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솔 May 10. 2022

그래도 오늘은 표현해야 할 때.

나.. 샤이해진 건가?? ^^;;

선거철만 되면 보수 성향인 부모님과 진보 성향인 자식들 간의 의견 충돌로 우리 집은 항상 살얼음판이었다.

서로 보수냐 진보냐를 두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결국엔 부모 자식 간에 도리의 문제로 이어졌다. 선거 결과가 나오면 한쪽은 기쁨으로 한쪽은 가장 쓰라린 좌절 속에서 서로를 더 원망했던 게 어디 한 두 번 일까. 가장 가까운 가족인데도 정치 성향에 있어서는 다름을 인정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가족 안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니 사람들과 모여 다른 얘기는 다 해도 정치나 종교에 관해서 얘기하지 말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난 이 말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정치와 종교는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인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을 해야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는 게 아닐까? 안 그러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면서 점점 벽을 쌓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였다.



그래서 몇 년 전까지 나는 진보적인 성향을 비교적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편이었다. 선거철만 되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질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 전쟁을 겪은 어르신 세대는 그래도 이해해 볼만한 이유라도 있었지만, 젊은 보수층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나는 내가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인 줄로 알고 있었다. 진보는 정의롭고, 보수는 그렇지 않다고. 보수와 진보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진짜 이유도 진보는 도덕적으로 무장한 옳은 것들이니 보수 앞에서 언제나 당당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소통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가자는 것도 결국 진보 쪽으로 인간애(愛)를 운운하며 설득하려던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의 죄책감을 유도하면서.




몇 해 전에 이런 일로 큰 실수를 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 친하게 지내게 된 엄마들과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정치에 대한 이야기까지 넘어가 버렸다. 정치 성향이 나와 많이 달랐던 그 엄마는 나에게 도대체 왜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다. 자신의 삶이 팍팍해서 남들까지 돌아볼 겨를이 없고, 내 아이 대접받으며 잘 살 수 있게 키우고 싶은 게 잘못이냐고 묻는 말에 잘못 아니라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너는 네 가치를 위해 사는 거고, 나는 내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거라고 꽤 쿨내 나는 사람처럼 말하면서 덧붙였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나만 혼자 잘 사는 삶이 아닌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는 것뿐이라고. 내 삶에서 인간애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도덕적 우위에 있음을 은근히 강조했던 일.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한순간 내가 상대를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는 사람처럼 만들어 버린 꼴이니. 내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저런 말을 내뱉을 수 있던 건가? 도덕적으로 훌륭한 게 과연 좋긴 한 걸까? 평생 수행을 하면서 살거나 혹은 가식적인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진보에 있는 사람들이 도덕적 우위의 가치로 무장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도덕적 흠결이 드러나면 잘 무너지게 되는 것 같다.  



진보적인 성향이 나에게 도덕적 우위와 같은 자만심을 가지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즈음,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외침에 얼마나 절실한 마음이 깃들어 있는지가 보였다. 내가 진보로서 절실하게 얻고자 했던 가치만큼 보수에 있는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로 절실하게 얻고자 하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만 옳다고 생각했는데, 그들도 옳았다. 그것은 내 것만 옳고, 네 것은 틀린 게 결코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 옳은 것이고, 그들은 그들에게 가장 옳은 것이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순간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요즘은 내 정치 성향을 잘 드러내지 않게 된 것 같다. 상대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충분히 맞장구도 쳐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굳이 나를 드러내서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렇게 점점 표현을 안 하다 보니 소위 샤이(shy)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왜 샤이해진거지? 난 요즘 딱히 진보도 보수도 아닌데.



솔직히 말하면 오늘은 쓰고 싶은 말이 하나 있어서 글을 길게 끌고 왔다.  

그냥 쓰려니 주저하고 있었다. 왜 주저하고 있는 건지 나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표현해야 할 때니까.




어제(5/9)는 내가 5년 전 기대와 환희 속에서 뽑았던 대통령님의 마지막 임기일이었다.

5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힘들고 어려운 자리에서 정말 수고하셨다고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5년간 덕분에 행복했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랜 친구에 대한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