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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Jun 15. 2021

한라산 백록담 처음보다

등산 경험 4회의 성판악 탐방기

나의 등산 경력은 총 4회 


등산 경험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자연 시간인가 하여튼, 무슨 학교 숙제로 친구들과 금오산 정상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와중에 한 명은 못 가겠다며 폭포에서 멈추어 우리를 기다렸고, 우리는 정상에 갔다 내려왔다. 과연 그 친구가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그냥 일상복에 운동화를 신고, 물 한 통도 들고 올라가지 않았다. 놀이라고 생각했지, 등산이라는 거대 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산을 할 때 그다지 힘들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주 팔팔할 때니까. 내려올 때 우리가 웃겼던지 불쌍했던지 한 여성분께서 오이 몇 조각을 주셨던데, 그 오이가 엄청난 맛이었다!


그 이후로 등산을 한 적 없다가, 대학교 1학년 때 친구와 떠난 경주 여행에서 남산에 한 번 올랐다. 그리고 2021년 3월 인턴이 끝나자마자 경기도 수리산을 한 번 갔다 너무 힘들어 죽을 뻔했다. 심지어 몸에 근육이 다 빠진 상태여서 내려올 때 미끄덩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지난 4월 남한산 둘레길 등산을 해보았다. 내 인생에서 등산이란 총 4번뿐인 등린이가 아닌 등'신생아'나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남한 최고 높이인 한라산을 제주 살이에서 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일단, 최고 빌런부터 맞닥드려보자라는 거친 아이디어 이기도 했고, 오래 제주에 머물 때 가야지 1박 2일, 2박 3일 제주 여행에서는 아마 잘 안 가게 될 거라는 판단 하에서였다. 제주 살이가 결정되고 나서 장비충인 나는 코오롱 스포츠에서 등산 장비를 잔뜩 구입하였다. 투박해 보이는 등산화 하며, 막대기 주제에 18만 원이나 하는 등산 스틱 하며, 등산 조끼를 입고 수업하러 오시는 해부 교수님을 떠올리게 하는 등산복 하며 이 모든 것은 한라산을 위한 것이었다. 



성판악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으면 백록담은 이미 본 거나 마찬가지더라


21년 5월 30일 일요일 한라산 성판악 코스를 예약해놓았다. 한라산 등반 코스 주변 차량 통제를 위해 시작된 탐방예약제 때문에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는 탐방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남편과 함께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 주말로 예약을 해두었다. 하지만 남편이 주중에 맞은 코로나 백신으로 고열이 올라 비행기 탑승이 불가능해 제주에 오지 못해 혼자 길을 나섰다. 6시 30분에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주차장은 만차라 아래로 7km 내려가야 있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버스를 타고 올라오라고 한다. 그 주차장으로 가면서 고민했다. '이렇게 한라산을 갈 계획이 없었는데, 지금 주차장이 다 찼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거고, 그럼 줄 서서 올라가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건가? 역시 주중에 와야 여유로울까? 그래, 그럼 주중에 오기로 하자.' 주차장을 향하면서 바로 한라산을 포기했다. 한라산을 등반하기 위해 얼려놓고 가져온 많은 음료수와 도시락까지 있는데, 모두 취소! 


그렇게 성판악 주차장의 주차난을 보고 이틀 뒤 화요일로 탐방 재예약을 하고서 오전 4시에 일어나는 등 서둘렀다. 등반 시작 시간이 5시 이기 때문에 주차장에 5시에 도착하기로 했다. 설마 등산을 위해, 주차를 위해 일찍 와서 주차자리를 차지하지 않겠지 하는 약간의 걱정을 하면서 5시 5분! 주차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헐렁하다. 주차비 1,500원을 결제하고, 5시 15분 오르기 시작한다. 드디어 한라산을 가는군요! 



여성의 손길이 느껴지는 제주도 그리고 한라산


한라산은 금강산, 지리산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삼신산(三神山)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한라산! 수많은 역사 기록과 지도에 남아 있다. 이름은 운한(雲漢: 은하수, 또는 높은 하늘)을 당긴다(拏)로 해석되며 은하수를 붙잡을 정도로 높은 산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제주 곳곳에서 보이는 한라산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1,950m의 해발이라기엔 낮아 보였다. 돌산임에도 남성적인 기운을 내뿜는 설악산과 달리 한라산은 느긋하다. 부드럽게 펼쳐놓은 치마폭처럼 외유내강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여성의 품인 제주의 모습이 제주의 상징인 한라산까지 닿았다. 설문대할망이 제주 곳곳을 여성의 손길로 만지고 있음을 한라산에서도 느낄 수 있다. 



백록담의 지질학적 특성


아름다운 한라산은 1966년에 천연기념물 제182호로 지정되고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생물권 보전지역 2002년, 세계 자연유산 2007년, 세계 지질공원 2010년 지정되었다. 


한라산은 여러 차례의 분화로 만들어진 화산이다. 다양한 종류의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록담의 북쪽에서 서쪽~남서쪽이 조면암이다. 전망대가 있는 동쪽~남동쪽은 현무암질 조면안산암의 용암류이다. 그리고 조면암과 용암류 사이는 화산쇄설층이다. 


