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길 올레
# 11.3 km
# 제주해녀박물관 ~ 종달바당
# 상징 : 별방진
# 2021년 5월 7일 10시 40분 ~ 17시 40분 (7시간)
나의 올레길 바이블인 「 제주올레 가이드북 」에 따르면 소요시간은 3~4시간이며 난이도는 하에 속한다.
https://www.jejuolle.org/trail/kor/olle_trail/default.asp?search_idx=28
제주 올레의 마지막인 21코스를 걷는다. 7시 50분에 나가야 하는데 밍기적 거리다가 8시 20분에 나왔다. 원래 같으면 올레 시작 시간이야 내 마음대로 정했을 것이지만, 해녀 박물관이 코로나 때문에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예약 시간을 맞춰야 한다. 코로나가 여러 모로 괴로움을 준다. 어젯밤에 찍어봤을 땐 60분 거리였는데 나온 시간이 출근 시간이라 그런데 1시간 20분으로 나온다. 9시에 예약에 9시 40분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래도 괜찮을까? 큰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해녀 박물관을 나 혼자 관람했기 때문이다. 나올 때쯤 가족 단위 관람객이 한 무리 있었을 뿐이다.
제주 해녀박물관 관람기를 따로 글을 썼다.
https://brunch.co.kr/@yeohae/79
해녀 박물관을 여유롭게 관람 후 뮤지엄 샵에서 뭔가를 살까 했는데, 해녀 캐릭터가 그다지 예쁘지 않은 느낌이라 아쉬웠다. 좀만 더 세련됐으면 나의 지갑을 마구 털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해녀 관련 문화 상품을 공모전을 통해서 모집하고, 개발하고자 하는 노력이 잘 보였다. 이 모든 것은 다 돈일텐데, '해녀 문화 보존'이라는 가치에 사람들이 '내가 낸 세금을' 얼마까지 허용해줄까? 지금 당장 먹고살기가 힘들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 있다, 그런 거 보존하는 데 드는 돈을 누구누구를 위한데 써야 한다 등등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역사라는 카테고리 이기 때문이다.
바로 21코스를 시작하기엔 1시간 조금 못되는 박물관 관람이 다리를 아프게 했다. 그래서 박물관 앞 카페에 앉아서 일단은 쉬기로 한다. 일찍 오픈해 준 카페 사장님께 감사했다. 10시 40분에 드디어 21코스를 시작했다.
해녀 박물관을 등지고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공원을 가로지르면서 시작한다.
옛 봉화대가 있었다는 연대동산이다. 아주 나지막한 동산이다. 여기에 있던 제주 북동쪽 바당을 밝히던 연대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숲길은 금방 바다를 내어준다.
연대동산을 지나 축구장 옆을 지나간다. 축구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사진을 보내며 오션뷰 축구장이라고 소개한다. 곧 면수동 마을길이 나온다. 낯물 마을에 있는 밭길이라는 뜻의 낯물밭길이 나오는데, 낯물 마을은 면수동의 옛 이름이다. 21코스는 밭길이 1/3을 차지한다.
오늘의 올레 파트너는 올레길을 많이 다녀본 듯한 여성분 한 분이다. 클린 올레 봉투를 들고, 집게까지 챙겨 나온 분이시다. 나도 클린올레 캠페인을 하고 싶었는데, 내가 경치에 취해 사진을 많이 찍고, 또 이렇게 걸어도 바이블에 나와 있는 시간을 2배 가까이 초과하기 때문에 쓰레기를 주으면서 걷기 겁난다. 이번 올레길 완주를 끝내고, 올레길 완주 두 번째에는 클린 올레 완주로 할 것이다. 해녀학교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올레길에서 제주의 자연을 마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21코스 올레 메이트는 나와 거의 동시에 출발했지만, 쓰레기 때문인지 뒤쳐지신다. 그러다가 밍기적 대는 나랑 별방진에서 마주쳤다.
별방진은 1510년 (중종 5년)에 제주 목사 장림이 구축한 진이다. 역시나 왜구를 대비하기 위한 진으로 특히 우도에 접근하는 왜구를 방어하는 용이다. 이름도 '특별 방어 진지'라는 뜻이다. 정의현의 도읍을 성읍으로 옮긴 후 동부 지역 안보가 취약해졌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요새로 치면 시청 소재지를 옮기고 나서 그쪽 지역 경제 활동이나 동네의 활기가 확 줄어든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되겠다.
