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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솔 Apr 24. 2022

오랜 친구에 대한 단상


사랑하면서도 거리를 두는 것은 관계 맺기의 '성숙함'이다. 주저리주저리 내 모든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아도. 타인에 대한 내 사랑과 우정을 증명할 수 있다.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이 훨씬 성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정여울-


정여울의 책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에서 이 대목을 읽는데 친구 지영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우정 혹은 사랑이 얼마나 진하고 깊은지를 이 친구 덕에 경험했으니까.


사진 출처 @unsplash



엄마의 부고 소식을 지영에게 알렸던 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장 오래 시간을 가까이서 함께 해 온 친구라 다른 누구에게 알리는 것보다 마음이 괴로웠다. 내 고통과 슬픔이 친구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걸 알고 있으니까.



지영은 아마도 내 전화를 받자마자 일산에서 신촌까지 정신없이 달려온 것 같았다.

지영은 빈소에 달려 들어오자마자 통곡소리를 내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를 위로하려는 눈물이 아닌, 우리 엄마의 죽음에 대한 애도였다.






나는 이 당시에는 잘 몰랐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가족, 친인척, 가깝게 지낸 친구가 아니라면 빈소에서 통곡소리를 내면서 울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걸. 고인에 대한 마음이 통곡까지 다다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반면에 남겨진 가족을 향한 위로와 안타까움의 눈물은 오히려 쉬운 편이다. 너무나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최근에 오랫동안 병중에 계시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입관 후 장례지도사의 지도에 따라 첫 제사를 지내는데 곡을 하는 순서가 있었다. "지금부터 곡을 하세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차마 내 입에서 뱉어지지 않았다. 마음에서 끌어올려지지 않은 곡소리를 낼 수 없어서, 나는 고개를 바닥까지 숙이고 말았다. 오히려 슬픔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나의 상태에 대한 죄책감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슬픔을 끌어당겨서 이 집안의 슬픔을 나누는 자로 도리를 다하고 싶었는데,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적어도 나에겐 도리로서 할 수 있는 일과 마음을 담아야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지영이는 그날 이후로 삼 일 내내 곁에 있었지만 잘 눈에 띄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건, 내가 행여라도 신경을 쓸까 봐 빈소 바깥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 가끔 보면 지영이는 빈소 바깥에 있는 둥근 테이블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기도 했고, 긴 의자에 앉아 있기도 했다. 그리고 끼니 때가 되면 장례식장 밥에 지겨울 우리 애들을 위해 밥을 사다 주기도 했다.




발인 날 역시 지영은 출근을 미루고 일찍부터 찾아왔다.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나? 나는 좀 어리둥절하면서도 고마웠다.

그렇게 지영은 서울 근교의 화장장까지 함께 갔다.




엄마의 관이 화구로 옮겨졌고, 화구가 보이는 유리 창문 앞에 엄마의 영정 사진을 올려놓았다.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그 참에 사람들은 모두 식사를 하러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나만 혼자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지영이가 어디선가 나타나 나에게 슬며시 휴지를 건넸다. 지영이는 그때도 역시 내 곁에 있던 것이다.




예정보다 빠른 시간에 화장이 끝나는 바람에 화구에서 엄마의 유골이 나오는 그 순간을 나와 지영이 둘이서 맞이하게 되었다. 지영에게는 모든 과정이 조금은 무섭고 거부하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모든 순간을 기꺼이 함께하며 자리를 지켜줬다. 그 순간 내가 혼자가 아니라서, 그 순간을 기억해 줄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게 어찌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엄마의 장례 기간 내내 지영이 나에게 보여준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

여기에 더 무슨 말이 필요가 있었을까.

그녀가 보여준 사랑에 감사하고,

나 또한 언제든 같은 사랑으로 친구의 곁에 머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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