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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Jun 30. 2021

뛰어난 아름다움 외에 또 뭐가 있을까? : 성산일출봉

동서남북, 가까이서, 멀리서, 물속에서, 그림으로 본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을 들어보지 않은 한국인이 있을까. 비록 가보진 않았더라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주에는 영주10경(瀛州十景)이라는 게 있다. 제주에서 경관이 뛰어난 열 곳을 조선 말기 제주의 지식인 매계 이한우가 시적인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다.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1경 성산일출 (城山日出) - 성산의 해돋이

제2경 사봉낙조 (紗峯落照) - 사라봉의 저녁노을

제3경 영구춘화 (瀛邱春花) - 영구(속칭 들렁귀)의 봄꽃

제4경 정방하폭 (正房夏瀑) - 정방폭포의 여름

제5경 귤림추색 (橘林秋色) - 귤림의 가을빛

제6경 녹담만설 (鹿潭晩雪) - 백록담의 늦겨울 눈

제7경 영실기암 (靈室奇巖) - 영실의 기이한 바위들

제8경 산방굴사 (山房窟寺) - 산방산의 굴 절

제9경 산포조어 (山浦釣魚) - 산지포구의 고기잡이

제10경 고수목마 (古藪牧馬) - 풀밭에 기르는 말


성신일출이 제1경으로 최고의 풍경을 차지했다. 예나 지금이나 시간이 지나도 이 곳의 경치는 엄청났나 보다. 




성산일출봉의 이름 뜻은?


성산 + 일출 + 봉으로 이루어졌다. 성산은 성모양의 산이란 뜻이다. 정상의 분화구 둘레에 99개의 기암괴석(기이하게, 이상하게 생긴 괴상한 돌) 바위가 빙 둘러져 있어서 마치 성채같이 보인다고 해서 성산이다. 원래는 숲이 울창하여 ‘청산’으로 불렸다가 바뀐 이름이다. 




수성화산 분화로 태어났다


제주도에 있는 368개의 오름 가운데 10여 개가 수성화산 활동으로 생긴 것들이다. 성산일출봉, 하논 분화구, 송악산, 창천리 군산, 고산 수월봉과 당산봉, 김녕 입산봉, 종달리 말미 오름, 우도가 대표적이다. 


성산일출봉은 약 5,000년 전에 수성화산 분화에 의해 만들어진 응회구이다. 응회구가 무엇인지는 “화산 분화의 3가지 형태” 일반인이 열심히 해석한 글이 있다. 


https://brunch.co.kr/@yeohae/67


마그마가 지표로 올라올 때 온도는 1,000도가 넘는다. 이렇게 높은 온도가 차가운 물과 만나면 마그마는 급속도로 식으면서 잘게 쪼개진다. 반면이 물은 순식간에 100도를 넘어서 수증기로 변하면서 부피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이런 반응은 매우 격렬하면서도 빠르게 일어나서 큰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어떤 모습일지 잘 모르겠지만, 절대로 가까이 있고 싶지 않은 무서운 모습이 상상된다. 


이렇게 수증기와 용암 부스러기들이 붙은 화산쇄설물들이 높이 치솟았다가 천천히 떨어지며 차곡차곡 쌓인다. 그렇게 쌓인 것을 바로 응회구 또는 응회환이라고 한다. 높이가 50m 이상이고, 경사면이 25도가 넘으면 응회구이고, 그보다 작으면 응회환이다. 성산일출봉의 분화구 바닥은 해발 90m이고, 일출봉의 가장 높은 곳은 해발 180m이다. 경사는 30도가 넘어 최대 45도라고 하니 응회구로 분류할 수 있겠다. 


이런 가파른 경사면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수증기 때문이다. 마른 모래로 높은 모래성을 쌓기는 쉽지 않지만 축축한 모래로는 가능하다. 마찬가지의 원리로 성산일출봉의 화산쇄설물이 물기를 많이 머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물기를 머금은 화산재들이 서로 뭉치거나 화산암편의 표면에 달라붙은 구조를 '부가화산력' 또는 '외장화산력' 이라고 한다. 


