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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님 Aug 17. 2022

판사와 개그맨

당신의 장래 희망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장래 희망은 무엇이었나요? 그런 희망을 가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라는 동안 나의 장래 희망은 여러 번 바뀌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장래 희망은 판사였다.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힘없는 사람이 기댈 것은 법밖에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법을 하는 사람에는 변호사도 있고 검사도 있는데 나는 왠지 판사에 끌렸다. 변호사와 검사의 얘기를 다 듣고,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는 그 권위를 동경했는지도 모르겠다. 세간에 떠도는 변호사는 돈, 검사는 권력, 판사는 명예라는 얘기를 듣고 보니, 아무래도 나는 돈과 권력보다는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구나 싶기도 하다.


사춘기를 거치며 나는 누군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판사라는 직업의 무게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떠오른 직업은 개그맨이었다. "지구를 떠나거라~"든가 "회장님 딸랑딸랑~"하는 풍자적인 유행어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정치인과 재벌 회장이라는 권력자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막상 학교에서는 아이들 앞에서 우스갯소리 한번 못하고, 노래를 하라면 울고 싶었던 내가 개그맨을 꿈꾸다니. 개그맨이라는 직업에 대한 나의 선망은 사실 비밀스러운 것이어서  번도 장래 희망란에 적어보지는  했다. 지금도 개그맨들은 연예인들 사이에서 다소 함부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는데, 당시에는 더더욱 존중받는 직업의 대열에 들지 못했다. 판사를 꿈꿀 만큼 무의식 속에 명예에 대한 욕심이 있던지라 개그맨의 꿈은 조용히 사라져 갔다.


판사와 개그맨 외에 내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렀던 장래 희망 중 하나는 기자였다. 당시만 해도 기자는 권력을 감시하는 제4부로서 사회적 기대와 존중이 높았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헌법상으로는 분리가 되어 있지만, 사실상 법조계 출신이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는 일이 흔하다 보니 3권 분립이라는 게 과연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 언론은 3부를 모두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부여받았고, 4.19 혁명과 6월 혁명에서 언론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뭘 알았다기보다는 그런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으로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장래 희망은 교사였다. 판사와 개그맨, 기자라는 직업은 모두 미디어를 통해 이미지로만 존재했던 반면 선생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그날까지 내 눈앞에 숨 쉬고 걸어 다니고 말하는 현실의 존재였다. 아들 하나 더 낳아야 한다는 마음에 혹시나 하고 낳은 여섯째 딸이었던 나는 집에서 특별히 관심을 끄는 존재가 아니었다. 지금도 어머니는 내가 있는 듯 없는 듯 알아서 크는 아이였다고 기억하신다. 그런 나에게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서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셨다. 60명 넘는 학생으로 가득한 교실에서 선생님이 나 하나만 보며 수업을 하신다는 착각도 많이 했다. 덕분에 나는 사춘기를 아주 무난하게 보내고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상당히 극복할 수 있었다. 내가 경험한 이런 기적을 다른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다면, 참 좋은 삶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이런저런 현실적인 고민 끝에 결국 미디어와 관련한 일을 나의 첫 직업으로 삼았다. 기자도 개그맨도 아니었지만 나름 미디어의 힘을 적극 활용하는 직업이었다. 결혼을 하면서는 유학길에 오른 남편을 따라나섰다가 나도 박사 학위까지 마치게 되었다. 박사 학위는 직업 선택의 폭을 두 가지로 좁혀 놓는다. 연구원 또는 교수. 가르치는 직업에 대한 선망과 명예에 대한 욕구가 높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선택은 교수였다.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꾸 개그 본능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의 유머를 알아보는 학생들이 강의 평가에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웃음을 주신다"라고 적기도 한다. 또, 교수라는 자리에 있으면 평가와 판단을 자주 요구받는다. 교내에서는 학생들의 성적, 졸업 자격 여부, 징계 여부 등을 결정한다. 외부에서도 가끔 전공과 관련한 심사, 평가, 자문 요청을 받는다. 판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일들이 업무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장래 희망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럽다. 마음에 한번 자리를 잡았다가 잊혀져간 장래 희망들을 다 모아 보면 아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장래 희망이 여러 번 바뀌었다고는 하나, 한 번도 운동선수, 과학자, 정치인을 꿈꾼 적이 없다. 내가 마음에 품었던 꿈들은 언제나 말과 글을 쓰는 일이었고, 권력자보다는 견제자, 조력자에 가까웠다. 다행히도 나는 나의 이런 성향에 어울리는 직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정한 목표를 흔들림 없이 추구해 가는 것도 멋지지만, 아이 스스로 사회에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직업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장려하면 좋겠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만큼 어쩌면 나도 직업을 바꿀 기회가 또 있을지 모르겠다. AI와 로봇의 등장으로 없어질 직업의 목록을 주의 깊게 보았다. 다음 직업은 무엇이 좋을까?  이제는 남 앞에 서는 것이 아무렇지 않을 만큼 얼굴도 두꺼워졌고 명예의 덧없음도 알았으니, 지금이라도 개그맨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jordan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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