둘레 약 1km, 높이 3.5 m 정도의 진으로 제주 동부에서 가장 큰 진성이었다. 지형적으로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성곽이다. 동, 서, 남쪽에 문이 있고 성안에 진사, 객사, 공수, 사령방, 군기고, 대변청, 별창이 있었다. 제주에는 조선시대에 설치한 9개의 진이 있는데, 그중 별방진은 큰 진성(鎭城)이었다 하나 지금은 쓸쓸한 돌담뿐이다. 심지어 남아 있는 성과 새로 새운 성이 확연히 차이가 나게 말이다.
1702년 제주 목사 이형상이 순력하면서 그린 < 탐라 순력도>의 <별방조점>에 별방진에 관한 정보가 잘 기록되어 있다. 그림을 보며 과거 별방진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1702년(숙종 28) 10월 30일에 별방성에서의 군사훈련과 성정군, 군기, 우마를 점검하는 그림이다. 별방진, 황자장, 지미봉수, 민가, 연대의 위치가 상세하다. 밀물 때 바닷물이 흘러들어오도록 되어 있는 별방진은 타원형의 성으로 동문, 서문, 남문이 있다. 성문은 정면 1간의 루가 있는 우진각 초가이고 문은 2짝 여닫이며 문에는 방어를 위한 철엽이 부착되어 있다. 성문 앞에는 옹성과 회곽도를 오르기 위한 돌계단이 성문 옆에 축조되어 있다. 성벽 위에는 여장이 설치돼 있다.
다른 진성에 비해 성의 규모(면적)가 크고 성문이 3개소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제주성에 속하면서도 동쪽 끝에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방어의 중요성이 절실했음을 알 수 있다.
남문을 들어서면 북성 가까이 왼쪽에 호수를 두어 객사가 있고, 객사 오른쪽에 공수(攻守) 또는 사령방(使令房)으로 보이는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남문에서 객사에 다다르는 길과 서문에서 객사에 다다르는 길에 축을 맞추어 ‘ㅁ’자를 형성하면서 동창이 자리 잡고 있으며,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담을 둘러 영역을 구분하고 있다. 동창 앞에는 객사와 마주한 군기고가 자리 잡고 있다.
별방진의 조방장은 김여강이고 성정군의 규모는 423명으로 화북성의 성정군 수효와 같다. 황자장의 우마수는 흑우 247수, 말 946필이며 목자와 보인은 모두 187명, 동창에 보관되어 있는 곡식은 2,860여 석이다. 별방진이 관할하고 있는 봉수와 연대는 입산, 왕가봉수, 입두, 좌가, 무주연대 등이다."
https://www.jeju.go.kr/mokkwana/tamla/jejumok/tamla2.htm
계속 걷다 보면 최초 제주해녀상을 받은 우도 해녀 고이화 생가가 나온다. 1932년 3월 우도 해녀 항일운동에 참가한 분으로 일본과 전국 각지에서 출가 물질을 다니기도 하셨다. 해방 후에 4.3 사건으로 가족들이 죽는 비극을 겪고 홀몸으로 출가 물질을 다니며 집안 경제 활동을 모두 담당하셨다는 내용이 적힌 표지석이 있다. 제주 해녀의 삶은 하나같이 고되다. 이 집은 TV 프로그램 구해줘 홈즈에도 나왔다고 한다.
https://brunch.co.kr/@yeohae/78
곧 바다가 나오고 중간 스탬프를 찍는다. 이후 영등할망에게 굿을 올리던 각시당이 나온다. 해녀들의 신앙인 영등맞이굿은 바다에서의 무탈과 가족의 안녕을 빈다.
제주 바다에 접한 용암대지 위에 앉아서 한참을 쉬었다. 철벌철벅 소리가 좋아 동영상을 많이 찍었는데, 이어폰을 셀카봉에 연결해놓은 바람에 소리는 하나도 녹음되지 않았다. 거의 매번 이런 이상한 동영상 촬영을 하다가 한 달이 지나서야 드디어 동영상을 찍을 때 빠뜨리지 않고 이어폰 잭을 빼게 되었다. 이제는 싸구려 셀카봉이 아니라 DJI OM4 짐벌을 샀으니 이런 불상사는 없을 테고, 멋진 동영상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바다를 담은 영상들이 병원에서 나를 버티게 해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도 어촌계 창고를 지나 천연기념물 19호로 지정된 문주란 자생지 토끼섬이 나온다. 왜 토끼섬일까 하며 지도를 보니 토끼 모양처럼 보이는 건 내가 이상해 진건가? 여름에 하얀 문주란 꽃이 섬을 뒤덮고, 그 모습이 토끼같다고 하여 토끼섬이다. 토끼를 그때 와서 다시 보고 싶다. 문주란이 뭘까? '아름다운 구슬처럼 생긴 난초'라는 뜻의 수선화과 꽃이다.