백록담 주변에 위치한 장구목오름, 윗세오름, 방애오름, 만세동산 등의 오름들은 백록담이 형성되기 이전에 있던 오름들이다. 이런 작은 화산들 사이로 백록담이 거대하게 튀어나와 솟은 것이다. 백록담이 이렇게 다른 오름들보다 높을 수 있었던 것은 높은 점성의 끈적끈적한 조면암이기 때문이다. 주르륵 흐르기보단 솟아오르기 좋은 암석이 바로 조면암이다. 이것이 바로 33,000년 전이다. 이후 17,000년 전 현무암질 조면안산암의 파호이호이 용암류가 분출해서 현재의 모습을 만들었다. 

(참고 : 「제주도 지질여행 2020 개정증보판」 p.194)


파호이호이 용암류로 보인다.
파호이호이 용암류로 보인다.



도대체 '성판악'은 무슨 뜻?


백록담을 볼 수 있는 한라산 코스는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뿐이다. 관음사 탐방로가 한라산의 북쪽이고, 성판악 코스는 한라산의 동쪽을 오른다. 관음사 코스는 헬게이트 오픈이라 그래서 등'신생아'는 성판악 코스를 먼저 올라보기로 선택하였다. 그런데 도대체 성판악이 무슨 뜻인지 한라산 국립공원 홈페이지나 검색을 통해서도 찾을 수가 없다. 오랜 검색을 통해 성판악의 뜻을 알기 위해선 성널오름을 검색해야 했음을 알게 된다. 즉, 성판악은 성널오름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널오름은 한라산 동쪽 사면에서 가장 큰 오름이다. 하지만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어쨌든 성판악 주차장에서 백록담으로 가는 길에 있는 주요 오름의 길을 따서 탐방로 이름을 붙인 듯하다. 드디어 성판악의 뜻을 알게 되어서 속이 시원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성널오름을 '성판악(城板岳)'으로 표기했는데, "석벽이 성널(城板)과 같아서 붙인 이름이다."라고 했다. 『탐라십경도』 의 「서귀진」에도 '성판악(城板岳)'이라 기재되어 있다. 오름의 모습을 마치 널빤지를 쌓아 올린 성처럼 묘사했다. 『탐라순력도』 의 「산장구마」 와 『탐라지도병서』, 『제주삼읍전도』 에는 '성판악(成板岳)', 『대동여지도』 와 『정의군읍지』의 「정의지도」에는 '성판악(城板岳)'으로 수록되어 있다. 

(참고 : https://ko.wikipedia.org/wiki/%EC%84%B1%EB%84%90%EC%98%A4%EB%A6%84 )

(성널오름 관련 기사 : http://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5932 )



성판악 탐방로 등산기


# 2021년 6월 1일 5시 15분 ~ 14시 40분 (8시간 25분)

# 올라가기 : 성판악 관리사무실 5시 15분 ~ 해발 1,000m 6시 ~  5.8km/9.6km 사라오름 입구 7시 ~ 해발 1,300m 7시 15분 ~ 7.3km/9.6km 진달래밭 대피소 7시 40분 ~ 해발 1,600m  8시 15분 ~ 해발 1,700m 8시 30분 ~ 백록담 전망대 9시 

# 내려오기 : 백록담 전망대 10시 ~ 진달래밭 대피소 11시 20분 ~ 해발 1,000m 13시 30분 ~ 성판악 관리사무실 14시 40분


성판악 탐방로는 9.6km이다. 올레길 한 코스가 대체로 15km~20km 인 것을 감안하면 10km도 안되네~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성판악 코스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등산 경험이 4회뿐인 사람한테도 그렇게 힘들지 않은 남한 최고 높이의 산이니 한라산이 얼마나 너그러운 산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한라산 탐방로 중에서 가장 길고, 공식적으로 편도 4시간 30분, 왕복 19.2km로 9시간이다. 


2021년 6월 1일 화요일 5시 15분 성판악 주차장, 성판악 관리사무실에서 시작한다. 차로 이미 해발 750m까지 올라오고 시작한다. 1,950m까지이니 약 1,200m 만 더 오르면 된다. 어둑어둑할 때 들어가서 잘 안 보일 정도로 굉장히 어두웠는데, 사진을 찍은 것을 보니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성판악 코스의 대부분은 숲으로 되어 있어 산림욕 하기에 최적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본격 광합성이 일어나기 전이라 새로 만들어진 산소는 아닐 텐데 라고 이과생은 생각한다. 



해발 1,000m 지점인 속밭 대피소를 6시에 통과하고 5.8km/9.6km 지점에 사라오름 입구를 7시에 통과했다. 왕복 40분 걸리는 사라오름으로 길은 600m를 더 오르는 것이고, 이 곳에 사라오름 전망대가 있다. 


