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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Jun 25. 2021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숲이 있는, 올레 14-1코스

고요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길 올레

# 9.3 km

# 저지예술정보화마을 ~ 오설록 녹차밭

# 상징 : 탱자나무

# 저지예술정보화마을 ~ 오설록 녹차밭 : 2021년 6월 6일 오후 1시 55분 ~  오후 4시 55분 


나의 올레길 바이블인 「 제주올레 가이드북 」에 따르면 소요시간은 3~4시간이며 난이도는 하에 속한다.


 


* 여성 혼자는 가지 마세요~ 어두워서 무서운 것도 있지만, 길 잃을 것 같아요. 


곶자왈을 거니는 14-1 코스는 여성 혼자는 걷지 말라는 바이블의 충고에 따라 가파도 10-1 올레에 이어 남편과 함께 걸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내가 생각했던 숲길이 아닌걸?' 하며 이 정도는 혼자 걷기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본격 오후 2시 이후에 걷지 말라는 표지판과 함께 시작되는 곶자왈은 혼자 왔으면 길을 잃었을 것 같다. 실제로 남편이 앞장서서 올레 표시를 찾고, 내가 뒤따라갔는데, 앞서 가는 남편이 다른 길을 50미터 정도 가서 큰 소리로 불러 올레길 표시를 따라 가게 수정해주기도 했다. 



7-1코스의 시작 : 저지문화정보화마을


오전 11시에 예약해둔 야생 돌고래 탐사를 마치고, 고등어회 포식 후, 카페인 섭취도 끝내고 저지문화정보화마을에 도착했다. 시작 지점은 6코스의 끝, 7코스의 시작, 7-1코스의 시작으로 간세 안이 복작복작하다. 올레길을 시작하기엔 꽤 늦은 시간인 1시 50분이다. 이 시간에 시작하는 올레꾼들은 없을 줄 알았는데, 4~5명의 가족으로 보이는 한 무리와 혼자 걷는 여성 한 분에 우리까지 총 세 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출발했다. 


저지리는 현대미술관과 김창열 미술관 전시회 관람으로 몇 번 와봤던 곳이었다. 저지리는 제주시 한경면에 속해있다. 중산간 마을로 한경면에 있는 마을 중에는 한라산에 제일 가까운 동네이다. 2007년 전국 가장 아름다운 숲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저지오름이 있다. 또, 울창한 저지 곶자왈이 있고, 예술인 마을과 미술관도 있는 다채로운 동네이다. 2012년 8월에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4호로 지정되었다.


시작은 가뿐하게 : 밭길


14-1 코스의 처음엔 마을길로 시작한다. 집들이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은 농토이다. 밭길이 옹기종기하고, 집도 있고, 창고도 있다. 



바다를 매우! 좋아하기에 바다가 보이는 올레길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밭길, 마을길, 숲길, 오름길도 너무 좋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좋아하는지 모르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를 알게 되는 것은 '경험'이 필요하고, 이는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작업이다. 아마 올레길을 딱 3개만 골라서 갈 수 있다는 미션이 주어졌다면 주저 없이 해안 올레만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레길은 이렇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었고, 여러 길을 걷게 하며 제주의 숨겨진 모습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가르쳐주기도 한다. 이런 평범한 시골 밭길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올레길 완주 여행을 시작할 때 친구가 '그냥 마을길 같은 데는 굳이 가지 말고 그냥 해안 따라서 쭉 가면 시간도 단축되고, 무섭지도 않아.'라고 조언했는데, 그 친구는 마을길이 지루했던 모양이다. 



날이 쨍했어서 멀리까지 보이는 풍경들이 보기 좋다.




초록으로 망막을 가득 채우는 : 강정동산


점점 마을이 아니라 나무만 있는 길이 된다. 하지만 걷는 길은 시멘트 포장길로, 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다. 저지곶자왈 연구 시험림이라는 표지판이 있는 것을 보니 아마 연구소 사람들이 차로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다. 여기는 그냥 길이 이어져서 다른 이름이 있는 줄 몰랐는데, 지도를 보니 '강정 동산'이라고 한다. 




이 정도? 여자 혼자 걷기 충분할 것 같은데? : 뱀도 나오는 저지곶자왈


조금 지나면 시멘트길이 아니라 자갈길로 바뀐다. 여기를 지나며 뱀을 목격하였다! 올레길에 뱀이 나올 수도 있다더니! 길이는 손 끝에서 팔꿈치를 조금 넘을 것 같고, 두께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얄쌍한 뱀이었다. 처음에 남편이 발견하고 내가 와~! 하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순식간에 길을 벗어나 풀과 나무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고등학교 때 학교 안에서 뱀을 본 이후로 이런 야생뱀을 목격한 것은 두 번째다. 