이렇게 마그마와 물이 만나서 생긴 수성화산은 물과 가깝기 때문에 침식작용이 일어난다. 성산일출봉은 파도와 거센 바닷바람에 의해 침식을 받았고, 그래서 대부분 깎여 나가 가파른 절벽만 남겼다. 육지와 연결된 서쪽만 잔디 능선으로 완만하고 동쪽, 남쪽, 북쪽 모두 깎아지른 절벽이다. 이 절벽의 모습이 더욱 성산일출봉을 장대하게 만든다. 



일출봉은 총 3번 분화했다


성산일출봉을 가장 처음으로 만든 첫 번째 화산재 분출은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분화구보다 동쪽으로 600m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응회구를 만들었고 화산활동은 잠시 멈추었다. 시간이 지나서 응회구 전체가 붕괴되거나 침식이 일어나 하부 침식면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마그마는 부글거리고 있었고, 지표면으로 튀어나오고자 했다. 하지만 원래 나왔던 통로는 마그마가 굳어 막혀 버려서 서쪽으로 600m 간 지점에서 새롭게 분출했다. 이렇게 중부 응회구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마그마가 분출하는데 이번에는 같은 통로로 분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상부 응회구가 만들어진다. 정상의 지금 600m, 바닥면 높이 해발 90m, 면적이 8만여 평인 분화구가 마지막 분화구의 모습이다. 



성산일출봉의 남쪽에서 보면 하부, 중부, 상부 응회구의 구분을 볼 수 있다. 희끄무리 한 게 하부 응회구, 중간에 보이는 게 중부 응회구이고, 위쪽으로 뾰족한 느낌이 강한 게 상부 응회구이다. 




북쪽 해안에선 퇴적층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성산일출봉은 멀리서 봐도 장관이지만 가까이서 눈을 들이밀고 봐도 신비로움 천지이다. 화산재가 층층이 쌓여있는 모습은 해녀의 집 쪽에서 보는 북쪽 해안에서 잘 볼 수 있다. 



화구에서 터져 나온 화산재는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서서히 낙하해 쌓이기도 하지만 뜨거운 화산가스나 수증기와 섞여서 마치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지면 위를 휩쓸다가 쌓이기도 한다. 이를 '화쇄난류火碎亂流, pyroclastic surge'라고 부른다. 화쇄난류가 비교적 멀리까지 이용하여 화산체 가장자리에 화산쇄설물들을 퇴적시킨 것을 볼 수 있다. 응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콩고물 같은 화산력(화산암편, lapillus)들도 잘 볼 수 있다. 



화산재층은 예쁘게 쌓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미끄러지기도 하고, 비에 쓸려 내려앉기도 한다. 아래쪽이 파도에 침식되면서 위에서 내려앉기도 한다. 



절벽에 보이는 구멍들에서 바위가 떨어져 나와 해안에 흩어져 있다. 이런 것들은 화산 폭발과 함께 튀어나온 암석이 화산재층에 박힌 것이다. 그러다 화산재층이 비바람에 침식되면서 잡아 주던 게 없어지니까 암석이 뚝! 하고 떨어져 나왔다. 이걸 보고 나니 절벽에 가까이 다가가는 게 무서워졌다. 산길을 차로 지나갈 때 "낙석주의"라는 표지판을 봐도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성산일출봉에서 주의 표지판은 정말 주의해야 할 것 같다. 보트 운전하시는 분께 여쭤보니 가끔 바위가 떨어진다고 한다. 가끔이 얼마만큼의 빈도일까? 


성산일출봉 남쪽 절벽의 위험 표지판



성산일출봉의 비밀을 밝혀준 '신양리층'


일출봉에서 침식되어 떨어져 나온 화산 물질들이 파도에 의해 신양리 방향으로 이동해 쌓였다. 이것이 바로 '신양리층'이다. 지금은 그냥 ‘섭지코지’, ‘휘닉스제주’로 불리는 곳이 신양리이다. 이 지층에 포함된 조개 화석의 연대를 살펴보면 3,500년 에서 5,000년 사이가 나온다. 즉, 성산일출봉이 약 5,000년 전에 분출했고, 신양리층의 퇴적은 이후 1,000년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원래 섬이었던 성산일출봉이 어떻게 제주 육지와 이어지게 되었나. 바로 이 신양리층 덕분이다. 일출봉 응회암 기원의 퇴적층이다. 성산일출봉이 파도와 바람에 깎이고 깎여서 모래가 되고 이것들이 쌓이고 쌓인 지층이다. 그래서 성산일출봉과 육지를 연결하는 ‘육계사주’를 만들었다. 결국 성산일출봉이 제 몸을 깎아 육지와 기를 쓰고 연결한 셈이다. 나 혼자 섬일 수 없어!!!라고 외치는 성산 일출봉이다. 그리고 행동파다. 제 몸을 깎아 기를 쓰고 육지와 연결을 해냈으니 말이다. 덕분에 우리는 배 타지 않고 편하게 성산 일출봉 코 앞까지 운전하고 가서 성산일출봉을 구경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 성산일출봉은 뿌듯하겠다.  



