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에게서 일상이 되어버린 당신을 오려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하고요. 시간의 모퉁이 한 편에 자리를 잡은 당신을 하나씩 떼어낸다면 나는 얼마나 가벼워질까요. 아니면 얼마나 비어버리게 될까요.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막연한 두려움에 마음이 깊은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텅 비고 초라해질 것만 같던 내가, 오히려 어떤 이유로 조금씩 충만해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막상 당신을 오려내려고 하니 어디까지가 당신이고 어디까지가 나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내 말투에는 당신이 묻어 있었고, 나의 하루에도 당신이 조용히 스며들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알 것 같아요. 나에게서 당신을 오려내고 남은 건 내가 아니라, 당신 없이 혼자 견뎌야 했던 시간들이라는 것을요. 마치 빛을 떼어내자 그제야 그림자가 또렷해진 것처럼 말이에요. 당신과 함께 있던 순간들은 대부분 환하게 눈이 부신 장면들이어서 당신을 오려내고 나면 남는 것들은 오로지 나 혼자 지나온, 어쩌면 조금은 어두운 시간들이네요.
어쩌면 사랑이라는 건 누군가를 내 삶에 더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비추고 지나간 자리에서 비로소 내가 어떤 그림자를 가지고 살아왔는지 알아보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는 이제 알아요.
나에게서 당신을 오려내고 남은 건 공백이 아니라, 그 눈부신 빛을 보기 위해 지나온 시간들이었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