나무의 느낌도 바뀌었는데, 저지곶자왈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곶자왈은 제주어 사전이나 인터넷 검색 상에선 '가시가 많은 덤불이나 잡목림',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켜 있는 수풀', '원시림의 제주어'라고 되어 있다. 숲을 뜻하는 '곶'과 자갈을 뜻하는 '자왈'의 결합어라고도 한다. 하지만 어떤 기사에선 곶자왈의 풀이가 잘못된 것 같다는 지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곶자왈이라는 제주어의 기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나 보다. 제주의 곶자왈이 궁금하여 '환상숲 곶자왈 공원'에 방문하여 개인 소유의 곶자왈 지형을 보면서 해설을 해주는 5,000원에 50분 정도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들었는데, 거기서는 '곶'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가시덤불을 뜻한다고 설명하였다. 가시덤불이 자라고, 뒤이어 나무가 자란다. 나무가 크게 자라서 그늘을 만들면 가시덤불이 죽는다. 그러면 사람들이 나무를 할 수 있다. 나무를 베면 다시 가시덤불이 자라고, 이어서 나무가 자라고... 반복되며 숲과 가시덤불이 왔다 갔다 하니 이는 곧 곶, 자왈, 곶, 자왈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를 이어 붙여 곶자왈이라는 말이 되었다고 해설을 들었다. 


당신이 아는 '곶자왈', 그 뜻이 아니라... 기사 :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65150


화산 폭발로 여기저기서 흐르는 용암들이 이전에 흘러서 이미 바위가 된 것들을 부순다. 바위 덩이들은 불규칙하게 쌓이고, 그 사이사이로 다양한 식물들이 자란다. 개간하기 힘들어 불모지로 남았고, 농사도 짓지 못하는 버려진 땅이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 수많은 종류의 생태를 담고 있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산소를 내어주며 또, 지하수를 저장해주는 '숨골'이 있어 더욱 소중한 곳이다. 숨골은 15~18도의 공기가 지속적으로 나온다.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비밀이 숨골에 있었다. 


제주의 곶자왈은 구좌~성산, 안덕~한경, 애월, 조천~함덕 등 동서남북으로 크게 4곳에 있고, 다시 작은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제주 서귀포시 곶자왈은 도립공원으로 지정하고 생태탐방로를 만들어 곶자왈을 탐방할 수 있게 하였다. 



<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동화 속 마녀의 가시덩굴 숲은 제주에 있다 : 문도지오름


우리가 향하고 있던 오름은 바로 문도지 오름이다. 곶자왈 지역에 솟아 있는 문도지오름은 초승달 모양의 등성마루가 남북으로 길게 휜 말굽형 화구를 가지고 있다. 말 방목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삼나무 숲과 경작지를 제외하고는 사면이 억새로 덮여있다고 한다. 


문도지 오름으로 오르기 위해선 말 방목장을 통과해야 한다. 개인 사유지로 올레길 형성을 기꺼이 허락해주신 모양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멀리 보이는 말들에게 대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저편으로 풍력 발전기가 몇 대 보여 제주의 느낌에 가세한다. 



오름을 중간 정도 오르면 왼편으로 숲이 펼쳐져 있다. 뒤에 있는 오름이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물레 바늘에 찔려 잠들어 있는 성 같고, 앞에 펼쳐진 숲이 마치 마녀가 만든 가시덤불 같이 보여 장관이다. 저기를 뚫고 가는 백마탄 왕자가 바로 나이다! 여기서 보이는 풍경에 기분이 굉장히 좋아졌고, 둘 다 계속 감탄을 늘어놓았다. 사진을 찍어봐도 3차원의 depth 가 잘 표현되지 않아 아쉽다. 이 풍경이 14-1의 백미이다. 



문도지오름의 정상에 오르면 반대편으로도 마찬가지의 풍경이 펼쳐진다. 대신 불룩불룩 오름들이 더 많이 보이고, 뒤에는 대왕 빌런 같은 한라산도 보여 앞서의 풍경이랑 조금 느낌이 다르다. 여기는 마녀의 숲같기 보다는 좀 더 포근한 느낌을 풍긴다. 



가파도 올레는 관광객들이 많아 올레길 고유의 느낌이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진정한 올레길을 걷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문도지 오름에 올라 마녀의 숲을 내려다보며 '올레길 다 이래?'라고 하며 감탄한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날 예정인 나의 친구에게 '그 친구한테 올레길 걸으라 그래~'라고 훈수를 둔다. 우리가 2020년 1월에 제주도 여행 갈 때 올레길 걷는 건 생각도 안 했으면서 말이다. 올레길은 확실히 너무나 아름답고, 제주를 적극적으로 탐하기 좋지만, 사실 몇 시간을 걷는 것을 누군가에게 추천하기엔 고민도 된다. 한 코스를 전체를 다 걷기엔 체력적으로 무리가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또 올레길을 걷는 것 외에 다른 일정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 여행을 자주 가고,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튼튼한 신발과 모자를 준비하여 올레길을 걷기를 강력 추천하고 싶다. 




