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길 올레
# 15.1 km
# 시흥리 정류장 ~ 광치기해변
# 상징 : 시흥초등학교
# 광치기해변 ~ 종달 초등학교 (역방향) 21년 6월 22일 17시 15분 ~ 20시 10분 (2시간 50분)
# 시흥리 정류장 ~ 종달 초등학교 (순방향) 21년 6월 28일 17시 15분 ~ 19시 05분 (1시간 50분)
나의 올레길 바이블인 「 제주올레 가이드북 」에 따르면 소요시간은 4~5시간이며 난이도는 중에 속한다.
https://www.jejuolle.org/trail/kor/olle_trail/default.asp?search_idx=1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는 스쿠버 펀 다이브를 하였다. 수마포 해안에 위치한 성산 스쿠버 리조트는 성산일출봉을 코 앞에 두고 있다. 수미포 해안에선 성산일출봉을 남쪽에서 바라볼 수 있다. 바닷속에 들어가면 돌의 섬 제주답게 바닷속에도 돌들이 그득하다. 이곳에서 스쿠버를 할 때 좋았던 점은 수면 위로 올라오면 성산일출봉이 짠! 하고 나타나고 이 모습을 물속에서 앞에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우도도 바닷속에서 보는 맛도 있다.
두 번의 다이빙을 하고, 스쿠버다이빙 샵에서 알려준 가게에서 한치 물회를 흡입한 후 올레 시작 지점을 찾아갔다.
2코스를 걷기 위해 왔던 광치기 해변에 다시 주차를 했다. 한 번 와봤던 곳이라 금방 찾는다. 광치기 해변에서 성산일출봉을 뒤로하고 2코스를 시작했다면, 1코스 역방향은 성산일출봉을 바라보고 출발한다. 그런 면에서 이 부분은 역방향이 더 멋있겠다고 생각하며 신나서 걷기 시작한다.
성산일출봉이 오전 7시 정도에 입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여름에 성산'일출'봉에서 일출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새 해 뜨는 시간이 새벽 5시 20분 정도니까 말이다. 대신 이 광치기 해변과 1코스에 있는 말미오름에서 일출을 보면 좋다고 하니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 광치기 해변은 검고 흰모래가 섞여 있는 해변이다. 물이 좀 들어와 있을 시간인지 이끼 낀 바위들은 많이 보이지 않고 작은 갈색 모래사장과 새파란 제주 바다, 그리고 성산일출봉의 남쪽 모습이 정확하게 들어온다.
터진목은 성산 일출봉과 육지가 연결되는 약 50m 길이의 해안가를 말한다. 간조와 만조의 조수 차 때문에 이 길이 바다에 잠길 때도 있고, 열릴 때도 있다. 그래서 ‘막히지 않고 트여있는 길목’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의 뜻과 다르게 현재는 만조가 되어도 길이 잠기지 않는데, 이는 1940년 초 이곳에 도로가 생기면 서부터이다.
아름다운 이곳에도 4.3의 상처는 있다. 제주 곳곳에 4.3의 흔적이 새겨있지 않은 곳이 없어 올레길을 걸으며 한껏 즐겁다가도 가슴 쓰린 느낌에 톤 다운되기도 한다. 여기는 4.3 사태 당시 성산읍, 구좌읍 등 주민들을 감자 공장 창고에 수감 및 고문하다가 총살했던 학살터이다. 시행한 사람들은 서북청년단이다.