바닷속에서 보는 성산일출봉 분화의 흔적



퇴적층처럼 보이는데 확신할 순 없다. 



화산탄처럼 보이는 것들도 많이 있다. 물고기들이 과거 용암이었던 돌들 사이로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성산에서 스쿠버 할 때 신났던 점 중에 하나는 물 위로 나오면 성산일출봉이 짠! 장관을 항상 보여주는 것이다. 



설문대할망 전설 : 등경돌(징경돌) 바위


제주의 설문대할망 전설에도 당연히 성산일출봉은 등장한다. 성산일출봉을 오르다 보면 설문대할망이 바느질을 하기 위해 불을 밝혔다는 ‘등경돌’이 있다. 설문대할망은 일출봉 분화구를 빨래 바구니로 삼고 우도를 빨랫돌로 하여 세탁하였다고 한다. 옷이 한 벌 밖에 없어서 매일 빨래를 하고 밤에는 등경불에 불을 켜 뜯어진 데를 꿰매었다. 이후 옷을 갖고 싶어 했던 설문대할망 전설 이야기가 이어진다. 
















배 타고 나가서 볼 수 있는 동쪽 : 가마우지 서식지


선상 보트와 스쿠버 보트를 이용해서 성산 일출봉을 바다 쪽에서 바라보았다. 


가마우지는 이곳 성산에 서식지를 두고 있다. 바닷속 깊은 곳까지 잠수해 물고기를 사냥하는 잠수새이다. 우도에서 멀리서만 보다가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신기하다. 이것들은 왜 성산일출봉에 서식지를 둔 것일까? 



17살 수학여행으로 성산일출봉을 올랐을 때 정상에서 제비를 처음 봤다. 제비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우리끼리 제비다!라고 신기해했다. 성산일출봉은 새들이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는 곳인 듯하다. 




태평양전쟁, 마지막 발악을 하던 일본의 자살특공대 흔적


뽕뽕뽕 격납고 구멍이 잘 보인다


제주 곳곳을 요새화 하던 일제 강점 시기. 아름다운 성산일출봉에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다. 일출봉에 제주로 접근하는 연합군 함대를 자살 폭파 공격으로 격침시키기 위한 수상 특공 병기 '신요(震洋)'의 격납고가 있다. 동쪽 바다를 향해 만들어진 진지 갱도는 총 18곳이라고 한다. 1943년부터 약 2년에 걸쳐 팠다. 성산일출봉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이다. 



제주 도민들이 아니라 전남 지방 광산 노동자들이 대거 동원돼 구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진지 갱도는 높이 3~5m, 길이 10~15m, 넓이는 3m 정도이다. 일자형이나 안에서 서로 연결되는 왕자형도 있다. 안으로 깊지 않아서 밖에서도 충분히 보인다. 


빠른 출격을 위해 아마 바닷물에 접하여 있었을 것 같다. 썰물 때 보러 가서 그런가? 싶다가도 잔디가 수북한 것을 보면 만조 때도 물이 들어차지 않는 곳처럼 보인다. 검색하여 보니 일출봉 동쪽에 세워진 방파제가 파도의 흐름을 바꾸어 모래를 동쪽으로 밀어내어 이 쪽에 쌓여서 그렇다고 한다. 



일본 덕후들은 퇴적암을 보고 파면 파지는 부드러운 암석임을 알았을테지. 제주 지질 조사도 열심히 했었고 말이다. 



'대양을 뒤흔든다'는 뜻의 일본 군함 이름을 딴 이 자살 특공 병기는 80마력짜리 엔진을 달고 뱃머리에 250kg의 폭약을 장착했다. 이 요 자살 특공대로 인한 사망자는 필리핀 해역에서 9백여 명, 오키나와 해역에서 159명이었지만 연합군의 군함에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고 한다. 본토 전쟁에 대비하여 성산일출봉에 머물던 신요는 쓰임새를 발휘하기도 전에 원자폭탄에 의해 패전을 맞이해버렸기 때문이다. 