<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숲으로 들어가 보자 : 다시 곶자왈


오름을 오를 때부턴 흙길이다. 마녀의 가시덤불과 같은 그 숲으로 우리가 들어가게 된다. 문도지 오름을 내려오면 중간 스탬프 지점이 있다. 흙길이긴 하나 차가 다닌 흔적이 있다. 하지만 올레길을 걸으면서 차를 보지는 못했다.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는 외국인 부부와 아기를 보았다. 두 부부가 엄청난 배낭을 메고 있고, 무엇보다 아기가 배낭 위에 얹어져 있었는데 엄청나 보였다! 어디를 향하는 걸까? 궁금해진다. 



정말 기분 좋아지는 숲길이다. 신나 있는 와중에 죽어있는 노루 시체를 목격하였다. 



남편을 올레길을 걸으며 올레 표식 찾는 것도 재미있어했다. '이거 보물찾기 같아'라고 하며 많은 올레꾼들의 공통적인 반응을 선보였다. 이제는 나올 때가 됐는데 라고 생각할 때, 나온다고 좋아했고, 길이 헷갈리는 곳에는 항상 표시가 있다며 대단해했다. 이렇게 또 한 명 올레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하다. 



'환상숲 곶자왈 공원'에서 들은 해설에 따르면 곶자왈에는 흙이 없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 용암 대지 위에 숲이 생긴 것이니 흙이 없을 만도 하다. 하지만 나무들은 흙 속에서 영양분을 얻기 때문에 곶자왈 내부는 나무들에게는 매우 혹독한 환경이었다. 그래서 식물들이 본래의 모습보다는 살기 위해 변형된 모습을 많이 보이는데, 위로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지만 사실 뿌리로는 하나의 나무인 이러한 나무의 모습도 그 특징이라고 한다. 아마도 표면적을 넓히기 위한 전략이자, 한 기둥이 죽어도 다른 기둥은 살아남을 수 있게 한 각개전투 전략 아니었을까. 이런 나무의 특징 때문에 곶자왈 내에 있는 나무들은 나무의 나이를 알기 어렵다고 한다. 뿌리 나이는 하나로 몇 백 년인데, 나이테는 고작 몇십 년뿐이라고. 또, 두께보다 중요한 게 위로 길게 뻗어서 나뭇잎이 햇빛을 보게 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래서 얄쌍한 대신 위로 길고, 그렇기 때문에 두께 성장에는 상대적으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 나이테를 보면 young 하게 나오니 나이를 잘 속이는 곶자왈 나무들이다. 



오후 2시 이후 출입금지 : 곶자왈


갑자기 배가 전시된 야외 전시장이 나왔다. 테우를 비롯하여 거북선, 바이킹선 등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는 개인이 한 것일까, 누군가의 취미일까 얘기하며 지나갔다. 이곳을 지나면 드디어 오후 2시 이후 진입금지의 곶자왈이 나온다. 



곶자왈은 독특한 숲인데 북쪽 한계 지점에 자라는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남쪽 한계 지점에 자라는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숲이기 때문이다. 한겨울에도 푸른 숲이라고 하니 겨울에 와보고 싶어 진다. 이 모든 것은 숨골 덕분이다. 숨골은 땅속으로 나 있는 작은 구덩이 같은 공간으로 이곳에서 곶자왈의 온도와 습도 조절을 담당한다. 



이 무서운 곶자왈 길은 14-1 코스의 두 번째 백미이다. 분위기가 엄청나다. 곶자왈에 들어갈 때의 시간이 오후 16시였는데, 숲이 울창하여 어두운 느낌이 있었다. 지나가며 왜 여성 혼자 가지 말라고 쓰여있는지, 오후 2시 이후에 들어가지 말라고 되어 있는지 이해하면서 건너갔다. 



곶자왈은 마소의 방목지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말이 곶자왈을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펜스도 있었고, 말똥도 많았다. 내가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식물은 오직 고사리와 소나무뿐인 게 아쉬웠다. 




갑자기 나타나는 분위기 반전 갑 : 오설록 녹차밭


곶자왈에서 한 발짝 나오면 짜잔! 녹차밭이 펼쳐진다. 뒤에 있는 곶자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곶자왈이 어두운 마녀 덩굴이었다면 녹차밭은 백설공주의 집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도착했을 때는 16시 55분이다. 정확히 3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마을길, 숲길, 오름, 곶자왈길, 녹차밭까지 풍경이 시시각각 변해서 3시간보다 훨씬 더 걸은 느낌이다. 혼자 다니듯이 물을 한 통만 챙겨 와서 둘이 나눠 먹기에 부족했기에 우리는 너무 목이 말랐다. 얼른 오설록 티뮤지엄에 들어가 시원한 차를 마시기로 한다. 


시작 지점으로는 티뮤지엄 앞에 많이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가기 때문에 조금 띠꺼운 표정을 보이셨으나 그래도 큰 말씀 없이 태워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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