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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님 Aug 23. 2022

아이들이 아프다

개구쟁이라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주말 동안 친구들의 안부를 확인하는데, 집집마다 아이들이 아프다. 서른을 전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혼을 하다 보니 출산 시기도 비슷비슷해서 아이들의 나이가 다 고만고만하다. 가장 큰 아이는 대학에 다니고, 바로 이어서 재수생, 고3들이 줄줄이다. 막둥이로 태어난 초등학교 고학년도 서넛 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된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어디가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우선 우리 집 재수생은 수능 100일을 앞두고 역류성 식도염이 도져 목에 뭐가 걸린 것 같단다. 초등학생 때부터 보아온 내과 원장님은 고3이던 작년에 이 병이 그저 수험병이며 "대학만 가면" 씻은 듯이 나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그 "대학만 가면"이라는 조건이 일 년 유예되어 버렸다. 스트레스성 질환답게 뾰족한 치료법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저 견디게만 하자니 딱하여, 86년이나 된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가 탕약을 지었다. 이 병은 한방에서 매핵기(매실 씨앗이 목에 걸린 듯한 불편감을 주는 증상)라고 이름까지 붙인 것이라 표준 처방도 있었다. 원장님의 자신 있는 말씀에 기대가 컸는데, 탕약을 복용한 지 하루 만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복약을 멈추고 피부과에 가서 주사제, 도포제, 경구제의 3종 세트를 처방받고 왔다. 피부질환 치료제는 위산을 과다분비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위산 역류를 다스리려고 먹은 한약이 부작용을 일으키고, 그 부작용을 다스리려고 피부과 약을 먹으니 위산이 과다분비된다. 위산과다분비 억제제까지 추가로 먹이면서 두드러기 상태를 살피고 있자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 마음도 답답한데, 삼수하는 첫째와 고3인 둘째를 키우는 친구의 사정은 더 딱하다. 성적이 아주 좋았던 첫째는 의대를 목표로 삼수를 하는 중인데, 디스크 파열로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태란다. 누워서라도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는데, 제아무리 발등에 불 떨어진 삼수생이라도 침대에 누워 잠이 안 오겠는가. 고3인 둘째는 편두통이 심하여 수소문 끝에 경험 많은 의사에게 치료는 하고 있는데, 편두통과 별개로 공황발작이 한 번씩 온다고 한다. 언제 갑자기 공황이 올지 몰라 하루하루 조심스럽고, 학교를 안 가도 하루 종일 잠을 자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공부도 잘하고 행동도 반듯하여 항상 자랑스럽기만 하던 아이들인데, 그동안 누린 육아의 기쁨이 이제는 어렴풋하게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듯하다.

 

아이가 아파서 고민인 친구는 얼마든지 더 있다. 다른 친구의 고3 아들이 지난달에 코로나 19에 걸렸다. 그런데 아직도 학교에서 에어컨이 좀 세다 싶으면 기침이 나온단다. 고3이라는 압박감에 아파도 푹 쉬질 못하니, 기침이 질기게 붙어있는 모양이다. 또 다른 친구는 퇴근을 해보니 재수생 아들이 조퇴를 하고 와서 집에 드러누워 있더란다. 동네에 24시간 진료하는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하고 수액까지 맞혀 돌아오는 길이라고 한다. 어르신들 표현으로 "소도 때려잡을 만큼" 힘이 넘쳐야 할 십 대 후반의 남자아이들이 골골거리며 누워있다.


아직 수험생이 아닌 아이들도 여기저기 아프다. 고등학생인 친구의 딸 하나가 작년에 갑상선 문제로 치료를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다른 친구도 중학생 딸의 갑상선이 불룩하다며 병원에서 검사 중이라고 연락이 왔다. 심지어 초등학교 5학년인 다른 친구의 딸도 위산 과다에 변비가 심해 두 달째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단다. 엊그제는 응급실을 통해 MRI에 CT 촬영까지 했다고 하는데, 여전히 원인을 못 찾고 있다. 일주일 더 약을 먹어보고 차도가 없으면 신경정신과 협진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의 담당 의사가 했다는 한 마디가 의미심장하다.


"여름 지나면 고3들 몰려와요."


아이들이 아프면서 크는 것은 자연스럽다. 넘어져서 무릎과 팔꿈치가 깨지고, 추운 줄도 모르고 놀다가 감기에 걸리고, 낯선 음식을 먹었다가 배탈이 나고, 필수 접종을 꼬박꼬박 다 해도 이런저런 유행병에 걸린다. 그래도 청소년기에 접어들고 신체의 성장이 마무리되는 단계인 십 대 후반 아이들이 집집마다 이렇게 아픈 것은 자연스럽지가 않다. 선명하게 인과 관계를 보여주는 데이터는 없지만, 모두들 입시에 대한 부담으로 생긴 병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친구 딸을 치료하는 대학병원 의사가 했다는 말이 이런 의심에 확신을 더해준다.




"개구쟁이라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갓 태어나 꼼지락거리는 아가를 보며 부모들은 흔히 생각한다. 손가락 발가락 열 개씩 달린 온전한 몸으로 태어난 것만도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부모들이 초심을 잃는다. 건강하게 잘 노는데 공부를 못 하는 아이를 보며 "그래, 건강하기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냐"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어느새 아이의 건강보다 학업이 더 중요해지고, 아프다는 아이를 보면 공부하기 싫어 꾀병을 부리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나는 출산 후 한 달 만에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생후 6개월이 되었을 때는 내가 다니는 대학 캠퍼스 앞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학교에 갔다. 아이가 아프고 열이 나면 어쩔 수 없이 집에 데리고 있었지만, 그저 칭얼대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해서 아이를 쉬게 하지는 못했다. 다른 일하는 엄마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아이들은 집에서 쉬는 유일한 길이 몸이 아픈 것임을 무의식 중에 습득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우리나라 학교에서 무단결석/지각과 병결/지각은 확연히 다르게 취급하기에, 제시간에 등교를 못 할 사정이 생겼을 때 진료확인서를 떼기 위해 병원에 가는 것이 국룰이 되었다. 아프고 병이 들어야만 합법적으로 학업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아픈 것을 꾀병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진짜로 아프다. 그런데 그 아픈 이유가 학업과 성취의 압박에 짓눌린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무의식 저 깊은 곳에서 아이들은 듣고 싶은 것이다. "공부는 못해도 좋으니 제발 아프지만 마라." "우리 딸, 우리 아들 많이 힘들구나. 좀 쉬었다 하렴." "대학이 대수냐. 건강한 게 제일이지."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기는 게 아닐까?




오래전 SBS 파워 FM 라디오의 두시 탈출 컬투쇼에서 들은 사연이 생각난다.


엄마가 쓴 육아일기를 봤다. "공부는 못해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쓰여 있다. 중학생이 된 나는 지금 누구보다 건강한데, 엄마는 왜 내가 맘에 안 드는 걸까?


나도 오늘은 아이가 태어나던 그날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개. 자기 힘으로 숨 쉴 수 있고, 여러 가지 자극에 정상적인 반응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눈물이 났던 그날로. 그리고 오늘은  꼭 말해 주려고 한다. 두드러기도 매핵기도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아침이면 일어나 성실하게 공부하러 나가는 딸이, 성적과는 무관하게, 얼마나 고마운지도.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jonathanbor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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