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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님 Aug 06. 2022

행복한 척 하다 보면 정말 행복해지기도 한대요

나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자녀의 결혼 상대에게 알리지 말라

2022년에 개봉한 영화 [신부의 아버지]를 아직 보지 않았지만, 예고편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혼을 발표하려던 중년의 부부에게 갑자기 딸이 약혼 사실을 알리자, 부부는 딸이 결혼할 때까지 이혼을 미루기로 할 뿐만 아니라 완벽한 결혼생활을 해온 척 연기를 하기로 결심한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60241


우리나라에서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참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는 아직 자녀를 결혼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식이 결혼할 때 부모가 이혼했다는 사실이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까 걱정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실제로 결혼을 결정하기 전에 상대방의 부모를 만나보고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라는 조언을 흔히 듣는다. 비록 나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더라도 자녀가 결혼할 때까지는 그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특히나 예비 사위, 예비 며느리에게는 절대 눈치채게 하지 말 것.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도 암묵적인 약속인 것이다.


내 친정 부모님은 대단히 금슬 좋은 부부는 아니었다. 엄마는 남편을 잘못 만나 팔자가 이토록 박복하다고 신세 한탄을 하셨다. 아버지는 외도, 도박, 폭력 같은 용서받지 못할 큰 잘못은 저지르시지 않았다. 다만 남 밑에서 일할 성격이 못 되어 늘 사업을 하셨고,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이다 보니 요즘 말로 호구 잡히기 일쑤였다. 우리나라가 한참 건축 호황이던 시절 벽돌 공장을 하고도 망했으니, 얼마나 사업 수완이 없었는지 알 만하다. 자식들을 굶길 수는 없었던 엄마가 결국은 생활전선에 나서 온갖 고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니 엄마의 박복한 팔자가 아빠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엄마는 자신의 불행한 결혼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감추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세상 사람들이 행복한 부부인 척 연기한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시부모님이 정말 사이가 좋은 줄 알았다. 남편은 한 번도 부모님의 관계가 좋지 않아 힘들었다는 얘기를 한 적 없으므로, 의심할 이유도 없었다. 어쩌면 아들이 데려온 젊은 여성의 존재가 갑자기 집안에 새로운 에너지를 돌게 만들었고, 그래서 굳이 연기를 하지 않아도 아버님과 어머니의 관계에 자연스럽게 훈풍이 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예비 시부모님이 매우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고 결혼을 했으며, 남편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에도 우리는 시부모님처럼 금슬 놓은 부부로 늙어가리라 믿었다.




올해로 나는 결혼한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어머님과 아버님의 어떤 면이 서로를 견딜  없이 짜증 나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분의 결혼생활 중에 있었던  유쾌하지 않은 에피소드들과 거기에서 파생된 부정적인 감정들, 그리고  감정들이 해소되지 않아 쌓인 앙금들도 알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남편은  모든 것들로부터  발짝 떨어져 크게 영향받지 않고 사는 듯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에피소드들과 묵은 감정들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나서서  분의 관계를 개선하고 재건할  있도록 도와드려야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 자식의 결혼 상대 앞에서는 억지로라도 사이 좋은 부부인 척하는 것은 가식이라기보다는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작정하고 시작한다면 내 결혼 생활에 대한 푸념을 누구 못지 않게 쏟아낼 수 있다. 안 해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하소연은 오히려 남편과 나의 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것 같다. 도저히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어떤 행동 패턴 때문에 남편이 미울 때에는 억지로 그 사람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과 거리를 유지하며 오히려 더 예의 바르게 대하고, 바람을 쐬러 나가거나 브런치에 글을 쓰는 등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고 나면 그 사람은 나와 구분되는 독립된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밉기만 하던 남편이 나름 매력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남편 역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은 적이 많았을텐데, 나름의 극복 방법을 개발한 모양이다. 티격태격은 많이 해도 서로가 선 넘는 말로 상처를 준 적은 없었던 걸 보면 말이다.


"Fake it until you make it."

보지도 않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방출해서 미안하지만, 영화의 결론은 상당히 뻔하다. 남들 눈을 의식해서 행복한 척 연기를 하던 중년 부부가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까? 행복하지 않아도 웃는 표정을 지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부자가 아니어도 부자처럼, 아직 성공하지 않았어도 성공한 사람처럼 행동하다 보면 결국 부자가 되고 성공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 결혼 괜히 했다 싶을 때는, 세상 둘도 없이 행복한 부부인 척 행동해 보자.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금슬 좋은 노부부로 늙어가는 비법인지도 모르겠다.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brookeca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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