광치기 해변 옆에 터진목 4.3 유적지가 있다. 2010년 11월 5일에 성산읍 4.3 희생자 유족회가 위령비를 세웠다. 또, 2008년 프랑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자 명예 제주도민인 르 클레지오의 '제주기행문' 일부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어떻게 이 아름다운 곳이 학살터로 변했는가?'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 르 클레지오는 ⌜황금물고기⌟밖에 안 읽어봤는데, 해녀에 관한 소설 등 다른 글들이 있는 것을 이 비를 계기로 알게 되었고, 책을 주문해 놓았다.
http://43archives.or.kr/viewHistoricSiteD.do?historicSiteSeq=13
"그 때 형님이 희생됐는데, 그 때 우리 형님은 일본서 살다가 발동기를 하나 사가지고 마침 해방을 맞아서 왔는데. 불과 4개월 정도 살아가지고. 그 때는 서북청년들 사진을 가져와 가지고, 그 때는 서북청년한테 누구 협조도 안 해주니까 말이여. 게니까 사진, 대통령 이승만 사진을 해가지고 집에 돌아다니면서 사라고 해가지고. 우리 형님은 필요 없다. 그것뿐이 없는데…. 제일 억울한 것이, 총으로 한 번 해서 쓰러지면 그걸로 죽어서 말아불민 좋은데. 그 때는 의용대, 특공대 해 가지고 몇 사람씩 성산포 주둔했단 말이여. 그런데 죽은 놈 위에 매질한다고, 총 쏘아서 쓰러진 것을 대창, 철창으로 시험으로 하라고 막 찔러놨단 말이여. 그러니까 부모로서, 동생으로서 그걸 눈으로 볼 수 없단 말이여. 나도 직접 그 날 못 가서 뒷날 가 가지고서 형님 시신을 모시기도 했는데. 그 때는 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말구르마 끄성 가서 시신을 모셨는데. 이거는 사람을 잡아도 그렇게 잡을 수가 없단 말이지. 막 찔러노니까 상처 안 난 데가 한 군데도 없어."
해녀탈의장과 성산 스쿠버 리조트, 수마 카페가 있는 수마포 해안을 지난다. 아까 다이빙을 할 때만 해도 해녀 삼촌들이 성게 까는 작업을 하고 계셨는데, 이제 다 끝나셨는지 안 보이신다.
올레 1코스에 위치한 성산일출봉은 그 자체만으로도 반나절이 걸리는 볼거리이다.
https://brunch.co.kr/@yeohae/92
복잡한 성산일출봉 주차장을 지나 샛길로 들어간다. 성산일출봉만 찍고 가는 사람들은 모를 나만의 비밀 통로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여기서부터 우도를 바라보고 걷는데, 이 길은 지금 걷는 방향인 역방향도 좋지만, 순방향이 멋있을 것 같았다. 자꾸 뒤돌아보며 성산일출봉을 확인하게 된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달라지는 성산일출봉과 우도의 절경이 이 길을 10점 만점에 10점짜리로 만든다.
아름답고 속이 뻥 뚫리는 풍경에 시가 절로 나오나 보다. 시의 바다, 시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카페에 들러 잠시 쉬어간다. 카페에 수영장도 있고, 넓은 야외 좌석이 있다. 거기다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바라보는 환상의 뷰라니. 엄청난 카페이다. 좌석도 엄청 많고, 내부도 엄청 넓고, 핫한 시간대에는 정말 사람이 많을 것 같은 곳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을 것 같은 이유는 역시 제주의 자연 덕분이다.
우도를 갈 때 왔던 성산포항에 가까워졌다. 큰 항구의 느낌이 왕왕 나지만, 18코스에서 봤던 제주항에 비하면 한참 작다. 우도를 갔다가 나온 사람들도 모두 떠났는지 주차장이 한산하다. 성산포 항을 빗껴서 식당가 쪽으로 가니 사람들이 조금 있었다.
원래 이 성산항의 갑문은 닫아서 오조리 내수면을 만들던 시설이다. 1994년에 국비 80억 원을 들여 만들었는데, 2013년부터 갑문으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고 다리로 바꾸고 내수면 쪽에 친환경길을 조성하는데 또 예산을 투입했다고 한다.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63181
다리를 건너 오조 해녀의 집을 지나면 본격적인 바당 올레가 시작된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바다 건너 우도와 성산일출봉을 구경하면서 걷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구름이 변하고, 하늘이 변하고, 하늘색이 변하고, 따라서 바다 색도 변한다.
