어느 길로 갈지 고민하며 서있었다. 다음에 15-A 코스도 걸어보리라. 들꽃이 핀 밭길을 걸으면 흥겨워진다. 수원리는 농지 정리가 잘 되어 있고 넓은 밭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라신동 해안을 따라 나열된 정자


곧 바다가 다시 나타난다. 라신동을 지나 바다를 끼고 걸었다. 라신동의 이름은 지세가 비단같이 곱고 아름다우며 해안가의 절경이 뛰어나 알차게 생활하는 마을이란 뜻이다. 행정구역 상으론 귀덕 2리에 속한다. 처음 나온 정자에 먼저 출발한 듯한 올레꾼 두 명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나도 쉬고 싶었는데, 코로나도 있고 그리고 혼자 걷는 올레가 좋기 때문에 굳이 같이 있지 말자는 생각에 일단은 움직였다. 곧 정자가 또 나타났다. 정자에서 쉬고 가는데, 또 정자가 나온다. 이렇게 정자는 올레길을 따라 계속 나타났다. 정자에서 보는 경치가 모두 다르겠지만, 하나 같이 끝내줄 것 같다. 



제주 바당을 향해 활짝 열린 해운사


이후 해운사가 나온다. 일주문이나 사천왕문 같은 부처의 세계가 시작됨을 알리는 문 같은 것은 없다. 그냥 멋진 제주 서쪽 바다를 향해 활짝 열려있다. 그리고 4.3 피해 사찰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서있다. 1948년 11월 경, 4.3 사건이 지속될 때 법당을 포함하여 절 전체가 타버렸다고 한다. 1968년에 다시 지은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절 앞에는 여러 종류의 조각이 있는데, 어우러진다기보다는 과한 모습이었지만, 나름의 아기자기함이 있다. 예전에 제주에 당과 절이 매우 많았는데, 조선 말기 불교의 폐단이 짙어져 중앙 정부의 정책의 일환으로 많이 폐쇄하고 파괴시켰다. 만약 오래된 제주만의 특색을 가진 절들이 많이 남아있었다면 제주는 또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기 해녀들을 키워내는 : 한수풀 해녀학교



곧이어 4km 지점인 귀덕리의 한수풀 해녀학교가 나왔다. 내가 앞으로 4개월 동안 주구장창 갈 곳이다. 잠수 체험을 준비하는 젊은 남녀 4명이 있었다. 저들이 들어가는 바다가 내가 들어갈 한수풀 해녀학교 운동장이다. 해녀 체험장에서 알바를 하는 해녀학교 학생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은 서먹서먹 부끄러워서 아는 체하러 가지는 못하겠다. OT 때부터, 아니 그전부터 너무 기대하고 있는 해녀학교라서 이렇게 보기만 해도 두근두근하다. 내가 이 곳에서 학교를 다닐 예정이라니 꿈만 같다. 해녀학교를 뒤로 하고 계속 걷다가 브런치 카페가 있어 밥을 먹었다. 흑돼지 카츠 샌드를 먹었는데, 조금 싱거웠으나 너무 배고파서 잘 먹었다. 음식도 양이 많고, 커피도 한 가득 주는 푸짐한 카페이다.



제주에 봄을 가져오는 영등신 : 영등할망 신화공원



계속 걸으면 귀덕 1리가 나오고, 이곳에도 투명카약을 타는 곳이 있다. 이 곳 귀덕1리 포구는 제주포구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안캐, 중캐, 밖캐로 이루어진 3판 구조를 잘 보여준다. 이 제주 전통 포구는 2017년에 새로 복원하였다. 이어 영등할망 신화공원이 나온다. 할머니와 며느리도 있다. 제주를 돌아다니다 보면 ‘영등’이란 말을 말이 들을 수 있다. 영등신, 영등할망, 영등굿, 영등제 등등. 


https://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code=cp0521&index_id=cp05211345&content_id=cp052100390001&search_left_menu=2




옛날 옛날, 제주바다에는 영등할망이라는 신이 수평선 저 너머에 살고 있었다. 태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 제주 한수리 마을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거친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어부들이 탄 배가 사나운 파도에 휩쓸려 그만 무서운 외눈박이 거인들이 사는 나라로 가게 되었다. 외눈박이는 이마 한가운데에 큼지막한 눈이 하나 달려있고 몸체가 거대한 보기에도 아주 무서운 괴물이었다. 이를 보고 있던 착한 영등할망은 이 어부들을 구해주려고 어부들이 탄 배를 몰래 숨겨주었다. 외눈박이들은 눈에 불을 켜고 그 어부들을 찾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배가 보였는데, 어디로 간거지 어이, 영등할망! 방금 여기로 오던 배 한 척 못 보았소 오늘 오랜만에 포식하나 했더니. 에이 아깝다.” 