제주 4.3 학살 현장이었던 우뭇개 동산 & 터진목


제주 곳곳에 4.3의 흔적이 있고, 안타깝게도 제주 관광지는 모두 4.3의 기억을 가진 곳이다. '당연히' 성산일출봉도 그렇다. 성산일출봉의 4.3 때 “멜 널어지듯” 많은 주민들이 학살당했다. 일본이 두고 간 다이너마이트를 고기잡이에 이용했던 어부들을 보고 서북청년단이 마을 사람들을 잡아다 죽인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하지만 이곳에 어디에도 그런 안내를 나타내 주는 표지판은 없다.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42778


https://news.nate.com/view/20210531n16726?mid=n0404


터진목은 성산 일출봉과 육지가 연결되는 약 50m 길이의 해안가를 말한다. 간조와 만조의 조수차 때문에 이 길이 바다에 잠길 때도 있고, 열릴 때도 있다. 그래서 ‘막히지 않고 트여있는 길목’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의 뜻과 다르게 현재는 만조가 되어도 길이 잠기지 않는데, 이는 1940년 초 이곳에 도로가 생기면 서부터이다. 



광치기 해변 옆에 터진목 4.3 유적지가 있다. 4.3 사태 당시 고성리, 오조리 마을 등 성산읍에서만 약 400여 명이 국군 토벌대에 의해 학살당한 곳이다. 


광치기 해변 옆에 터진목 4.3 유적지가 있다. 2010년 11월 5일에 성산읍 4.3 희생자 유족회가 위령비를 세웠다. 또, 2008년 프랑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자 명예 제주도민인 르 클레지오의 '제주 기행문' 일부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어떻게 이 아름다운 곳이 학살터로 변했는가?'


 "그 때 형님이 희생됐는데, 그 때 우리 형님은 일본서 살다가 발동기를 하나 사가지고 마침 해방을 맞아서 왔는데. 불과 4개월 정도 살아가지고. 그 때는 서북청년들 사진을 가져와 가지고, 그 때는 서북청년한테 누구 협조도 안 해주니까 말이여. 게니까 사진, 대통령 이승만 사진을 해가지고 집에 돌아다니면서 사라고 해가지고. 우리 형님은 필요 없다. 그것뿐이 없는데…. 제일 억울한 것이, 총으로 한 번 해서 쓰러지면 그걸로 죽어서 말아불민 좋은데. 그 때는 의용대, 특공대 해 가지고 몇 사람씩 성산포 주둔했단 말이여. 그런데 죽은 놈 위에 매질한다고, 총 쏘아서 쓰러진 것을 대창, 철창으로 시험으로 하라고 막 찔러놨단 말이여. 그러니까 부모로서, 동생으로서 그걸 눈으로 볼 수 없단 말이여. 나도 직접 그 날 못 가서 뒷날 가 가지고서 형님 시신을 모시기도 했는데. 그 때는 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말구르마 끄성 가서 시신을 모셨는데. 이거는 사람을 잡아도 그렇게 잡을 수가 없단 말이지. 막 찔러노니까 상처 안 난 데가 한 군데도 없어."


http://43archives.or.kr/viewHistoricSiteD.do?historicSiteSeq=13




아름다워서 처연하기도 한 성산일출봉


우도봉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오조리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대수산봉에서 바라본 우도와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유민미술관 성산일출봉만을 위한 구멍을 통해 보이는 성산일출봉

많은 예술가들을 사로잡은 절경


김택화 @김택화미술관
김택화 @김택화미술관
김택화 @김택화미술관
김택화  @김택화미술관
김현철 <성산> @소암기념관


김현철 작가의 작품이 너무 좋다! 

박광진 <성산포> @제주도립미술관


탐라순력도에 있는 <성산관일> 


http://www.davincimap.co.kr/davBase/Source/davSource.jsp?Job=Body&SourID=SOUR003620



그리고 아름다운 배경에 신비로운 성산리 해녀



참고 :「제주도 지질여행 2020 개정증보판」,「답사여행의 길잡이 11, 한려수도와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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