바다 건너 우도에선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두둥실 달도 너무 예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해가 져갈수록 조금씩 무서워진다. 아무 걱정 없이 혼자서 야경을 즐기며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승우 길이라는 표지석이 나왔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백마고지 전투에서 활약했다는 군인이고, 그분의 고향이 시흥리라서 이렇게 지정을 했다고 한다. 625 전쟁에 대해 고민하자면 또 한도 끝도 없어진다... 이 길에선 조금 뒤로하기로 하자.
http://www.headlinejeju.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5731
중간 스탬프를 목화휴게소 앞에 있다. 19시 50분이다. 중간 스탬프를 찍고 광치기해변으로 돌아가려고 카카오 택시를 부르는데, 걷는데 몇 시간 걸렸어도 차로 돌아가는 길은 순식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그럼 하는 수 없이 버스 정류장까지 더 걸어야 한다.
너무 어두워졌다. 해지고 나서 길 위에 있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난 21코스를 끝내고 종달 초등학교까지 걸어갔던 보너스 길을 알기 때문에 좀 덜 무서웠다. 만약 처음 가는 길이었으면 어두운 골목과 드문 인적에 더 무서웠을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경험은 언젠가 쓰일 일이 있는 법. 한 걸음씩 그리고 조그마한 경험이라도 인생에 더 많이 채워야 할 것이다. 종달 초등학교에 도착하니 20시 10분이다. 버스를 타고 광치기 해변으로 돌아오니 이곳에 밤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은 코스는 다음에 걷기로 기약한다.
올레 20코스 김녕 해수욕장에서 본 카이트 서핑에 반해서 '저건 꼭 해야 돼!'라고 염두에 두고 있다 드디어 시작했다. 섭지코지 신양리에서 카이트 서핑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당일 오전 바람의 방향에 따라 서핑하는 바다는 바뀐다고 한다. 그래서 종달리 해변에서 10:30에 카이트 서핑을 시작했다.
종달 바닷속에는 우도에서 본 홍조단괴가 있다. 우도와 종달 바다 사이에 홍조 단괴가 많이 있고, 이들이 파도와 바람의 방향 때문에 우도 쪽에 쌓여서 해변이 된 것이다. 바다와 육지, 그리고 카이트를 타고 하늘을 나르며 즐기며 관찰하는 제주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곳이다.
6시간 넘게 지속한 카이트 서핑으로 조금 피곤했지만, 문어 파스타를 먹고 나니 회복이 되었다. 시흥리 정류장으로 가본다.
1코스는 걷기 전에 레저를 한 바탕하고 시작하게 된다. 그 이유는 제주에서 머무는 집이 모두 서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동쪽으로 오려면 1시간 30분가량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한 번 왔을 때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짧은 여행이 아니라 '다음에 또 오면 되지'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제주살이이지만, 제주의 동과 서를 오가는 게 이렇게 멀다는 것은 제주에 대한 이해가 떨어졌던 나의 어리석음이다.
올레길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오는 말 중에 하나가 버스나 택시 타고 시작 지점으로 가기 어렵다는 불만이다. 나도 한 코스를 딱! 끝냈을 때 굉장히 성취감에 기쁘고, 다리 아픈 것을 이끌고 해냈다는 생각에 취해있다가 다시 또 버스 정류장까지 1km 가까이 걸어야 할 때 갑자기 다리의 피곤이 확! 몰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해안 올레의 경우 바다 가까이에 올레길이 붙어 있다 보니 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 수직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 길이 사실 꽤나 거리가 된다. 나중엔 중간에 끝내고 버스를 타야 할 때, 버스가 다니는 길이 살짝 기울어져 올레길에 가까워서 걷는 거리를 최소화하는 데에서 멈추는 요령도 피울 줄 알게 되었다. 너무 지치고 배고플 때 200m와 800m는 2km와 8km의 차이처럼 크게 느껴진다. 버스 타는 얘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바로 이 1코스의 시작이 바로 버스정류장 바로 앞이기 때문이다. ‘걷기’를 하러 ‘차’를 타고 온다는 것도 모순적이게 느껴지는데, ‘사람들이 걸으러 비행기 타고 제주까지 오겠어?’라고 올레길을 만들 때 듣던 비판은 참으로 두려웠으리라.