올레길을 걸으며 예쁜 나무들, 꽃들, 그리고 뭐라 뭐라고 하는 새들 등등 다 알고 보고 싶지만 하나도 모른다. 그냥 나무! 꽃! 새! 이렇게 통칭되어진다. 통성명으로부터 시작해야 될텐데, 너의 이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picture this라는 유료 어플을 샀다. 사진을 찍으면 이게 어떤 식물인지 알려주는 어플이다. 찍고 이름을 보면, 맞는 거 같기도 한데 영 아닌 것 같기도 한 것들도 있다. 마이너한 제주 자연환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도 어촌체험마을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화살표가 우회로로 나있고, 게시판에 글이 쓰여있다. 3월 ~ 6월에 흰물떼새가 애를 낳는 곳이라 이 때는 우회로를 사용하라고 나와있다. 아기를 돌보느라 예민해졌을 새들을 위해 우회로로 걷는다. 사진을 찾아보니 정말 예쁜 새이다
https://www.headlinejeju.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7733
조금만 더 걸으면 하도 해수욕장이 나온다. 자그마한 해수욕장이다. 작아서 그런 걸까, 휴일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지난 15코스에서 본 곽지 해수욕장에 비해 사람이 적어 너무 좋아 보였다. 물은 깨끗하고, 빛깔도 곽지 보다 좋아 보인다. 지미봉이 내려다보는 하도 해수욕장은 평화롭다.
하도 해수욕장 맞은편엔 철새 도래지가 있는데, 새 모형이랑 진짜 새들이랑 섞여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철새 도래지를 오른쪽에 끼고, 하도 해수욕장을 왼쪽에 끼고, 지미봉을 앞에 두고 걸으니 환상적이다.
지미봉에 오르기 전 카페에 앉아 첫 끼니를 먹는데, 빵과 함께 맥주를 한 잔 마셨다.
배를 채우고 지미봉을 오르기 시작한다. 경사가 굉장히 가파른데, 사진으로 아무리 찍어도 이 경사를 표현할 수가 없다.
약 160m 높이의 오름으로 제주의 땅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옛날에 제주목사가 부임해 제주도 순시를 마치는 마지막 고을이 바로 종달이었다고 하니 마지막을 지키는 오름이다. 바람이 많이 불기 시작하여 바람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정상에 올랐다. 정상은 갑자기 나타났다. 정상에서 우도와 성산일출봉을 구경하며 제주의 동쪽 풍경을 느낀다.
책자국 이라는 서점에 들러 노동에 관한 책을 읽는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으로 어떤 태도로 노동해야 할까 가 나에게 중요한 화두였는데, 이런 책을 만나다니 신기하다. 이렇게 지나가며 한 번 보고 말 책이 아니라 파느냐고 여쭤봤더니 이 책은 절판된 상태라고 한다. 커피 한 잔으로 취한 기를 누르며 우연한 곳에서 우연히 만난 좋은 책을 읽어 보려 노력한다. 한참을 쉬다 <순이삼촌>을 사들고 다시 길을 떠난다.
21코스 끝이 보인다. 곧 종달 바당이 나오기 때문이다. 21코스 스탬프 쾅! 오후 5시 40분이다. 1코스부터 순서대로 돌았으면 굉장히 감회가 새로웠을 텐데, 나는 마구잡이로 올레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끝이다! 다시 돌아왔다!' 이런 감흥은 느껴지지 않는다. 추자도 올레가 가장 마지막 올레로 예정되어 있는데, 추자도 올레를 끝마치면 느껴질 것이다.
버스를 타기 위해 종달 초등학교를 가야 하는데, 최단 거리 말고 휠체어 1코스를 역으로 따라가 봤다. 추가 무료 서비스를 얻은 듯한 느낌이다.
종달 초등학교 버스 정류소에서 201번을 타고 해녀 박물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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