사라오름은 한라산 동북사면에 있으며 오름 정상부에 둘레 약 250m의 분화구에 물이 고여 습원을 이룬 산정호수이다. 오름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름이다. 분화구 내에서 노루 떼들이 물 마시며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걸 보고 조금 고민했다. 사라오름을 보고 오는 길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으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하면서 말이다. 일단, 나는 너무 등산 초보이기 때문에 백록담까지 가는 길에 난이도 A의 어려운 길이 남아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오버하지 않기로 했다. 내려올 때 여유가 있음 들러보자 라고 생각했다. 다음에 또 와서 사라오름도 들러보면 되지! 



해발 1,300m를 7시 15분에 지나고 7.3km/9.6km 지점인 진달래밭 대피소에 7시 40분이 도착했다.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등산로는 평범하다. 아주 평탄하고 계속 숲길이 이어져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왜 성판악 탐방로보다 관음사 탐방로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매우 완만한 경사로 하나도 숨이 차지 않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으면서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별로 힘도 안 들고,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이렇게 멋진 곳에 와있다는 사실에 매우 신나 있었다. 


하지만 진달래밭 이후 동능 즉, 백록담이 보이는 전망대까지는 2.3km 더 가는데 여기는 심박수가 오르는 구간이다. 여기서부터는 본격 돌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1,600m를 8시 15분에 지나고 15분 뒤에 1,700m를 지났다. 올라갈수록 아래쪽이 살짝살짝 보이는데 짜릿하다. 위로 백록담으로 추측되는 봉우리가 보이는 것도 너무 좋다. 여기를 올라갈 때쯤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가 거의 등산로가 개방된 직후에 등산을 시작했기 때문에 대충 비슷하게 시작한 분들일 텐데 빠르시다! 내려오는 분들 덕분에 더 분발하게 된다.


목표를 올려다보는 풍경


아래를 내려다보면 귀여운 오름들이 봉긋봉긋


저 오름들을 하나하나 구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재밌을까! 나의 남은 생에 해보고 싶은 일이 지금 막 생겼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귀여운 섶섬, 문섬, 범섬이 있다. 제주를 위로는 1,950m 아래로는 -30m까지 보며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섶섬을 보며 깨닫는다. 


달이 떠 있다
서귀포와 섶섬, 문섬, 범섬을 내려다본다


드디어 백록담을 마주한 시간이 9시이다. 백록담의 물 색깔이 주유소에 고인 기름 같아 보인다. 백록담에 물이 잘 없다 그래서 그냥 빈 것을 상상했는데, 일단 있어서 반가웠다. 백록담 너머로 제주시가 보인다. 


정상에서 라면을 먹었다. 지난 일요일에 김밥을 사 왔다가 불발되어서 이번에도 혹시나 그럴까 봐 나중에 또 쓸 수 있게 컵라면을 가져왔는데, 먹을 수 있어 다행이다. 보온병에 뜨거운 물도 약 4시간 동안 지고 왔으니 너의 임무를 다하여라. 인증샷도 신나서 찍고, 10시에 하산을 시작하였다. 백록담을 지나 하산은 관음사 코스로도 가능하지만, 난 성판악 주차장에 주차를 성공! 했으므로 성판악으로 내려간다. 


느긋하게 내려오며 모든 대피소에서 다 누워서 휴식을 취하였다. 이제 5회 차 등산 경력이 된 등'신생아'는 5회 모두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힘들었다. 내려갈 때 사라오름 입구에서 1초 고민하고, 그냥 내려가기로 결정한다. 다음에 다시 오면 된다. 1,000m 지점을 1시 30분에 통과했다. 이때쯤부터 배가 너무 고팠다. 라면 먹으면 항상 부대끼고, 뱃속에 오래 남아 있는 느낌이 있는데, 한라산은 그런 라면을 초고속으로 소화시키고 다시 배고프게 만들었다. 너무 배고파서 막판엔 엄청 빨리 걸었다. 2시 40분에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8시간 25분의 여정으로 등'신생아'는 백록담을 보고 왔다. 


조선 말기 유학자로 제주에 1년 3개월의 유배 생활을 했던 면암 최익현이 한라산 등반 후에 남긴 기록이다.


이 산은 그 혜택이 백성과 나라에 미치고 있는 것이니, 지리산이나 금강산처럼 사람에게 관광이나 제공하는 산들과 비길 수 있겠는가. 오직 이 산은 유독 바다 가운데 있어 청고 하고 기온도 낮으므로, 뜻 세움이 곧고 근골이 건강한 자가 아니면 결코 오르지 못할 것이다. 


무엇을 신고 이 돌산을 올랐을까? 설마 가마 타고 오른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본인이 뜻이 곧고 건강하다고 자랑하고 있으니 나도 따라 머릿속으로 자랑해본다. 


날이 쨍한 날을 잡아 다른 한라산 탐방로도 모두 가보고, 사라오름을 포함한 성판악 등반도 할 예정이다. 다른 탐방로도 그렇게 멋있다는데! 기대되지만, 더 큰 만족을 위해선 너무 기대하지 않도록 하자. 


한라산 국립공원 성판악 탐방로 설명

https://www.jeju.go.kr/hallasan/info/info/realtime/course0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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