올레길을 걷는 게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기가 불편해서'라는 이유로 꺼려진다면 안 걸으면 그만이다. '왜 이런 곳에 시작 지점과 도착 지점을 만들었냐'는 투덜이들이 있다. 올레길이 주는 아름다움보다 그 불편함, 짜증이 더 큰 것이리라. '제주올레 패스포트가 20,000원으로 비싸서'라면 안 사면 그만이고 안 걸으면 그만이다. 누가 강제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후원금으로 운영되며 길 위의 행복을 전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까내리기 하는 것은 미성숙한 태도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어차피 '길'인데 시작 지점과 도착 지점을 그렇게 기를 쓰고 지켜야 될 것은 또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어쨌거나, 올레 바이러스에 지독하게 감염된 나로서는 그 어떠한 단점보다 올레길에서 보는 풍경이 주는 기쁨이 훨씬 크다고 확신한다.
정의현의 채수강 군수가 ‘맨 처음 마을’이라는 뜻으로 시흥이라고 이름 붙은 이곳은 제주에 새로 부임한 제주 목사가 시흥리에서 시작해 종달리에서 순찰을 마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이 올레길의 대단원의 서막도 바로 이 시흥리에서 시작한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 바다에 위치한 시작하는 마을은 참으로 고요하고 아름답다. 이렇게 밭은 많은데, 왜 밭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안 계실까?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의 수많은 밭들을 봤는데, 밭일하시는 분은 거의 못 봤다. 10손가락에 꼽힌다. 제주의 아름다운 밭들은 어떻게 가꾸어지는 걸까?
옆으로는 말미오름, 뒤돌면 지미봉이 있다.
말의 머리처럼 생겼기 때문에 이름이 말미이다. 한자로는 두산봉이다.
오름을 오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런 풍경을 가진 산을 동네 뒷산으로 두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막상 오름을 가보면 그다지 사람을 만날 수 있지는 않다. 아마도 올레길에 포함된 오름은 시골 마을이고 대부분 물질이나 밭일을 하시기 때문에 따로 오름을 오르는 등산 같은 행위를 하기엔 이미 너무 고되서지 않을까 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이 아름다운 오름을 이렇게 지나가는 여행객들보단 많이 오르셨겠지만, 건강을 위해 하루 한 번 등산하기는. 체력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가파른가? 가파르다! 하지만 짧다.
만약 올레 1코스를 올레길을 처음 걷는 사람들이라면 올레 바이러스를 감염시키기에 충분하고도 충분한 뷰이다. 정상에서 짠! 하고 나오는 풍경을 보기 전에 살짝살짝 나무들 사이로 풍경을 살짝살짝 보여준다. 밀당의 천재! 말미오름이다.
말미오름 정상에서 우도와 성산일출봉, 그리고 시흥리 밭이 아름답게 보인다. 이 풍경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성산일출봉 앞에 식산봉도 보인다. 2코스의 흔적들이 다 보이는 듯하다.
저 멀리 보이는 야트막한 오름은 뭘까? 지도로 확인해본다. 대왕산일까? 설문대할망의 치맛자락의 아주 작은 흙이 떨어져 만들어진 듯한 아주 얕아 보이는데 이름은 대왕산이라니 거창하도다~
말미오름을 내려가는 길을 보면 지미봉 보인다.
말미오름은 초승달형 분석구이다. 작은 화산이 폭발했고, 분화구에서 용암이 넘쳐흘러서 한쪽 면을 뭉개트렸다. 그쪽으로 용암이 계속 계속 흘러서 초승달 모양의 분석구가 탄생한다.