“무슨 배가 왔다고 그러나... 나는 개미 한 마리도 못 보았네. 정말이야.” 


영등할망의 거짓말에 외눈박이들은 어부들을 놓쳤다고 투덜대면서 돌아갔다. 이윽고 파도가 잔잔해지자 영등할망은 어부들을 풀어주면서 신신당부를 했다. 

“자, 이제 외눈박이들이 갔으니, 어서 마을로 돌아들 가시게. 그리고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가남보살 가남보살’ 이렇게 외우고들 가시게. 잊지 말게나. ‘가남보살 가남보살’ 알겠나” 

“예! 할망 구해줘서 고맙수다. 가남보살 가남보살.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어부들은 영등할망과 약속을 하고 고향마을을 향해 바다로 나갔다. 어부들은 가는 내내 ‘가남보살 가남보살’을 외웠다. 그러던 중 드디어 저 멀리 반가운 고향마을이 보이자 어부들은 너무 기쁜 마음에 그만, 가남보살을 외우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쳐 어부들이 탄 배가 다시 외눈박이들이 사는 곳까지 떠내려가고 말았다. 다행히도 영등할망이 아직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어 되돌아온 어부들을 보게 되었다. 어부들은 다시 영등할망에게 사정을 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영등할망!” 

몸집은 거인이지만 마음이 착하고 여린 영등할망은 다시 이 어부들을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그러나 외눈박이 거인들은 영등할망이 어부들을 살려주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화를 내며 영등할망을 죽여 버렸다


이때부터 제주 백성들은 바다의 재앙을 막아준 영등할망의 은혜를 생각하며 음력 2월 초하루부터 15일까지 영등굿을 지내고 있다. 어부들은 마음 착한 영등할망에게 감사하며 고기잡이 어부들이나 해녀들은 바다에서 안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자, 풍어를 가져오는 신으로 영등굿을 올린다. 이 영등굿은 국가무형문화재 제 7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주 칠머리당굿이라는 이름으로 제주시 사라봉에서 재현되고 있다. 제주에선 영등굿을 하는 동안에는 결혼식은 일절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맘땐 바닷가의 소라고동 껍질 안이 텅텅 비어있다고 한다. 왜 그러냐면, 바로 영등할망이 모두 다 까먹어서 그런다는 재미난 이야기도 전해져오고 있다.



영등할망은 들어봤는데, 영등하르방도 있는지, 이들에게 아들과 며느리가 있는지는 몰랐다. 이들의 설화로 이야기로 지으면 재미있겠다. 하고 싶은 일이 또 생긴 것 같다. 


아름다운 귀덕 바다

검은 모래의 금성포구


이어 금성천이 나온다. 이 하천이 귀덕 앞바다와 합쳐지는 부분에서 비단다리가 있다. 검정 모래가 하천에서부터 이어져 쌓여 있다. 금성포구는 마한시대 이전부터 금성천 하구를 통하여 육지와 중국을 왕래하는 선박이 드나들었고 고려시대에는 병영이 설치되었던 기록이 있다니 큰 포구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현재는 금성천에서부터 퇴적된 암석과 모래들이 포구를 막아 포구로서의 기능은 못하고 있다. 


금성천

하얀 모래의 곽지해수욕장


중간 스탬프를 찍고 용천수를 구경하다 걷다 보면 7.3km 지점인 곽지 해수욕장이 나온다. 금성천에선 까만 모래였는데, 곽지 해수욕장엔 빛나는 하얀 모래이다. 


올레길 표식이 잘 어울리는 곽지 해수욕장 입구


휴일이라 해수욕장에 전체적으로 사람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어린이 날이라 어른보다 어린이가 훨~씬 많다. 제주 해수욕장엔 바람이 많이 불어 그늘막 설치가 어려울 것이라고 아빠가 얘기했는데, 웬걸? 너무나 안정적으로 그늘막들이 잘 있다. 이 날 바람이 특히 안 부는 날이긴 했다. 바람이 많이 불 때는 어떤지 궁금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 곽지 해수욕장

핫하다 핫해 : 한담 해안산책로


이후 독특한 암석들이 오른쪽엔 절벽으로 왼쪽엔 파도에 부딪히며 이어지는 한담 해안산책로이다. 제주의 쪽빛 바다를 아주 제대로 느낄 수 있으며, 해안가에 모여있는 현무암석들은 그 모양새가 모두 달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너무 아름다워 인기가 많은 한담 산책로


오른쪽으로는 엄청난 절벽이 있었는데, 마치 용암이 내 키를 훌쩍 넘는 큰 파도가 되어서 금방이라도 나를 덮쳐서 녹여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용암류가 흐르다 굳은 자국이 잘 보인다. 