말미오름을 내려와서 오름 숲길을 지나쳐서 알오름으로 이어진다. 사실 너무 좋은 길이다. 하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다. 이 정도의 느낌이다. 실제로는 사진보다 조금 더 어둡다.
초원이 나온다. 이곳은 마치 외국 같다. 안 가봤지만 알프스 초원이 이거 같지 않을까? <사운드 오브 뮤직>을 찍을 것 같은 풍경이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의 제주이다. 초원 너머로 역시나 귀여운 오름들이 솟아있다. 저기 코끼리 먹은 보아뱀 같은 모양의 오름이 용눈이 오름일까? 열심히 오름의 위치와 이름을 익히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제주 자연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 본다.
새 알을 닮았기 때문에 이름이 알오름이라고 하고, 말산메라고도 부른다. 눈앞에 보이는 언덕을 살짝 올라가면 바로 정상이다. 아까는 지미봉이 살짝 가려 보였다면 이제는 명확하게 보인다. 멀리 우도까지 경치가 아름답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해가 등 뒤에 있는 것이 느껴진다. 올레 1코스, 바로 이곳에 일출을 보러 오고 싶어 진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숲길로 내려간다. 여기도 또 으스스했다. 너무 좋은 숲길인데. 이 숲길을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하고 무서움에 떨며 지나야 하다니. 너무 슬프고 아쉽다. 안타깝게도 올레길에서 젊은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곳이 바로 이곳 1코스였다.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알기 때문에 무섬증이 생긴다. 어떤 느낌인지 동영상에 담아 보았다. 이보다 조금 더 길다.
소나 말, 새들은 아무 걱정 없이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노니는데 왜 사람은, 여성은 불안과 걱정을 안고 자연에 들어가야만 하는 걸까. 많은 남성들이 ‘외로움’을 가장 큰 고민으로 여긴다면 여성들은 ‘경제와 안전’을 가장 큰 고민으로 여기니 ‘정신차려이각박한세상속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긴 어려운 점이 많다. 아무 걱정과 불안 없이 다니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킥복싱을 배워야 하나, 주짓수를 배워야 하나, 배우면 쓸 수 있긴 할까 온갖 나를 지키기 위한 고민에 빠져 빠른 걸음을 걷다 결국 막판에 뛰어나왔다.
2012년 일어난 제주올레길 살인사건에서 유가족이 지자체 제주도와 올레길을 만든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었는데, 이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판결 났다. 즉, 올레길을 혼자 다니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의 탓이라는 것(100% 가해자 탓이지만 올레꾼의 입장에서 보자면). 상식적으로 그렇다. 밤이 어둡다고 밤에게 소송을 걸 것인가, 나무 그늘로 숲이 어둡다고 숲을 탓할 것인가. 올레길에 대해 순찰이 강화된 것을 나쁜 사람들이 알고 올레길에선 사건을 일으키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해녀학교에서 만난 학생 중 한 명이 제주 경찰인데, 올레 순찰을 돈다고 한다. 올레길을 걸었는데, 모두 '일'로써 걸었다고. 그리고 올레길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한 말을 나에게 똑같이 할 수도 있다. '무서운 게 더 크고, 걱정되는 게 더 크면 올레길을 안 걸으면 되지 않나.' 틀린 말은 아니다만...
http://www.jeju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271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207261419001
사건이 일어난 것이 바로 이곳, 1코스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깝다.
마을길이 나오니 안심이 된다. 여전히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말이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자주 생각하는 질문인데, 남자 사람을 한 명 보는 게 더 나을까? 아무도 못 보는 게 더 나을까? 어떤 게 더 무서운지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해가 많이 기운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인데. 슬프고, 아쉽고, 씁쓸하고, 온갖 감정이 교차된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조차 죄책감이 느껴지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응어리가 느껴지는 것은 내가 이상한 걸까? 이 길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정상인의 감정일까? 이런 근원을 알 수 없는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19시 10분. 종달 초등학교 정류장을 만나서, 이곳을 기점으로 1코스를 정방향 그리고 역방향으로 했던 1코스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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