바다 쪽도 멋있지만 반대 쪽도 멋있는 한담 산책로


내가 가는 방향보다 반대 방향으로 사람들이 더 많이 가고 있었다. 아마도 하이랜드 쪽에서 출발한 사람들인 것이다. 




표해록(漂海錄)의 저자 장한철


계속 걷다 보면 장한철 산책로라는 비석이 나오면서 장한철 생가도 있다. 표해록이나 장한철이라는 이름을 여기서 처음 들었는데,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자세히 만날 수 있었다. 표해록이란 이름을 가진 책은 4종류 이다. 제목이 같지만 저자는 모두 다르다. 


1770년(영조 46년) 12월 25일 장한철은 배를 타고 제주를 떠나 육지로 향하던 중 상륙 직전에 태풍을 만나 표류하게 된다. 도착한 곳은 류큐열도 현재의 오키나와. 이 곳에 도착한 지 5일 만에 안남 즉, 베트남의 한 상선에 의해 발견되어 무사히 구조된다. 그러나 태풍이 또 들이닥쳐 많은 사람이 죽고 몇 명만 살아났는데 장한철이 그중 한 명이다. 이 이야기를 글로 적어 남긴 것이 바로 표해록이다. 이곳 한담에 장한철 산책로가 있는 이유는 장한철이 이 곳 출신이기 때문이다. 장한철 생가는 추정되어 제주시에서 복원하였다. 들어갈 수 없는지 문이 닫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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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담 출신 장한철

해신부부를 모시는 해신당


번잡한 한담 카페 거리를 빠르게 지나 마을길로 살짝 들어갔다 나오면 애월리의 무사한 어업을 위해 신을 모시는 해신당이 나온다. 해신당이라는 이름 외에 개당, 돈짓당이라고 불리는 당도 있는데 비슷하게 어업과 그 종사자들을 수호하는 신을 모시는 곳이다. 해신과 영등신의 관계가 궁금하다. 해신은 개하르방, 개할망, 돈지하르방님, 돈지할머님과 같이 부부신이다. 아마 제주 해안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남자는 어부이고 여자는 해녀로 남녀 성별 모두 어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지켜주는 신도 남녀 성별 모두 있는 것 같다. 굿을 할 때는 이러한 해신 부부뿐만 아니라 영등신도 청하여 함께 굿을 한다 하니 비슷한 뜻을 가진 신이지만 같은 신은 아닌 듯하다.


정갈한 해신당



세종 때 설치된 3성 9진 중 하나 : 애월진성


애월에 살며 가장 많이 갔던 애월 어촌계 회센터

포장해가면 60프로 넘게 막 할인해 주는 애월 어촌계 회센터도 지나고 마을로 들어가면 애월진성이 보인다. 성벽이 아주 조금 남아있다. 1581년(선조 14년)에 김태정 제주 목사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한다. 제주의 성들은 모두 다 왜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이 놈의 왜구들. 얼마나 많이 쳐들어 온 걸까. 원래 애월진성은 고려 원종 때 삼별초가 들어와서 관군을 방어하기 위한 나무성이었다. 이를 조선 중기 김태정 목사가 애월 포구로 진을 옮기고 돌로 새로 성을 쌓았다. 


애월진성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아주 짧다.



11.2km 지점 애월 초등학교 뒷길 


애월 초등학교가 나왔다. 골목이 조금 으슥했는데,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서 조금 쫄았다. 뒤돌아보니 수원리에서 A, B 코스를 고민하던 올레꾼 두 명이었다. 내가 먼저 출발했지만 수많은 올레꾼들이 나를 추월한다. 누군가가 추월하는 것을 허용했던 게 얼마만일까. 그러면서 기분도 나쁘지 않은 건 또 얼마만일까. 혹시 처음은 아닐까? 


애월 초등학교


현대오일뱅크 물류센터가 거대하게 있다. 양 옆으로 초록초록한 길을 지나면 종점이 금방이다. 


15코스의 종점 : 고내포구


아담한 고내포구

고내포구에 닿아 15 코스를 끝냈다. 오후 2시 정각이다. 올레 여행자 센터에 들어가 16코스 와펜을 구입한다. 여성 올레꾼 두 분이 버스 정류장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것을 엿듣고 똑같이 따라가서 버스를 타고 다시 한림항으로 돌아갔다. 


올레 20코스를 처음 걷고 난 후에 두 번째로 걸어보는 올레길이었다. 방위도 다르고, 코스도 다르고, 함께 걷는 사람도 다르고, 날씨도 다르지만 그 모든 것과 무관하게 그리고 20코스와는 또 다른 차별점을 두면서도 똑같이 고요하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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